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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온달 03 - 공주, 궁궐에서 쫓겨나다..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온달 03 - 공주, 궁궐에서 쫓겨나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09. 7. 29. 12:19

'노모자이크'를 외치는 당신은 ㅂㅌ!!


대개의 경우 딸이 아버지에게 대들어서 좋다고
하악하악할 부모는
화성인을 만나기보다 어렵습니다. 
바로 평강왕도 그런 평범한 아버지입니다. 

원문
王怒曰 “汝不從我敎 則固不得爲吾女也 安用同居 宜從汝所適矣” 於是 公主以寶釧數十枚繫肘後 出宮獨行 路遇一人 問溫達之家 乃行至其家

번역문
왕이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나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니 즉 나의 딸이라 할 수 없다. 어찌 같은 곳에 살 수 있겠느냐. 마땅히 네가 가고자 하는 바를 따르는 것이 좋다"라고 하였다.
이에 공주는 보석 팔찌 수십매를 팔꿈치 뒤에 매고 홀로 궁궐을 나왔다.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 온달의 집(으로 가는 길)을 묻고 바로 그 집에 이르렀다.

드디어 공주가 쫓겨납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아무리 뚜껑이 열린 상태라 하여
공주를 궁궐에서 내쫓을 수 있겠는가.
공주가 정치판에 끼어들었다가
출궁당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고작 반항했다는(?) 것으로 벌어질 일은 아니죠.
그래서 이 부분은 역사적 허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창강 김택영(1850~1927)같은 분은
온달전은 문학작품으로 보았고
많은 역사학자들도 온달이 출세하기 전은
꾸며낸 이야기라고도 봅니다.
(과정이 들어간 무용담이랄까요)
이 시대의 신분체계에서
왕족은 최고 정점에 위치해있는데
저렇게 함부러 내보내질 수 없습니다.
쫓겨날 정도의 죄라면 살아서 내보내질 않죠.

그래서 서동요의 선화공주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둘 다 쫓겨난데다가
남편이 처음엔 나쁜 처지에 놓여있었다가
출세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임재해 선생님 같은 민속학자분들은
온달형과 무왕형으로 구분하서 설명하시기도 합니다.
(임재해, '무왕형 설화의 유형적 성격과 여성의식', "여성문제연구"10, 효성여대 한국여성문제연구소, 1981.
______, '온달형 설화의 유형적 성격과 부녀의 갈등', "여성문제연구"11, 효성여대 한국여성문제연구소, 1982)

비슷하게 집에서 쫓겨나지만 수동적으로 따라간 선화공주와는 달리
평강왕의 공주는 자기에게 주어진 억업을 거부하고
능동적으로 자기의 삶을 개척하는 차이점을 보여주죠.
그래서 문일평같은 분은 공주가 온달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문일평, '평강공주', "조선명인전" 1939 ; 조선일보사 출판부, 1988)

그런데 이것을 진실이라고 가정하고
과연 결혼을 거부한 것은 쫓겨날만큼의 죄였을까요?
요즘도 결혼을 하려면 집안을 따지는 분들이 많습니다.
연예결혼이 정착되기 전의 결혼은 집안과 집안이 단합하는 증표였고,
두 사람의 의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상부上部(아마 수도 내의 행정구역이겠죠)의 고씨라면
꽤나 높았던 신분의 소유자일 것이고
이 결혼은 두 집안 사이의 정치적 유대관계를 구체화해주는 도구였을 것입니다.
왕권이 아주 강력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선 매우 중요했을테지요.
그것을 공주가 거부하니 좋아할리 없는 것입니다.

하여튼 먹고 살 자원을 확보한 상태에서 궁궐을 나선 공주는
온달의 집으로 갑니다.
그녀의 운명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공주가 초반에 활약하는 바람에 출연도 못한 온달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기대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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