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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지증왕 01 - 시대는 변화하고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지증왕 01 - 시대는 변화하고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7. 17. 14:00

원문

三年 春二月 下令禁殉葬 前國王薨 則殉以男女各五人 至是禁焉


번역

3년 봄 2월 령을 내려 순장을 금하게 하였다. 전에는 왕이 돌아가시면 즉 남녀 각 5명으로 같이 묻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금하였다.


삼국사기 4, 신라본기 4, 지증왕 3년조

지증왕은 신라사에 있어서 그 어떤 왕 이상으로 중요성을 가지는 왕입니다.

지증왕 이전의 신라는 소백산맥 안에서만 

강한 척하는 약소국에 불과하였습니다.

아들인 법흥왕의 여러 정치적 변화나

손자인 진흥왕의 활발한 정복활동만큼 화려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지증왕이 없었으면..하는 말은 그저 혈연상의 수사가 아닙니다.

시대의 변화상을 몸소 깨닿고 그쪽으로 과감히 방향을 전환을 한

이 아버지,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아들과 손자의 위업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광개토, 장수왕보다 소수림왕을 더 중요시하는데

이 지증왕이란 임금 역시 그만큼의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증왕 이야기를 좀오래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순장이야기부터 할텐데 

먼저 화면의 원문과 번역문 사이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좌측의 원문 그림에 三年 春三月이라고 적혀있는데 

우측의 입력한 문장에선 三年 春二月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판본중 하나이며, 

현재 많은 학자들이 읽고 있는 조선중종 때의 정덕본이나

현재 이 블로그에서 활용중인 영조 때의 주자본 모두 3월로 기재하고 있습니다.

어라, 이거 이상하지 않나, 이 연방의 폭죽이 약주 한잔 부었나 하실텐데

그 아래 다음 기록에 또 3월이 나옵니다.

보통 같은 달에 있었던 일을 따로 표시하진 않습니다.

목판으로 새기든, 금속활자본으로 만들던 낭비하는 문자를 넣지 않습니다.

(그리고 게다가 김부식은 간결한 문장을 추구하는 고문古文파입니다.

이 사람은 적어도 역사서술에서 수다떨고 글자수 늘려 

원고료 받는 일 따윈 안합니다)

이럴 때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3월은 2월의 오기, 

즉 옮기다가 착오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RGM-79는 분명 김부식빠수니지만 

여기서 고문체로 쓰면 아무도 안봅니다... 훌쩍)

이런 착오를 찾아내 고치는 것도 역사가의 일 중 하나지요.


이 해 2월에 지증왕은 매우 중요한 정책을 하나 발표합니다.

바로 순장제도를 폐지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유체계라는 것이 어떤 것은 납득할 수 있지만

또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신분에 대한 개념인데요.

한 번 신분이 정해지면 그것은 결코 바꿀 수도 없고

당장 생물학적 죽음이 찾아와도 영원히 이어질 영혼의 세상에도 바뀌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선 집처럼 묘를 꾸미고

또 어느 나라에선 묘실 주위를 진짜 집처럼 느낄 수 있게 그림을 그려놓았습니다.

다른 나라나, 민족들은 죽어서도 모시라고 부하들이나 시중들이나

심지어는 성욕도 해소하시라고 젊은 처자들을 같이 묻기도 하지요.

요즘 대통령이 물러나면 그 아래서 일한 사람들은

조용히 뒤로 물러나거나 감옥으로 무상급식 타먹으로 가는 것과는 다릅니다.

정말 성심성의껏 죽어서도 봉사하라는 것이죠.


이 순장의 관습은 고구려나 백제 무덤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장군총의 배총이 있지만 이것은 나중에 신하가 죽었을 때 묻었을 수 있죠.

끽해야 동천왕이 죽었을 때 많은 신하들이 따라 죽으려고 합니다.

다음 왕인 중천왕이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하도 자결을 하는 바람에

시신이 장작처럼 쌓였다는 기록이 있기는 합니다.

이런 기록 밖에 없고 실제로 순장의 흔적이 보이지 않음은

일찍부터 중국과 교류를 하며 받은 영향이지 싶습니다.

(눼, 가끔 중국도 좋은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외곽에 치우친 신라나 가야의 경우 순장의 역사가 좀 길었습니다.


사람이 가진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순장은 비효율적인 제도입니다.

춘추시대 진秦의 목공이 죽으며 그 나라의 용사들을 순장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긴요히 쓰일 재목들을 낭비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런 인식이 나오게 된 것은 시대의 변화,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겠죠.

지도자의 새로운 영혼의 세계마저 중요하다는 사회에서

그 사람이 죽으면 나라에 손실이 온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는 것은

국가체제가 그만큼 정교해지는 것을 반영합니다.

춘추와 전국시대의 국가총력전이 벌어지며 서서히 그 제도가 없어졌음을 생각한다면

신라와 가야 역시 그런 시대적 변화가 따라야 가능한 것 아니겠는가란 생각도 듭니다.

다만 국가 총력전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민중들의 세계는 더욱 피빨리는 시대의 쓴 맛을 경험하겠지만요.


지증왕 3년의 이 사건은 신라가 드디어 약소국의 알을 깨고 나오는 상징적 사건이입니다.

드디어 경제를 이해한다는 것, 왕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버렸다는 것,

이게 이 사건의 행간에 실린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http://www.newsis.com/pict_detail/view.html?pict_id=NISI20110711_0004812950


가장 최근에 발견된 가야 순장 소녀에 대한 기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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