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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온조왕 13년 - 내가 잘난 이유..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백제이야기

온조왕 13년 - 내가 잘난 이유..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8. 14. 14:26

원문

八月 遣使馬韓 告遷都 遂畫定疆埸 北至浿河 南限熊川 西窮大海 東極走壤


해석

8월, 사신을 마한에 보내어 천도함을 알리고 드디어 강역을 정하였다. 북으로는 패하에 이르고, 남으로는 웅천을 경계로 하고, 서로는 큰 바다에 막히고, 동으로는 주양까지 미치었다.


- 삼국사기 23, 백제본기 1, 온조왕 13년조


모자이크를 보니 괜히 가슴이 설레는군요..

신라편향적인 글만 올리는 와중에 돌아보니 백제 글은 없는지라 이걸 골라놓고는 약간 후회를 했습니다. 백제 건국 초의 마한과의 관계라던가 백제초기 영역의 변화상은 그야말로 학위논문급의 주제입니다. 이 글 하나 쓰자고 백제 초기사를 다시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걸 다 하다간 차라리 출판사랑 계약하고 책 하나 쓰는 게 낫습니다..만 이 백제 초기사도 은근히 베트남 정글같은 분야라 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극히 일부만 다루고 맙니다. 궁금하시다면 언젠가 백제 초기사를 아주 쉽게 풀어주실 분을 기다리시길 권합니다. 조상들은 독립도 꾹 참고 기다리셨는데요 뭘..


오늘 이야기할 주제를 들어가기 전에 잠깐 저 지명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합니다. 온조왕 13년, 그러니까 기원전 6년에 백제의 영역이라고 나온 지명들입니다. 서쪽의 대해야 서해/황해인 것은 당연하고요. 문제는 북,남,동의 3곳인데 북은 어느 정도 합의를 봤습니다. 패하=예성강이죠. 패수라는 지명이야 어떨 때는 압록강이기도 하고, 고구려 멸망 직전에는 대동강을 가르킵니다. 이때는 예성강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백제의 국경선이 낙랑군의 핵심지역까지 들어가진 않았겠죠.(낙량=요동설을 믿으신다면 지금 백스페이스..) 이 패수라는 단어에 얽매이기 보단 이 '패'라는 글자가 강과 관련있다고 보는 게 나을듯 합니다.


남으로는 웅천, 이병도의 지적 이후 대개 이 웅천을 안성천으로 봅니다. 금강으로 볼 수 있다는 설도 나왔지만 고고학적 자료라던가 이래저래 증거들이 맞질 않습니다. 동으로는 주양, 이 주양이라는 단어를 춘천으로 해석해왔는데 삼국사기 지리지의 지명들을 살펴보면 횡성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주변에서 춘천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고 있지만 아무도 논문으로 안썼으니 통과, 적어도 경기도와 강원 언저리에서 찾아야할 것 같습니다.


이 지명들을 아래 지도에서 찾으면 이 정도의 범위를 가지지요. 담기양처럼 역사지도를 만들 것도 아니니 정확도는 넘어가죠. 그저 느낌이 중요하죠.(만날 수 없잖아 느낌이 중요해~~) 앞에서 말한 백제 초기사의 여러 문제나 이 지명고증으로 들어가면 차라리 논문을 쓰는 게 낫죠. 대신 우리가 오늘 관심있게 봐야할 대목은 왜 이 기록이 만들어졌느냐는 겁니다.


학계에선 어느 누구도 저 영토가 온조왕 13년의 상황을 보여준다고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체로 고이왕대에서 근초고왕 직전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기록은 건국시조의 연대기록에 포함되었을까요?


이는 고대국가의 사유방식과 현대의 사유가 극단적으로 다른 예로 생각행지 싶습니다. 만약 연방의 폭죽이 위대한 성과를 거두게 되면 가족들과 지도한 스승에게도 영광이 돌아가지만 대다수는 본인이 거둘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가족들의 지원과 뒤어난 스승의 탁월한 지도로도 안된 놈은 안된다는 게 이 시대의 공통인식이니까요. 결국은 자기가 잘나 성공한 겁니다. 잘되면 내탓 못되며 조상탓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죠.


그러나 이 시대는 신분의 차이가 있는 시댑니다. 그것은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 교육과 참여의 기회가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높은 신분에서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능력입니다. 그것은 조상으로 부터 이어진 피의 탁월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부자 부모를 가진 것도 능력이라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또 뭔가가 필요하지 않을까나? 신화에 다른 혈연의식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왕일수록 하늘 그 자체와 맞닿아있습니다. 고구려나 백제 모두 줄대고 있는 추모/주몽은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의 자식입니다. 귀족들의 경우 통합과정에 자기들만의 신화가 백제의 건국신화에 통합됩니다. 이를테면 우리 조상은 온조왕이 남하하실 때 함께하였다거나, 남하 도중 귀의한 신화적 영웅의 후예라던가.. 이런 의식이 능력과 함께 신분을 유지해주는 기본이 됩니다.


오로지 내가 잘난 게 아니라, 조상이 워낙 잘났으니까 나 또한 잘난 것이다. 아마 이것이 그 시대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넓힌 땅도 사실은 선조가 넓힌 땅이라거나, 방치했던 땅에 영유권을 재확인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죠. 단순히 내 업적을 조상에게 덜어준다는 것 뿐만 아니라, 영토확장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오랜 시간 전부터 우리 것이었다는 역사적 영유권을 주장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고 덕분에 역사가들의 일이 약간 늘어났지만 그들은 나름 진지하게 기록을 소급시켯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시공간적 정확성에 대한 관념이 없었습니다. 그저 나라만 잘 돌아가고 왕의 자리가 굳건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뭐, 예쁜 그림을 바라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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