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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사론 01 - 남해차차웅 원년조의 사론..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사론

사론 01 - 남해차차웅 원년조의 사론..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09. 8. 31. 21:52

論曰
人君卽位 踰年稱元 其法詳於春秋 此先王不刊之典也 伊訓曰 成湯旣沒 太甲元年 正義曰 成湯旣沒 其歲卽 太甲元年 然孟子曰 湯崩 太丁未立 外丙二年 仲壬四年 則疑若尙書之脫簡 而正義之誤說也 或曰 古者 人君卽位 或踰月稱元年 或踰年而稱元年 踰月而稱元年者 成湯旣沒 太甲元年 是也 孟子云 太丁未立者 謂太丁未立而死也 外丙二年仲壬四年者 皆謂太丁之子太甲二兄 或生二年 或生四年而死 太甲所以得繼湯耳 史記便謂 此 仲壬 外丙爲二君 誤也 由前 則以先君終年 卽位稱元 非是 由後 則可謂得商人之禮者矣


사론(史論): 임금이 즉위하면 해를 넘겨 원년을 칭하는 것은 그 법이 춘추에 상세히 있으니, 이는 고칠 수 없는 선왕의 법이다. 이훈(伊訓)에 ‘성탕(成湯)이 이미 죽었으니 태갑(太甲) 원년이다.’하였고, 정의(正義)에는 '성탕이 이미 죽었으니 그 해가 곧 태갑 원년이다.’라 하였다. 그러나 맹자에 ‘탕왕(湯王)이 죽자 태정(太丁)은 즉위하지 않았고, 외병(外丙)은 2년, 중임(仲壬)은 4년이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상서(尙書) [이훈]에 몇 글자가 빠져서 정의의 잘못된 설명이 나온 듯싶다. 어떤 사람은 "옛날에 임금이 즉위하면 어떤 경우는 달을 넘겨 원년을 칭하기도 하고, 혹은 해를 넘겨 원년을 칭하기도 하였다."고 말한다. 달을 넘기고 원년을 칭한 것은 ‘성탕이 이미 죽었으니 태갑 원년이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맹자에서 '태정이 즉위하지 않았다.'라고 한 것은 태정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음을 일컬음이고, ‘2년, 중임은 4년이다.’한 것은 모두 태정의 아들인 태갑의 두 형이 태어나서 2년 혹은 4년만에 죽었음을 말하는 것이니, 태갑이 탕(湯)을 이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사기(史記)에서 문득 중임과 외병을 두 임금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전자에 따르면 앞 임금이 죽은 해에 [남해 차차웅이] 즉위하여 원년을 칭하였으니 옳지 않고, 후자에 따르면 곧 상(商)나라 사람의 예법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남해차차웅 즉위년조.

(번역은 네이트 한국학의 번역을 그/대/로 옮깁니다)


딱 한 번 원칙을 깨겠습니다.
원래 이 블로그를 맹글면서 세운 원칙 중 하나가 번역은 스스로 하자였습니다.
뭐, 삼국사기 번역서를 낼 것도 아니고
아무리 연구자라해도 한문실력이 출중하지 않음은 주변인물이라면 다 아시고,
설령 여길 모르고 오셨던 분들이라하셔도 그걸 기대하진 않으시겠죠.
그래도 아무리 개판이래도 스스로 하자는 건 최소한의 예의입니다..만
솔직히 이 부분을 읽을 때치고 편하게 넘어간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만은 정문연본 삼국사기의 번역을 그대로 긁었습니다.
절대 읽어낼 자신이 없는 색복지만큼은 안읽습니다.
그건 번역본을 읽어도 환장하겠거든요.
모르면 모르겠다.. 솔직히 밝히고 시작하겠습니다.

삼국사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김부식이 사대주의에 찌들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초장부터 깨는 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으로 나오는 사론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범례가 되었습니다.
나, 이제 앞으로 일케일케 할테니 니들은 그런줄 알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동양의 햇수를 세는 법은 요즘처럼 서기, 단기, 불기..식으로
절대적 기준이 되는 해를 정해 그 후로 세는 법이 아니라
정치적 지배자를 중심으로 해를 셉니다.
서기 몇 년에 태어났다가 아니라 무슨 왕 몇 년에 태어났다.. 이런 식이죠.
옆 나라 일본에서 1988년은 쇼와 64년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즉위한지 64년 째 되는 해라는 뜻이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모든 왕들이 12월 31일 오후 11시 59분 59초에 죽어준다면 문제가 없는데
그렇게 '칼같이' 죽는 것은 바늘 위로 원산폭격하기 보다 더 어렵단거죠.
만약 A라는 왕이 7월 27일에 죽었고, 그의 아들이 7월 28일에 업무를 이어받았다면
그 해는 어느 왕의 치세에 해당되느냐가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두가지 방안이 나오게 됩니다.
첫째 유년칭원법.
만약 7월 27일에 A왕이 죽고, 왕자 B가 뒤를 이었다해도
그 해는 여전히 A왕의 치세에 들어갑니다.
B가 다음해 정월에 천지와 조상들에게 알리고 정식으로 즉위식을 거행해야
비로소 새로운 원년으로 쓰지요.

둘째는 즉위년 칭원법.
왕자 B가 부왕을 이어 옥좌에 앉은 순간부터 원년으로 칩니다.
그러니까 한 해가 전왕의 말년이자 신왕의 원년으로 겹칠 수가 있죠.
어차피 일을 새로 시작하는 데 그게 원년이지 아니냐는 방식입니다.

삼국사기를 서술함에 있어 바로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거서간이 죽고
아들인 남해차차웅이 즉위함에 따라
그 기사를 어떻게 처리할까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 한 번만 쓰고 버릴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부딛치는 문제거든요.
그래서 김부식은 사론의 형식을 빌어 범례를 정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아마 이 부분은 김부식의 독단이 아니라
그가 참고했던 서적들로부터 이어져온 문제같습니다.
만약 방식을 바꾸면 모든 기사의 연대를 다 바꾸어야 하거든요.
(가뜩이나 오차가 있는 기년의) 오차도 더 늘어날 것이고요.
그러나 기본적으론 유년칭원법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이 모순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상나라도 그랬으니 여기서도 가능하다는 '판례'를 이끌어낸 것 같습니다.
그의 고민이 엿보인달까요?
현대 한국사학의 과제로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를 말하지만
적어도 중세사가들 중에서 김부식만은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후배격인 조선조의 학자들은 좋게 말해 신념이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좀 더 교조적이었으니까요.

적어도 삼국사기를 비판하기 위해선 32개의 사론이라도 읽어야 합니다.
과연 김부식, 그가 사대주의에 환장한 배알도 없는 놈이어던가
그의 글이나 읽어보고 말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말꼬리: 보름 가까이 방치한 것에 대한 변..
1. 머리가 굳었습니다. 콜로니라도 떨어졌는지 여름엔 이럽니다.
2. 23일부터 27일까지 듕궉에 다녀왔습니다.

그치만 이걸로 변명 축에도 못끼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3. 사료 그림화일을 이어붙이는 것이 귀찮아서였습니다.
이거 신선하죠?
돌을 던지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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