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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듕궉여행 후기 3 : 8월 24일 둘째 날2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듕궉여행 후기 3 : 8월 24일 둘째 날2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09. 9. 12. 00:00
RGM-79는 첫 날 화를 냈습니다.
대련에서 단둥으로 가는 길목에서 산이 별로 없고 지평선이 보이는 광경을 보며 외쳤지요.
'어떻게 산이 병풍처럼 시야를 가로 막지도 않아. 이거 불법이얌!'
눼, RGM-79는 강원도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이틀 째부터 신이 났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고향산천 복사한 듯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 홍천군의 산길을 헤메고 왔기에
너무 익숙한 풍경은 맘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음식만, 그러니까 그 놈의 오향만 아니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간체만 아니면
푹 삶은 듯 머물러도 향수병은 걸리지 않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었다죠.

자꾸 고구려하면 드넓은 벌판에 말달리고 활쏘는 것부터 상상하시는데
실제로 고구려인들은 산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제에 이어 그 지긋지긋한 산이란 걸 다시 볼까합니다.



어제 올린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펼쳐지는 환인현.
지도 중앙을 기준으로 9시 방향은 환인현에 사는 사람들의 젖줄인 혼강입니다.
북한쪽으로 흐르는 독로강 등과 함께 고구려인들의 애환을 담았지요.
강에 비친 산을 보니 여기도 참 닮았구나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에서 성벽 시설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바로 우물입니다.
식량이야 어느 정도 비축하니 상황이 좀 나은데 성안에 우물이 없으면 이것만큼 어려운 게 없습니다.
군인에게 1일 1회 샤워야 사치 중에 사치라지만
밥을 할 물과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물 한 잔이 없다면,
상처를 씻어낼 물이 없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요?

우물 물을 구할 수 없다면 성에 비밀문(암문)을 만들어 몰래 물을 구해와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인근 주민이나 산사의 승려들에게 원한이라도 심어주었다간 다 말라 죽어야지요.
일본 전국시대에 어느 공성전이 벌어질 때, 성 안에 물이 없어 인근 산사의 우물을 이용하였는데
어떤 일로 앙심을 품은 승려가 적에게 그 사실을 알렸답니다.
물은 얻을 수 없고 목은 마른데다 화공으로 성을 지키는 자는 다 타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그날 이후로 그 산에 주지 스님이 올라가면 큰 재앙을 받는다는 말이 생겨났다 합니다)

공성군에서 물의 흐름을 파악하여 우물로 가는 수맥을 끊기도 하고
수성군에서는 일부러 쌀을 바가지 채로 말에 붓는 속임수도 쓰지요.
우린 물이 많아 말두 씻겨준다고요. 멀리서 보면 알 수 있나요.
국내성으로 천도한 이후지만 대무신왕 때 듕궉군이 쳐들어와 환도성을 포위하자
먼길에 오느라 수고 많다고 일부러 수초로 감싼 잉어를 보내기도 합니다.

그만큼 물은 성에서 소중합니다.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니고 연못이 나옵니다.
다시 말하지만 물은 다다익선多多益善, the more the better입니다.
 


지나가다 들렀던 건물터..
고고학과 담쌓은 RGM-79, 이런 거 무시하는 쿨한 양산형 Mobile Suit인 것입니다.(탕~!)



성을 돌아보는 길에 군데군데 이런 집자리 '유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성 안에서 농성을 하거나 평소 훈련을 하는 군인들을 위한 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 이 온돌이 없었다면 많은 연구자들은 무기고나 군량창고로 짚고 넘어갔을 것입니다.
어제 글에서 이 곳이 따뜻하단 건 니 생각이고..라 했는데
바로 RGM-79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2차대전 독소전에서 소련을 지켜준 동장군과 같이
고구려가 듕궉의 공세를 이기는데는 이 추위도 한 몫을 합니다.
장마철과 이른 혹한기 때문에 듕궉입장에서 작전가능한 시간이 짧아지거든요.
여기 살아 익숙한 거지 그래도 추위는 힘겨운 고문,
이 땅에 살던 사람은 온돌이란 걸 발명해내고 그것으로 추위를 이겨냅니다.



이건 대학원 발표에서 즉석으로 그려서 설명할 때 그림인데요.
1번 아궁이에서 불을 떼면 2번 열기가 4번 방바닥을 뜨겁게 만든 후
3번 굴뚝으로 연기와 함께 배출되는 것이 온돌의 기본구조입니다만.
이 그림은 고려시대 방 전체를 이용하는 온돌을 설명할 때 사용된 것이고

실제로는 아래 그림처럼 방의 일부만 온돌시설이 깔리게 됩니다.



자세히 보시면 돌덩어리들이 ㄱ자 형태로 깔려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방안에 아궁이까지 다 갖추고 있지요
아궁이 옆으로 구들이 놓여지고 그 위에 앉거나 새우처럼 구부린채로 몸을 덥힐 수 있지요.
고려시대까지는 전면 구들이 사용되지 않기에
실내에서는 침상이나 의자에 앉아 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따뜻한 아랫묵에 양반다리하고 앉아있는 것은 고려말 이후에야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에 보면 귀족들은 침상, 평상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도성 내 평민들은 움집을 짓고 산다고 기록하였는데
윗 부분은 몰라도(아마 벽이 낮고 지붕이 바닥까지 내려오는 초가였겠죠)
내부 구조는 이 사진 속의 주거지와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계속 만나는 것만 찍기가 지겨워 이제부턴 온돌 시설이 그나마 남아있는 것만 찍었습니다.



사진 중앙에 검은 구멍이 보이죠?
그게 온돌의 흔적입니다.
나중에 집안으로 천도한 후에는 좀더 세련되고 효율성이 뛰어난 온돌이 나오지만
여기에 머물러 있을 당시엔 고구려의 '선사'시대였습니다.
당연히 더 초기 모습이 남아있죠.



맑은 하늘 아래 혼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자리에 듕궉인들은 환인댐을 쌓았습니다.
참, 소양호를 내려다 보는 기분이더군요.
너무나도 닮은 그 느낌에
정말 음식과 언어만 아니라면 향수병에 걸릴 일은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댐의 건설로 성 아래 존재하던 고력묘자 고분군과 마을은 물에 잠겼습니다.
물론 수몰 전에 유적조사가 행해지긴 하지요.
많은 무덤과 주거지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사로 인해, 또 이곳이 듕궉의 자랑스런 유적이 아니란 점에서(이젠 듕궉꺼겠지만요)
세밀한 조사가 얼마나 이루어졌겠냐란 의구심도 들긴 합니다.
언젠가 기술이 매우 발전하면 물에 퉁퉁 불어있을(!) 유적의 전모를 밝힐 수도 있겠지요.



사진이 많은 관계로 오녀산성의 기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저 맑게 개인 하늘과 그 아래 물을 바라보니
이 환인의 이후 행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유리왕 22년(AD3)에 고구려는 수도를 국내성으로 옮깁니다.
현도군 3현 중 하나인 고구려현의 자리였지요.
그 후로 이곳 졸본은 고구려사의 중심에서 한 발 물러섭니다.
427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천도한 후에도 국내성은 3경 중의 하나이자
중요한 정치, 사회적 중심으로 자리하지만
졸본은 머지 않아 잊혀진 도읍이 되고 맙니다.

천도 다음해 왕자 해명을 태자로 삼고 옛수도를 지키게 하지만
이웃 황룡국과의 외교 마찰로 죽임을 당합니다.
그 다음에 기록에 나타나지 않다가
신대왕, 동천왕, 중천왕, 고국원왕 때에 각각 1회씩 졸본에 남아있는 시조묘를 참배하지요.
시조묘는 동명왕을 모신 사당으로 원래 즉위초에 '신고합니다~!'를 외치는 행사를 통해
새로운 왕의 등극을 대내외적으로 선포하는 중요한 장소였다가
고구려 사회의 제사관념이 바뀜에 따라 잊혀지게 됩니다.

그나마도 평양으로 천도할 때에 동명왕의 무덤을 이장하고,
새 수도에 종묘믈 세우니 시조묘의 역할은 약해집니다.
이제 졸본은 아무도 찾지 않는 외딴 곳으로 바뀌어갑니다.
이 지역의 이후 역사를 이해하는데는
북위의 6진이 어떻게 변화하였나를 살펴보면 이해가 더 쉽겠지요.

557년 10월에 환도성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되자
고국원왕 이후 120년만에
평원왕(온달의 장인이자 공주의 아빠입니다)이 시조묘를 찾습니다.
민심이 흉흉해진 국내성 일대를 끌어안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습니다.
다시 이 죽은 황성옛터에 활기가 생겨났을까요?

그것은 알지 못합니다.




2천년 전 도읍지를 두 발로 돌아보니
나라는 파하였으나 산과 강은 그대로고
인걸은 간 데 없으나 성은 봄이요 초목은 푸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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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RGM-79의 블로그(http://rgm-79.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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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 카페 신나는 점프점프(http://cafe.daum.net/jump0080)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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