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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듕궉여행 후기 5 : 8월 25일 3일째 1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듕궉여행 후기 5 : 8월 25일 3일째 1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09. 9. 16. 09:00

8월 25일은 볼 것이 많았습니다.
24일글을 3편으로 나누었는데 25일은 5편 이상은 끌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우리 지온은 10년은 싸울 수 있다던 님께 묵념.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망했자나요!)
오늘은 볼 것 투성이인 집안의 유적들을 돌아보기 전에 예열한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짧게 나가겠습니다.

밤에 집안으로 들어와 도시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기회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발마사지도 받으러 가셨지만
워낙 오녀산성에서 흘린 땀이 많아 빨리 씻고 싶은 맘 밖에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변방 중의 변방인지라 몸조심도 해야한다는 말이 심야산보를 막았습니다.
뭐, 한밤중에도 길 전체가 공사중인데다 밤에 문을 여는 곳도 없으니 마땅히 할 일도 없지요.
왜들 그렇게 한국의 밤문화, 밤문화..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8시가 지나며 상점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으니까요.
그렇게 밤은 지났습니다.



숙소 창문에서 바라본 공원의 모습.
고구려 유적공원이라고 붉은 글씨로 새겨놓은 공원에 가봐야 한다는 생각은
귀국 비행기에서나 났습니다.
아직까지 RGM-79에겐 유적만이 중요하단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을 봐야한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에야 생겨난 생각이니 통탄스럽지만
뭐, 첫 여행입니다.
(올 가을에 나라, 교토를 갈 예정인데 이 경험으로 인해 공원구경도 일정에 들어갑니다)



우선,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짐정리를 하는 시간이니 아직은 한산했습니다.
일행분들은 아침에 공원을 가보셨다는데
왜, 누구라고 콕 찝어 말할 수 없는 머저리는 아침 먹을 때까지 방안에서 기다렸을까요?



RGM-79가 운전을 안하는 이유는 순간 대처능력이 약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지면 모든 게 멈춘다는 것이죠.
그러나 타지역으로 출장이 빈번한 지금, 겨우 맘을 달래어 운전을 배울 생각을 하려는데
중국의 길거리는 그러한 생각을 막아 버립니다.
어느 분이 그러셨습니다.
나중에 차를 몰고 직접 돌아댕기는 것이 어떻냐구요.

차들도 행인을 염두에 두지 않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요,
행인들의 횡단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생각함에 두려움이 없으면 천만인이 막아도 간다더니
맹자님의 나라는 더 진화되어 차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는 부처님의 나라는 어떨까.. 이런 잡생각도 해봅니다.
(이거 이 발언이 외교문제로 발전하진 않겠죠?)
운전은 꽤나 거칠게들 하는데 그걸 모두들 잘 피합니다.
이분들은 강화인간인가요? 뉴타입인가요?
언젠가 중앙선을 넘어 추원하는 차와 우리 일행의 차가 충돌에 가깝게 스쳐지났는데
여기 분들은 위험하지 않았다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다시 공원입니다.
정말 가봤어야 했어요. (죽은 아들 뭐 만져준다고 일어나냐? 어인 후회를 그리 하누!)



전날 밤에 고기(!)를 먹으러 갈 적에 파출소가 있고 이 차가 있어 찍으려다
소심한 마음에 포기했는데(그래놓고 사진불가지역에선 공안 옆에서 사진찍으려고 한 RGM-79)
마침 숙소 앞에 세워져 있길래 찍어보았습니다.



뭔가 차를 잡으려는 듯한 아가씨들. 그나마 듕궉에서 본 몇 아니되는 미혼 여성들입니다.
그래서 감히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숙소를 나왔을 때는 사람이 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사람들도 집안에서 나와 일터로, 학교로 향합니다.



그냥 거리를 찍었습니다.



사실 RGM-79가 기대한 건 집안 시내를 돌아댕기는 것이었습니다.
오녀산성이나 환도성도 중요하지만 국내성만큼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진은 이것 한 장 뿐입니다.
그냥 차를 타고 스쳐지나갔거든요. 이 사진도 차 안에서 찍은 겁니다.

이것을 더 보아야 했습니다.
400년 고구려의 도읍의 흔적을 찾았어야 했는데
풍남토성 이상으로 집안시는 파헤쳐지고 있었고, 성벽은 제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한지 오랩니다.
1930년대의 사진 속에 남은 것은 고사하고
지금 2009년의 모습이라도 담아야 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이란 것에 등재되는 덕에 대대적인 파괴는 면했다지만
언제 저 모습이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동북공정이 끝나고, 그 중요성이 어떤 요인에 의해 감소한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다른 일정을 줄여서라도 이것만은 보자, 100미터라도 걸어보자..라고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오녀산성의 잔존 성벽을 더 살피지 못한 것과 함께 아픔으로 남습니다.

귀국 길에 국내성이라도 보려면 경비가 얼마 드나 물어보았더니
혼자 온다면 비수기라도 80만원은 들 것이란 말에 다시 갈 엄두도 안났습니다.

변수 동으로 흐르고 봄 풍경은 끝이 없는데,
수대의 궁궐은 벌서 행적도 없다.
나그네여! 긴 둑에 올라 바라보지 말라.
바람 일어 버들개지 날리면 사람의 근심을 자아낸다.
- 이익(748~827? 당의 시인), 변하의 노래

시인은 이미 사라진 폐허를 보고 보지 말라,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만
역사학 전공자는 굳이 그 폐허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보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것보단 보고나서 아파하는 게 낫습니다.
역사의 현장은 아사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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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RGM-79의 블로그(http://rgm-79.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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