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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동천왕 즉위년,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동천왕 즉위년,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10. 30. 17:16

원문

東川王 或云東襄 諱憂位居 少名郊彘 山上王之子 母酒桶村人 入爲山上小后 史失其族姓 前王十七年 立爲太子 至是嗣位 王性寬仁 王后欲試王心 候王出遊 使人截王路馬鬣 王還曰 馬無鬣可憐 又令侍者進食時 陽覆羹於王衣 亦不怒


해석

동천왕은 또 동양(왕)이라 한다. 왕의 이름은 우위거, 어렸을 때 이름은 교체라고 한다. 산상왕의 아들로 모후는 주통촌 사람으로 (궁에) 들어가 산상왕의 소후가 되었는데 그 집안의 성은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전왕 17년에 태자로 세워지고, 이 때에 이르러 왕위를 이었다. 왕의 성품은 너그럽고 어질었다. 왕후가 왕의 마음을 시험해 보고자 하여 왕이 사냥나가기를 기다려 사람을 시켜 왕이 타는 말갈기를 자르도록 하였다. 왕이 돌아와 말하기를 '말에게 갈기가 없으니 가련하다'고 하였다. 또 시중드는 자로 하여금 식사를 올릴 때, 갑자기 왕의 옷에 국을 뒤엎게 하였는데 또한 화를 내지 않았다.

- 삼국사기 17, 고구려본기 5, 동천왕 즉위년조..


이따금 모자이크 없는 삼국사기도 에로하게 보일 때가 있군요.. -_-;;;

지난주, 동천왕 22년, 국민에게 사랑받은 자에 이어 동천왕을 조명하는 두번째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요전에 동천왕 자료가 없다고 칭얼거린 적이 있는데, 그렇게 자료가 없다는데도 동천왕이야기는 한 7,8편짜리가 될 것 같습니다. 앞서 글에서 동천왕은 사랑받는 자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의 장례에 따라 죽은 이들을 단순히 순장으로 볼 것이냐의 문제로 볼 것이라면 그냥 넘어가도 될 문제이긴 한데, 다음 왕이 금지하는 것까지 어겨가며 따라 죽는다는 것은 뭔가 간단치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면에서 그의 아버지인 산상왕 때부터 고구려의 사회상이 참 많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간단히 넘겨버릴 것은 아닙니다.


물론 동천왕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인 산상왕 대 일어난 이야기까지 모두 다루어야 희미하게나마 윤곽이 보입니다. 그때 일어난 일들이 동천왕의 죽음이나 그 유명한 관구검의 공격까지 모두 이어지니까요. (속으론 '이거 쓰다보면 어느분 박사논문 주제야'..란 비명이 목까지 올라옵니다) 오늘은 그저 그가 어떤 사람이었나를 서술하는 본기의 앞부분만 다루고자 합니다. 먼저 동천왕은 어떤 왕이었나를 보여주는 초면 인사와도 같습니다.


동천왕은 앞서 이야기한 산상왕의 아들이고, 그의 모후는 후궁격인 소후인데, 역사에 그의 집안이 기록되지 않는다란 식으로 넘어갑니다. 다음 글에 다루겠지만 보통 왕의 결혼 대상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격이 떨어진달까. 그런 면은 만약 산상왕에게 다른 아들이 있었다면 왕위 계승에 치명적일 정도의 약점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나 겨우겨우 얻은 아들이라 적장자로서 계승하지만 이또한 간단치 않은 게 그땐 부자상속이 하늘의 법칙이던 시절이 아닙니다. 하지만 요 이야기는 잠시 뒤로 미뤄두지요. 아무래도 모든 이야기를 다 끝내야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기록에 묘사된 동천왕의 성격은 

삼국사기에 소개된 고구려, 백제, 신라의 115명의 왕들 중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독특합니다. 

다만 다른 개성적인 왕들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 많다면 

이 왕은 그저 조용한 순둥이의 모습이라는 게 다르죠.

왕이 타는 말의 갈기를 잘랐는데도, 국을 옷 위에 엎어버렸는데도 가만 있습니다. 

이거 뭐 그렇게 대단하냐는 질문을 하실 분이 많은데, 

이렇게 높으신 분들의 경우 대개 아랫 것을 이해해 주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너님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란 칭송을 들으며 살아가자면

사람이 그리 그렇게 후덕해지진 않기도 합니다. 

또 이런 곳일 수록 사소한 실수도 용납되지 못할만큼 군기가 꽉 잡힌 곳입니다. 

이보다 덜한 짓을 해도 다음 날 뜨는 해를 보는 것이 불가능한 시절입니다. 


멀리 안가고 조선이나 고려시대, 좀 멀게는 당나라 율령을 봐도 

요즘 사람이 보기엔 사소한 실수도 왕과 관련된 것이라면 처벌의 강도가 높아 집니다.

그냥 넘어가는 일이 아닙니다.

조회 때 표문 글자 하나 잘못 쓰거나 읽어도 재상 목이 날아갈 만큼 엄격합니다.

(그 글 잘짓는 고려시대 이규보도 이러다 좌천당한 적이 있죠)

게다가 그 당시의 왕은 신의 후손이므로 자칫하면 하늘을 거스를 수 있는 일이죠.

왕비가 시켰더라해도 보통의 경우 갈기를 자른 자와 국을 엎은 자는

아마 수십 조각으로 분해가 되었을 겁니다.

정상참작이요?

그 시절에 그딴 게 어디 있고, 인권이 뭐겠습니까.


그런데도 화를 내지 않는다..

나중에 읽게 될 관구검의 침입 시 그가 보였던 호연지기(좋게 말해)를 떠올리면

이 또한 '너는 누구냐'고 묻고 싶습니다.

하여간 왕위에 오를 때의 그는 매우 조심스럽고 세세한 것에 희비를 드러내진 않았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를 생각해보기 위해서

또 다음주엔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거 갈수록 시간을 달리는군요.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시간을 달리는 19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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