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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산상왕 즉위년 04 - 야합野合, Basic Instinct도 아닌 정치적인..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산상왕 즉위년 04 - 야합野合, Basic Instinct도 아닌 정치적인..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12. 5. 11:22

원문

發歧聞之大怒 以兵圍王宮 呼曰 “兄死弟及禮也 汝越次簒奪大罪也 宜速出 不然則誅及妻孥” 延優閉門三日 國人又無從發歧者 


해석

발기가 그 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병사들을 이끌고 왕궁을 포위하여 말하기를 "형이 죽으면 동생에게 미치는 것 (물려받는 것)이 예이다. 너는 순서를 뛰어넘어 찬탈하였으니 그 죄가 크다. 마땅히 바로 나온다면 즉 죽음이 처자에게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연우는 3일 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 나라 사람들은 또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1990년의 3당 합당 이상의 사건입니다. 말이 좋아 합당이지 이것은 야합이라고 할만합니다. 野合, 말그대로 들판에서 들러붙는다는 말입니다. 이런 단어를 풀어놓으면 현대인이 고대인에 대해서 떠올리는 성적 방종을 연결지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영고나 동맹같은 것이 서로간의 양해된 성적 축제라고 보는 분들도 있지만 그건 확인된 바가 없죠. 적어도 한국고대사에서는 요. 이 야합이란 말은 그야말로 정식 혼인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눈이 맞아 즉석에서 중간생략~ 중간생략~을 하게 되는 상황을 이야기 합니다. 전근대사회에서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소중한 것이고 또 이것은 당사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속해있는 집단들간의 만남이 됩니다. 그것이 정상적이지 않을 때는 들에서 만난 불결한 사이라는 뜻을 담아 부르는 겁니다.


그런즉 연우와 우씨의 만남은 그야말로 뭐가 이상한 것의 조합인 것이지요. 단순히 두 사람의 뜨거운 열정으로 사고가 일어났다면 그것은 그저 가정 내의 사건입니다. 그저 배따라기 고구려시즌 찍으면 됩니다. 물론 왕실이기 때문에 문제는 커졌겠지만 뒤 이어 일어날 사건들처럼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두 사람의 목만 저잣거리에 걸리거나 조용히 공산국가에서 그러듯 갑작스런 심장마비, 혹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발표만 내걸면 됩니다.


또 우씨가 보기에 발기씨가 너무 싫어서 딴 남자를 택했다는 개인적인 감정으로 일어난 사건도 아닙니다.(그랬었다면 나중에 다리 꼬고 담배 한개피 물면서 '인정할 수 없군. 내 젊음으로 인한 과오라는 것을' 그저 Basic Instinct 식으로 이런 대사나 날려주면 됩니다.


그러나 맨 마지막에 나라 사람들은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었다는 대목에서 이 사건이 얼마나 의미 심장한 사건인지를 보여줍니다. 적어도 왕실과 왕비 우씨의 가문, 그러니까 연나부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발기씨가 워낙 개차반이었을 경우 임해군을 건너 뛰고 광해군을 세자로 앉히듯 권력 핵심부에서 이리 조율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생각하면 나쁜 놈 같기도 한데 또 마지막 최후를 보면 그렇지 않아도 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라사람國人이란 말은 요즘의 국민, 시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왕경에 살면서 국가의 정책 결정에도 참여할 수 있는, 

사대부와 같이 제한된 계층에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일부러 양반이란 표현은 피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동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뭔가 단순한 가정내 불화랑은 거리가 멉니다.

분명 일련의 사태는 발기가 말하듯 법적으로는 잘못된 것이고,

그래서 이것은 정치적 야합이라 할만 한데 이런 결과가 나타납니다.


발기씨는 왕자로서 자기가 가진 무력기반을 동원해서 왕궁을 포위했는데

동생인 연우는 문을 열지 않고 지키기만 했고

아무도 그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어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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