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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단편적인 사료만 가지고 해석을 한다면..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단편적인 사료만 가지고 해석을 한다면..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5. 1. 12:30

환단고기 3011


1. 미국인 학자 프릿츠 레이몬드에 의하면 20세기에 테헤란로라는 곳이 한국에 있었다고 한다. 아마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가르키는 것일 듯한데 이게 왜 한국에 있었단 말인가? 한국이 서아시아 유역까지 진출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 당시 한국은 북한이란 나라와 분단되어있었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북한 서적에는 '김일성 장군 항일 무투사', '김정일 국방위원장 대미 항쟁사'등의 책이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북한은 당시 세계 GDP 1위, 2위 국가인 미국 일본을 개차반 내버리는 대단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 당시 한국은 북한보다 국력이 월등했다고 한다. 


3.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라고 불렸던 미국의 전역에 수많은 한글 간판과 한국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명이 존재한다. 왜 초강대국이라 불렸던 미국은 동북아의 약소국 한국에게 이와같은 특전을 배풀었을까? 어쩌면, 당시 미국과 한국은 우리가 아는 역사와 정반대의 관계였을수도 있다. 


4. 21세기 초까지 한국에는 '주한미군'이라는 군인이 존재하였다 한다. 이 군인들은 미국인들로 한국을 지키기 위해 한국에 파견된 병사들이었다. 미국인들이 도대체 뭐가 아쉬워 자기나라 군인을 한국을 지키기 위해 보냈을까? 


5. 세계 곳곳에서 한국의 건물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남극같은 곳에서조차 '세종 과학 기지'라는 건물이 발견됨으로 인해 사학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6. 당시 세계는 UN이라하는 초국가적인 기관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놀랍게도 최근 발굴된 자료에 따르면 이 국제기구의 최고통솔자는 반 기문이라는 한국인으로 밝혀졌다. 그뿐만 아니다. 그 기관의 역대 사무총장의 이름을 살펴보면 리 트리그베(리(李)씨는 한국에 가장 많은 성씨중 하나), 우 탄트(우씨는 한국계 성씨중 하나)와 같은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이름이 많다. 왜 세계 초강대국인 나라들을 제치고 한국만이 이런 초국가적인 기관의 장을 배출했는지는 지금 우리가 배우는 역사책으로는 알길이 없다. 


7. 지금도 세계 주요 도시 주요 유적에 가면, 한글로 된 낙서가 있다.(예 : 야이 씹할 쪽빠리년들아. 아 백마 따먹고 싶다. 김철수 애펠탑 왔다가다. 영수♡영희 등등) 이 낙서들은 대개 호방할 뿐더러 그 나라에 대한 욕들로 뒤덮혀 있지만 그나라 사람들은 함부로 지우거나 손대지 않는다. 왜 한국인들에게 이런 치욕을 받고도 그나라 사람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을까? 혹시 한국의 국력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8. 당시의 한국은 시골단위에서 최소행정단위로 리(理)라는 단어를 썼다한다. 놀랍게도 파리, 알제리, 양촌리등 세계 여러 지역에 이런 리 단위를 써는 도시들이 있었다고 한다. 세계적 도시라 불리던 파리도 한국의 일개 시골농촌단위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파리가 시골이 되는 이 부분에서 우리는 당시 대한민국의 국력을 짐작 할 수 있다. 


9. 당시 한국의 군사는 남북한을 합쳐 200만에 달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군사를 가진 나라는 당시 인구 12억의 중국밖에 없다. 한국의 인구도 아마 그에 비슷하지 않았을까... 


10. 당시 인구가 12억에 가까웠는데 한반도 하나가 그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을까? 


11. 한국에서 가장 많이 출토되는 유물중의 하나가 '영문법'책이다. 일반사학계에서는 영어라는 언어가 잉글랜드를 중심으로 브리튼 지방의 언어라고 말하고 있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12. 당시 한국의 사진자료중 가장 많이 출토되는 것은 한가인, 장동건, 원빈, 김태희등의 사진등인데 이들 인물은 다 인간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외모를 가졌다. 당시 한국인은 엘프의 족속임이 틀림없다. 


13. 당시 여의도에 대해 사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큰 강에 가운데에 나있는 섬이며, 커다란 대로에 빌딩숲에 둘러쌓여 있다.' 하지만 지금의 여의도는 아늑한 녹지공원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기록은 여의도가 아닌 맨하탄과 비교해보면 놀랍도록 일치한다. 


14. 당시 코카콜라와 시장을 양분했던 콜라 펩시의 로고를 보면 태극 문양과 거의 흡사하다. 한국계에서 나온 콜라임을 알 수 있고, 당시 미 제국주의를 상징하던 코카콜라와 대등한 경쟁은 한국의 국력을 짐작케 해준다. 기록을 찾아보면 당시 독일에서 코카콜라 판매금지처분이 나왔는데 이걸로 보아 당시 국제여론도 한국 편이었음을 알 수 있다. 


15. 한국전쟁에 16개국이 참전했다고 한다. 만약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16. 당시 초등학교 3학년 이었던 이영아라는 사람의 일기에 보면 '우리나라의 백두산은 세계에서 젤루젤루크다'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우리가 부르는 백두산은 세계에서 제일 높지 않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은 네팔에 있는 에베레스트 산이다. 


17. 당시 미국학자 앤드류 크롬손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서 외국으로 여행 나가기 위해서는 배나 비행기를 타야만 한다.' 라고 적혀있다. 한국외부로 나가기 위해서는 바다로 통하는 배나 빠른 속도의 비행기를 타야만 가능하단 소리다. 우리가 아는 당시의 한국 영토와는 매치가 안되는 진술이다. 


18. 당시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 조지 부시는 한국을 '영원한 친구. 영원한 동반자'라 칭하며 한국에 온갖 특혜(무비자 입국, FTA등등)을 준다. 초강대국의 대통령도 한국을 두려워했던 모양이다. 


19. 당시 나왔던 사료중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도서를 보면 한국이 일본에 핵폭탄을 떨어뜨리려는 장면이 나온다. 이책은 한국이 핵을 가지고 있었으며 또한 세계 초강국중 하나라고 기록해놓고 있다. 


20. 21세기 초반 한국의 히트곡이었던 '연애혁명 21'은 일본의 노래 '러브 레볼루션21'과 소름끼칠 정도로 똑같은 음을 가지고 있다. 이와 비슷한 현상은 '무한도전송'과 미국의 '바하마 마마', '백만송이 장미', '징기스칸', '안재욱의 친구' 등등등 비슷한 사례가 세계 전역에서 계속 발견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을뿐만 아니라, 그들과 정신적인 유대감까지도 형성했었다. 


21. 서울대 천체기상학과의 김백환 교수는 당시 한국은 기상예보와 실제 기상이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것을 발견했다. 조그만한 한반도의 기상예보가 그렇게 많이 틀렸다는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22. 당시의 사료를 살펴보면, 서울 한 가운데 위치한 명동에 스타벅스라는 커피 전문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커피란 커피나무 열매를 끓여서 만든 것으로 커피나무는 한반도에서 한 그루도 나지 않는다. 


23. 기상 관측 기록에 의하면 20세기에는 매년 태풍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태풍은 열대성 저기압의 일종으로, 온대-냉대 지역인 한반도에서는 발생하지 않는 기상 현상이다. 


24. 1959년에는 태풍 사라호가 와서 경상도는 물바다가 되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같은 해에 경기도에서는 강바닥이 드러나는 가뭄이 들었다. 좁은 한반도에서 이렇게 다른 현상이 일어날 수는 없다. 


25. '서울대 공원' 은 서울대학교에서 관리하던 공원을 말하는 것이다. 공원은 동네 노인들이 여가를 보내고 주민들이 조깅과 체조를 하며, 아이들이 뛰어놀던 익숙한 생활공간이다. 그런데 이 공원 안에는 하마, 코끼리, 홍학, 기린 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동물들은 결코 한반도에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26. 미국의 대도시인 로스앤젤레스에는 코리아 타운이 있다. 


27. 서울은 강북과 강남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런데 강북, 강남이라는 말은 원래 양자강의 북쪽과 남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서울의 강남은 부유하기로 유명했는데, 양자강 남쪽의 강남도 옛부터 풍요롭기로 이름나있었다. 


28. 90년대에 서울의 땅을 다 팔면 오스트레일리아를 전부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서울이 오스트레일리아만큼 넓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넓은 땅이 한반도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29.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인데, 하와이에서 죽었다. 


30. 상식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지해 준 유권자들을 만나 감사를 표하고 계속 지지해 줄 것을 부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은 당선되면 미국을 방문했다. 미국이 대한민국의 일부였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31. 2000년대를 즈음하였을 때 정치가 허경영은 바이칼 호수를 이용해서 미래 수자원을 확보하자고 주장했다. 허경영은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한 거물 정치인으로, 그의 말에 따르면 바이칼 호수는 대한민국 영토 한가운데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32. 반도사학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서울은 휴전선에서 자동차로 고작 1시간 거리에 있다. 한 나라의 수도가 국경에서 그렇게 가깝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33. 우리가 배운 역사 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일본, 미국과는 전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의 전쟁사를 쓴 사서인 <<데프콘>> 과 <<남벌>> 에는 다같이 대한민국이 일본과 전쟁을 했음을 전하고 있으며, <<데프콘>> 에는 미국과도 전쟁을 벌여 승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사서들에는 당시의 전쟁 기술과 무기에 대해 상세히 실려있으므로 조작이라 볼 수 없다. 


34. 박창범 교수의 천문학 연구와 같은 방법을 통해, 대한민국의 천체 관측 기록은 한반도가 아닌 북태평양과 현 중국대륙에서 이루어졌음이 증명되었다. 


35. 추석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는 11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 고속도로는 차들이 시속 100km 로 달리는 도로이다.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는 거리는 1100km 가 넘었던 것이다. 한반도의 서울과 부산을 생각해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거리이다. 그런데 중국대륙의 북경에서 항주까지의 거리와는 소름끼칠 정도로 일치한다. 


36. 유명한 지식인 심형래는 공룡과 싸운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싸움의 기록 필름인 <<티라노의 발톱>> 에 따르면, 심형래와 싸운 공룡은 티라노사우루스이다. 그런데 티라노사우루스는 북아메리카에서만 발견되는 공룡이다. 


37. 한국은 동남아시아의 베트남과 중부 태평양의 동티모르, 히말라야 북쪽의 아프가니스탄, 중동의 이라크, 그 서쪽의 시리아, 아프리카 서쪽의 서부 사하라에 반란 진압과 치안 유지를 위한 군대를 보냈다. 이로 보아 이 나라들은 모두 한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속국이거나 그 영토에 속했음을 알 수 있다. 


38. 한국은 외국인들 중 백인들은 한국인과 동등하게 대하거나 우대했지만 흑인이나 황인종은 차별했다. 이로 미루어 원래 한국이 백인국가였음을 알 수 있다. 


39. 과거 한국은 세계에서 선박을 가장 많이 건조하는 국가였다. 좁은 한반도에서는 그 많은 선박을 제조할 철이 생산되지 않으며, 배들을 움직일 석유도 나지 않을 뿐더러 그 많은 배에 탈 승무원도 조달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은 대량의 철광석 및 석유가 생산되며 인구가 많은 지역에 있었을 것이다. 


40. 20세기 한국에는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이 길바닥에 굴러다닐 정도로 흔했다. 어떤 학문의 "정석"이 그곳에 있다는 것은 그 한묵의 발상지가 바로 그곳임을 뜻한다. 즉 수학은 한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41. 한국은 1년에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제작했는데 이는 5천만도 안 되는 인구에게는 필요가 없을 뿐더러 좁은 한반도에서는 다 움직일 수도 없다. 따라서 훨씬 넓은 땅과 많은 인구를 가졌을 것이다. 


42. 20세기 한국에서는 일본의 언어와 풍속이 민간 차원에서 상당히 성행했다. 이는 한국이 일본을 식민통치하면서 식민지의 문화를 일부 흡수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이는 보다 과거에도 그 사례가 있는데, 몽골이 잠시 강성하여 본가인 고려를 억누르고 있을 때 상대적 강자인 몽고의 풍속은 잠시 고려에서 "몽고풍"이라 불리며 유행하고 상대적 약자인 고려의 풍속은 몽고에서 "고려양"이라 불리며 유행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일본 풍속이 유행할 때 일본에서는 "한류"라 하여 한국 풍속이 유행했으니, 이는 한국이 일본을 식민지배한 증거이다. 


43. 한국어는 일본어,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등 전 세계 대부분의 언어를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다. 이는 한국인들이 이들 모두를 식민통치하면서 모든 피지배 민족의 언어를 통할할 수 있는 진정한 공용어를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44. 프랑스를 지배하고 전유럽을 정복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1세는 실은 한국인이었다. 그의 본명은 나폴레옹이 아니고, 프랑스인도 아니다. 한국어로 된 그의 전기 "나파륜전"이 발견되어 존재하는바, 그는 분명 나씨 성을 가진 한국인이었다. 


45. 만주는 한국의 영토였다. 20세기 대한민국의 세 번째 대통령이라고 전하는 박정희는 만주군이라는 군대의 장교였는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군대에 복무했을리가 없다. 즉 만주군은 한국군 중 만주지방에 주둔한 군대였음이 분명하며, 이는 만주지방이 한국의 영토였음을 뜻한다. 


46. 한국전쟁에서 미국이 사용한 폭탄의 양은 2차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에 투하된 양을 능가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2차대전은 6년간 치러졌지만 한국전쟁은 3년간 치러졌다는 것이다. 즉 한국전쟁의 상대자였던 북한은 일본과 독일을 합한 것보다 두 배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남한은 북한보다 두 배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영토도 두 배였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독일과 일본을 합친 것의 여섯 배에 해당하는 영토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절대 한반도가 될 수 없다. 


47. 미국은 매년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돈과 재화를 한국에 보내는 대신 그보다 적은 액수를 한국으로부터 받아갔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에 공물을 바치는 관계였다. 이에 반해 일본은 한국에 가져다 바치는 돈과 재화의 액수보다 한국으로부터 받아가는 돈과 재화의 액수가 많았는데, 이는 일본이 너무도 가난했기 때문에 한국이 기꺼이 하사해준 것이다. 


48. 한국은 매년 대량의 석유제품을 수출했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석유가 나지 않는다. 


49. 당시 한국에서는 아름답고 화려한 여자를 가리켜 된장녀라고 불렀다. 따라서 된장은 아름답고 우아하다는 뜻의 형용사이다. 


50. 한국에서는 핀란드에서만 나는 자일리톨이란 물질이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자일리톨의 공급원인 핀란드가 한국의 영토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51. 20세기 한국은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북한에게 수십만톤의 중유를 지원했다. 여기서 의문은 한국은 산유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기록에 의하면 주로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한 것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쓸때도 없는 중유를 단지 북한에게 주기위해 수입했다는 것은 말이되지 않는다. 


52. 기록에 따르면 위의 중유 지원을 즈음한 시기 엄청난 양의 양곡 또한 북한으로 지원되었다고 한다. 당시 전해지는 일부 뉴스 기록에 따르면 매년 몇만톤의 쌀을 북으로 보냈고 그 외에도 옥수수 또한 5만톤을 보냈다고 하는데 좁은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양이 아닐 뿐더러 그렇게 지원하면 한반도에 있는 사람들은 굶어 죽어야 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가? 좁은 한반도에서 쌀도 생산하고 옥수수도 생산하는데 정작 굶어 죽었다는 말은 없고 심지어 자동차와 선박.까지 생산했다고 한다. 가능하겠는가? 


53. 상업 활동을 살펴보면 한반도 도시의 중심가 곳곳에는 롯데백화점 등의 회사가 있었다. 헌데 이 롯데 상표명은 일본에도 있다. 


54.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을 살펴보면 상당히 많은 당들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기존 강단사학에서 미국을 가장 강력한 나라로 취급하는데 그 나라의 정당도 민주당과 공화당 뿐이었다. 헌데 대한민국은 자유당. 민정당. 민주당. 통일 민주당. 신한국당. 민정당. 국민당.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등등 수십개의 당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불과 몇십년 사이에 나타나는 기록들인데 과연 한반도 같은 좁은 땅에서 이렇게 많은 정당이 있을 수 있을까? 우연하게도 아프리카 대륙정도에 존재하는 정당들의 수를 계산하면 한국의 정당숫자와 유사하게 나온다. 


55. 20세기 한국은 다양한 종교가 존재했다. 그 중 대표적으로 개신교. 불교. 천주교 등이 존재했는데 이들 종파별로 기록한 신도수를 계산하면 강단사학이 주장하는 숫자보다 훨씬 많은 인구수가 나온다. 심지어 이는 중소 종교나 무교자들은 기록에 넣지도 않은 숫자다. 양심을 믿을 수 있는 종교단체의 기록임을 감안할때 그 인구는 절대 한반도에서 부양하지 못한다. 


56. 당시 대한민국은 육해공 포함 70만 가량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수백대 이상의 전투기 또한 보유하고 있었음이 밝혀져 있다. 좁은 한반도에서라면 과연 이정도의 병력이 필요했을까? 참고로 인구대비 적정 병력수는 0.3-0.35% 수준이다. 이는 강단사학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57. 88년 올림픽의 기록을 보면 역대 가장 많은 참가국들이 등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을 본다면 세계 각국이 대한민국의 영향력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좁은 한반도에서 그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58. 당시 대한민국에 떠도는 광고나 방송자료 등을 살펴보면 한국에 관련하여 세계지배, 초일류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59. 2007년경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 후보들 중 가장 높은 지지를 받던 후보의 공약중에 부산과 서울을 이어주는 운하를 건설하겠다는 말을 볼 수 있다. 강단사학자들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한반도에 불과한데다 굳이 운하가 없어도 바다를 통해 갈 수 있을 뿐더러 시간조차 별로 걸리지 않는다. 운하가 필요한 것은 내륙지역이고 보통 중국과 같은 곳에서 만드는데 중국에서 오래된 운하의 경우 1,747km에 달한다. 한반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거리가 나올 수 없다. 


60. 고대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현명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강단사학이 민족의 역사를 한반도로 밀어 넣으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다. 헌데 지금 우리들은 대한민국이 IT 강국임을 알 고 있다. 헌데 당시 전송 인프라였던 인터넷에 떠도는 한국어 자료를 보면 주로 환국과 같은 기록들이 훨씬 더 많이 남아 있다. 현재 일부 강단사학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반도설은 일부 학교등에서 학설서 등으로만 나왔던 것을 본다면 당시 사람들은 이미 대한민국이 한반도에 있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추정하는 바로는 당시에 큰 변란이 있었고 그 틈을 타서 한반도설의 주장자들이 득세하여 지금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강단사학은 당시 한국의 IT 인프라는 인정하면서도 정작 그 내용을 채우고 있는 이러한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모순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출처 :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humor&no=175749


뽐뿌라는 곳을 가진 않습니다.

(아는 지인이 거긴 지름과 욕망이 가득한 곳이라 해서 아예 가지를 않았지요)

그러나 넷이란 연결고리를 통해 어찌어찌 알게 된 글이 하나 걸렸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절대로 보지 않을 글인데

그냥 호기심에 읽어보니 매우 흥미롭군요.


이 글 자체가 대단한 것은 매우 정교한 것이 아니라

꽤나 흥비롭게 하나의 현상을 해석하는 오류를 

다 보여주고 있다는 겁니다.

이를테면 짐순이가 사는 춘천에는 

미군 기지 중에 꽤 중요한 기지가 있었습니다.

캠프 페이지라고 이번에 사들인다는 그 아파치 헬기가 배치된 기지였지요.

(롱보우도 봤던 것 같기도 한데 어린애 기억이란 게 단편적이라..)

지금이야 정화공사중인 공터지만

춘천역에서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면 

항상 들려오던 것이 그 헬기의 발진음입니다.

이 기지는 분명히 대한민국 강원도의 도청소재지 춘천에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가족이 

여기 있는 병사 짐(이라고 합시다)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이건 국제 우편이냐..

아뇨, 캘리포니아주 어디어디라고 적으면 

캠프 페이지의 짐에게로 편지가 옵니다.

만약 3000년대에 어느 고고학 연구자가

캘리포니아라는 말이 적힌 명판이라도 발견했다면 두가지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캘리포니아를 지배했다.

아니면 대한민국은 미국의 영토로서 캘리포니아주에 흡수되었다.

만약 80년대 운동권에서 주장한 반식민지론에 대한 책이라도 나온다면

아마 후자의 설은 정당한 해석이 되고 말겁니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분단과 냉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만 발견된다면?


역사학에서는 거짓 기록도 사료로 취급합니다.

그 거짓 자체를 진실로 둔갑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런 거짓 기록이 나온 배경, 그게 먹혀들어간 상황을 연구한다는 의미지요.

로렌초 발라가 콘스탄티누스의 기진장,

그러니까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의 교황(당시에는 교단지도자 정도?)에게 

제국 전체를 신에게 봉언한다고 서명한 서류가 가짜임을 밝혀냈습니다.

로마의 교황이 유럽의 각 군주들에게 우위를 갖기 위해

조작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지요.

그외에도 롱기누스의 창이라던가,(에바의 그게 아냣!)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덮었다가 얼굴이 찍힌 아마포라던가

그런 성유물의 존재를 이제는 공식적으로 신뢰하진 않지만

(물론 교단에서는 그것을 믿을 숭고한 종교적 이유도, 권리도 존재합니다)

그런 신앙이 자리한 것 자체를 해석하는 자료로써 존중하지요.


위의 글은 사실 어떤 이들에게는 개그가 아닙니다.

더 멀리 멀리멀리 거슬러 올라갈 수록

자료는 제한적이고 단편적이 되어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오류를 피해나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여러 사료나 그 시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교차검증이라는 방법입니다.

이를테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복잡한 기계설계도를 학자들이 본다고 칩시다.

그의 설계의 기본구도는 매우 현대적이지요.

그 당시에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을 초월할 정도로 기본 개념을 잘 잡았습니다.

(이런 사기캐릭적인 면을 하인라인은 '여름으로 가는 문'에서

타임머신 조작 오류로 인해 

르네상스시대로 날아간 레너드 빈스라는 기술자라고 설명하지요)

그렇다면 르네상스 시대에 인류사회는 

매우 정교한 기계문명으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백만년 후라면 르네상스시대나 서기 2013년이나 하루 이틀 차이로 보일 겁니다)

그냥 그 설계도 사본을 흔들어대고 학회에서

'여기 그 증거가 있지 않소!'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주장하면 다 되는 걸까요?

그렇지 않다는 건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지요.

그 천재의 머리 속의 설계를 현실화할 정밀한 기술이 없었다는 건 모두가 압니다.

당시의 가공기술의 실물을 보고,

실제 정밀가공기술이 언제 개발되고, 실용화 되었는가에 대한

연대만 잡아줘도 이런 이야기는 나올 수 없을 겁니다.


짐순이도 상고기 막판의 신라본기를 읽다가 아무 생각 없이 흥분한 적도 있어요.

구획을 정비한다는 의미의 글자인데

자전의 여러 용례에 따라 지방제도를 정비한다는 뜻도 되더군요.

혼자 흥분해서, 신라의 지방제도 시작연대가 한세기 가량 올라가는 건 아닐까하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 좀 가라앉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왜 아무도 이 얘기를 안했을까?

윗세대 연구자들은 정말 한학을 공부한 분들도 있는데,

지방제도에 대한 연구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왜 아무도 이 기록을 말하지 않을까로 시작된 회의는

(會議가 아닙니다. 懷疑입니다)

결국 신라사회가 그 당시에는 그걸 편제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는 결론으로 끝납니다.


이따금 그렇게 '여기 그 증거가 있지 않소!'라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특히나 요즘같은 인터넷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되기가 쉽죠.

초장부터 한자가 튀어나오고 옛날 책 화면이 덮인

이 비글멍멍이같은 블로그에 오시는 참으로 존경해마지 않는 여러분,

우리는 목청을 올리고 살지 말아요.


학생회 임원들의 한 장면. 당근 출처는 원작자, 출판사, 애니제작사, 유통사에 있겠지요.

아 빛나는 짐순양, 근데 추워..


말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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