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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진평왕 51년 -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진평왕 51년 - 사람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7. 31. 17:58

원문

五十一年 秋八月 王遣大將軍龍春·舒玄 副將軍庾信 侵高句麗娘臂城 麗人出城列陣 軍勢甚盛 我軍望之 懼殊無鬪心 庾信曰 “吾聞 振領而裘正 提綱而網張 吾其爲綱領乎” 乃跨馬拔劒 向敵陣直前 三入三出 每入或斬將或搴旗 諸軍乘勝鼓譟 斬殺五千餘級 其城乃降 


해석

51년(629)년 가을 8월에 왕은 대장군 용춘과 서현, 부장군 유신을 보내어 고구려의 낭비성을 치게 하였다. (고구)려인들은 성을 나와 진을 쳤는데 군세가 사뭇 성대하여 우리 군사들은 그것을 보고 두려움에 싸울 맘을 잃었다. 유신이 말하기를 "소매를 펼치면 갗옷이 단정해지고 벼리를 끌면 그물이 펼쳐진다 들었다. 나는 소매와 벼리가 되고자 한다"라 하였다. 이어 말에 올라 칼을 뽑고 적진으로 곧바로 나아갔다. 세 번 들어가고 세 번 나오메 매번 돌진할 때마다 적의 장수를 베거나 혹은 깃발을 뽑아 나오니 여러 군사들의 사기가 올라가 적 5천여인을 베는(승리를 거두었다) 그 성은 이에 항복하였다.


천사가 없는 12월도 아니고 모자이크가 없는 삼국사기라니.. 그 게임만큼이나 슬프구나.. 훌쩍..

간혹 느끼는 것이 삼국사기의 문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은 바로 이렇게 사생을 오가는 장면에서 마주칩니다. 언젠가는 이야기할 관창의 열전도 그렇고 김흠운이나 원술, 눌최, 비령자와 같은 무사들의 이야기가 나올 때, 김부식이 그렇게 주장하던 고문체의 힘이 나온달까요?


김부식도 묘청의 난을 현장에서 지휘하며 진압한 경험이 있고, 또 고려의 문신들도 군관련 일도 다 하기 때문에 전혀 이해못할 바는 아닙니다.(그러니까 조선시대 문신들이 적은 전쟁관련 기록보다는 백배 낫습니다) 이게 삼국사기의 원 사료가 가진 힘인지, 이걸 바꿔놓은 집필진의 힘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런 전쟁의 사선에서 내뱉는 대사는 마냥 늘어질 수도 있는 본기 읽기에 긴장감을 줍니다. 유달리 한국고대사를 깎아내리는데 혈안이 되었던 일제강점기 일본학자들도 유달리 이 부분에 대해 관대한 것도 어느 정도 이해되기도 하죠. 딱 일본 NHK사극에서 참 많이 듯하죠. 그러나 이것이 이른바 동아시아의 전국시대에 사는 사내라면 다들 겪었을 이야깁니다.


사실 삼국사기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까지 불리는 김유신의 첫 등장입니다. 10권의 열전 중 3권이라는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하고 있고, 또 삼국사기의 하일라이트는 삼국통일전쟁입니다. 거기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처음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순간인 것이죠.


그러나 신라 중고기를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저 앞의 장군의 이름만 봐도 머리가 아플 겁니다. 진지왕의 아들이자 무열왕 김춘추의 아버지 용춘, 김무력의 아들이자 김유신의 아버지 서현. 어떤 분은 이른바 신귀족의 탄생을 떠올릴 것이고, 짐순이 같으면 진지왕과 진평왕의 왕계보를 떠올릴 껍니다. 그러나 오늘은 주인공만 보는 겁니다.


고구려의 낭비성을 공격하는 신라군에 맞서 

고구려도 성 밖으로 나와 포진합니다. 

그 기세에 눌려 신라군은 겁을 집어먹게 되지요. 

존 키건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런 벌판에서의 회전은 꽤 많은 준비결과를 거치지요. 

학교에서 매주 한 번쯤 운동장에서 하던(요즘은 교실 내 TV를 통해 합니다) 

아침조회 준비과정을 생각해보세요. 

교감이나 학년주임쯤, 또는 체육 선생님이 학생들을 정렬시키죠. 

너 기준! 앞으로 나란히! 거기 너 비뚤어졌다. 그래 빨간 상의, 하늘색바지 그래 너말야... 

이런 식으로 진형을 짜면 학교에선 교장, 전장에서는 장군이 나와 일장연설을 하죠. 

아니면 장군들이 말타고 나가 

'우리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서로 노래를 부르고 병사들은 지켜보지요. 

실제 전투에 돌입할 때쯤 병사들은 반쯤 넋이 나간 상태.. 

하긴 그렇죠. 맨정신에 적의 코 앞에 나설 수가 있을까요? 

초장부터 기가 꺾이면 지는 겁니다. 

물론 이거야 고대 그리스의 전투 방식이지만 

장수들이 칼을 맞대기 전 관등성명 대는 것은 다 했으니 

거기나 여기나 근육갖고 싸움하던 시대는 공통점도 많았겠죠.


김유신이 빛을 발하는 것은 이 땝니다. 

내가 이 분위기 한 번 바꿔 보겠다. 

그리고 저 말 뒤에 생략된 말은 

아마 '싸나이,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였을 겁니다. 

세 번이나 적진으로 단신돌격하여 장수를 베거나 깃발을 뽑아오죠. 

아무리 기병이라도 보병들의 창병이 진형을 짜고 대응하면 

그냥 창꼬치가 되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고구려군이 눌렸나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신라군은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며 

고구려군을 물리치니 성은 별 수 없이 백기를 거는 거죠.


반굴도 그렇고 관창도 그렇고 왜 홀홀단신 적진에 몸을 던질까요? 

오히려 아군의 사기만 떨어질 수도 있는데 말이죠. 

아마 일본학자들이 좋아한 이유와도 연결될 껍니다. 

나 하나 희생하여 아군을 격동시킨다.

어쩌면 그들은 또 하나의 무사도를 보았을테지만

(실제로 이걸 근거로 자기네 역사인물을 디스하기도 했죠) 

그들이 연구하던 시대보다 더 후대에 사는 

우리 시대의 연구자들은 더 많은 것을 압니다. 

바로 신라는 수평적인 사회에서 수직적인 사회로 변화하는 중에 있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높으신 분들과 낮은 것들의 차이도 있었지만 

우리는 한 공동체라는 의식도 남아있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장군님은 우리 형이나 어르신일 수도 있고, 

높으신 분들의 도련님이래도 우리에게 조카나 동생같은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의 조카나 막내동생같은 도련님이 죽는다. 

지금은 이해하기 힘든 그 시대의 신분의식에다, 

전장의 '연대주의'가 기묘한 조합효과를 내서 

그의 희생은 우리에게 고통이상이 된다는 것이고, 

전우가 아파할 때, 그걸 보는 자신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초사이아인이 되는 것이겠죠. 

어느 공국의 빨간색을 좋아하는 로리대령처럼 

'애숭이니까'라며 냉소적일 수 없단 겁니다. 

그게 높으신 분들이 종종 까먹는 아랫것들의 전장심리학이에요.

(다리따위는 장식이다만 몰랐어도 병사들은 그렇게 안죽어!!!)


무슨 중국 사극급의(마지막으로 본 게 적벽대전 1편;;) 

무술이라도 보였는지 모릅니다만 그도 살고 적도 물리쳤습니다. 

이 김유신 이야기를 시작으로 격동의 시대에 휩쓸린 연인들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나는 살꺼야! 살아서 아이나와 결혼할꺼야!"

갑자기 짐순이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건담명대사가 떠오르네요.


말꼬리 ----------------

1.

폴 앤더슨의 타임패트롤 시리즈 중 델린다 에스트에 나오는 것처럼

누가 이 시간으로 건너가 고구려군에 숨었다가 

김유신을 죽여버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소설 하나쯤 나오면 재미있겠죠?

(본격 단골소설가 도발글!!!!!)

2.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마 쿠베 대인의 "그것은 좋은 것이다"(ㅎㅇㅎㅇㅎㅇ)

3.

제목은 로버트 앤슨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 맨 처음 나오는 말에서..

4.

오래간만에 삼국사기 읽으며 또 명대사.

"솔로몬이여, 내가 돌아왔다!"

5.

자, 오늘 글에서 건담드립은 몇번이나 나왔을까나요?

(정답자에게 줄 선물이 있을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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