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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아! 씩씩하고, 아름답던 그 여자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아! 씩씩하고, 아름답던 그 여자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8. 23. 16:15

덜그럭덜그럭, 목란이 방에서 베를 짠다.

베틀소리 멈추고, 긴 한숨소리 들린다.

무슨 걱정인가 물으니, 무슨 생각인가 물으니

"다른 생각 아니요, 다른 생각 아니요.

어젯밤 군첩이 내렸는데, 가한께서 군사를 부른다오.

그 많은 군첩 속에, 아버지도 끼어 있소.

우리집엔 장남 없고, 목란은 오라비 없으니

내가 안장과 말을 사, 아버지 대신 싸움터에 나가겠소."


동쪽 장에서 말을 사고, 서쪽 장에서 안장 맞추고

남쪽 장에서 고삐사고, 북쪽 장에서 채찍을 사

아침에 부모에게 하직하고, 저녁에 황하에 머무른다.

부모 애타는 소리 못 듣고, 다만 황하 물소리만 청청

아침에 황하를 떠나, 저물어 흑산두에 묵는다.

부모 애타는 소리 못 듣고, 연산 오랑캐 말굽소리 터벅터벅


만리나 변경 싸움터에 나서고, 나는 듯 관문과 산을 넘었다.

삭북의 찬 바람은 쇠종소리 울리고, 찬 달빛은 철갑옷을 비춘다.

장군은 백전을 싸우다 죽고, 장사는 십년 만에 돌아오다.

돌아와 천자를 뵈오니, 천자는 명당에 앉아

공훈을 열두급으로 기록하고, 백 천 포대기의 상을 내린다.

가한은 소망이 뭐냐고 묻거늘, 목란이 대답하되 "상서랑 벼슬도 싫소.

원컨데 명타천리마를 빌려주어 나를 고향으로 보내주오."


부모는 여식 돌아온다 하니, 성 밖으로 나와 환영한다.

누이도 동생 온다 하니, 새 옷 바꿔 입고

남동생은 누이 온다 하니, 칼 갈아 돗과 양을 잡는다.

동각 내 방문 열고, 서상에 내 앉으며

싸움 옷 벗어놓고, 옛처럼 하며

창 앞에서 머리 빗고, 거울보고 화장한다.

다시 나가 전우를 보니, 전우들 놀라며

“십이년을 같이 다녔건만, 목란이 여자인 줄은 몰랐도다.”

수토끼 뜀 걸음 늦을 때 있고, 암토끼 분명치 못할 때 있거늘

두 마리 같이 뛰어 달리니, 그 누가 가려낼 수 있겠는가. 


- 박한제, '목란시의 시대', "이공범교수 정년 기념 동양사논총"(지식산업사, 1993)에서..

 

디즈니의 만화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뮬란”은 

중국의 전통시에서 줄거리를 따왔다. 

무대가 되는 시기는 세계사에 강했던 독자시라면 무척이나 익숙할 

중국 남북조시대 북위 효문제 때. 

원래 북방민족이었던 선비족 탁발씨가 오호십육국이란 동북아의 격동기를 이겨내고 

중국 북방의 대제국을 세운지 50년. 

중국의 어느 정복국가가 그렇듯 매우 결정적인 약점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이었다.

대다수를 차지하고 문화적으로 우월한 한족을 

소수의, 무력만을 가진 북방민이 어떻게 지배할 것인가. 

한족과 간격을 두려던 요․금․원․청과 달리 이 시대의 해법은 민족융합에 있었다. 

이는 오호십육국 초기의 패자였던 갈족의 석륵과 저족의 부견부터 부단히 시도되어 오던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 각 민족간의 감정의 골은 깊어 요즘 유행하는 인종청소도 여러 번 일어났다. 

그런 유혈 속에서도 ‘호한세계’의 완성은 끊임없이 시도되었고, 

북위 효문제의 치세에 와서 어느정도 결실을 맺었다.


효문제는 과감히 한족과의 융합을 시도했다. 

당시까지 ‘국어’라고 불리던 선비어도 금지시키고 

모든 선비 귀족의 성을 중국식으로 바꾼다. 

황실인 탁발씨도 원씨로 개성하였다. 

그리고 전래의 수도 평성을 버리고 중국문화의 태동지이자 중심인 낙양으로 천도한다.(493) 

그는 더 이상 북방민의 ‘가한’이 아니라 거대한 중국대륙 인민의 ‘천자’였다. 

그러나 위의 서술만이 진실의 전체는 아니다. 

분명 선비어의 금지, 중국식의 개성과 낙양으로의 천도는 사실이고 

이 한화정책으로 호한세계는 더욱 다져갔다. 

하지만 효문제가 완전한 중국인이 될 수 없듯이 

완전히 북방민의 모든 것을 버리지 않았다. 

권력의 핵심인 군대 내에선 여전히 선비말이 통용되었고, 

천자도 민중들에게 ‘가한’으로 불려졌다. 

효문제를 비롯한 북위 황제들은 북방과 중국 모두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우리의 여걸 목란이 참가했던 전쟁은 

‘무엄하게’ 가한의 칭호를 사용한 유연과의 최후의 결전이었다. 

493년, 유연 주력을 괴멸시킨 이 전투는 

진정한 ‘호한세계’의 구축, 중국통일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당시 북위를 둘러싼 4대 세력(고구려, 토욕혼, 유연, 남조) 중 

고구려, 토욕혼과는 관계개선에 성공했고, 

최종 목표인 남조의 송을 공략하려면 

가장 적대적인 유연을 무력화시켜야 한다는 전략적 필요성에서 나온 조치였다.

(실제로 고구려와의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고구려를 침공하려다 유연을 의식, 화해를 한 예도 있었다) 

예전의 한이 흉노를 복속시키려다 실패한 것과 달리 북위의 유연공략은 성공적이었다. 

한과 달리 북위인들은 상대를 너무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 전투의 주력은 중국화한 선비귀족도, 

중국인도 아닌 고토에 남아 평시에는 농경에 힘쓰다 

전시에는 전장에 나가 싸우는 북진의 선비인이었고, 

목란은 바로 그들의 딸이었던 것이다. 

그들 사회에서 여인이 싸움에 나선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만화에서처럼 처형의 죄목은 아니었다. 

당시에 자식이나 남편을 대신하여 군사를 지휘 쳐들어온 적을 막은 예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살았다는 통만진은 접경군사지대다. 

무기와 군마에 친숙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또 북위의 여자들은 집 밖의 일에도 나섰다고 기록에 전하니 그리 이상해 할 필요가 없다.


출처 :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 4권, 누르면 커집니다. 네모는 통만진, 밑줄은 북쪽의 군진.


그러나 목란 앞에 놓인 미래가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다. 

비로소 목란이 아름다운 여인이란 것을 안 천자는 그녀를 후궁으로 삼으려고 한다. 

한때 주군으로 섬겼던 이를 남편으로 섬길 수 없다며 

목란은 깨끗하게 자결하고 놀란 황제는 효열이란 시호와 장군직을 내린다. 

상서랑, 높은 관직도 필요없으니 고향으로 보내달라던 그녀의 슬픈 운명이다. 

그리고 그녀의 고향사람들에게도 행복한 시절은 갔다. 

493년의 그 전쟁은 북진의 사람들에겐 영광의 마지막이 되었다. 

낙양의 북위조정이 철저하게 한족화의 길을 걸음에 따라 

그간 선망의 대상이었던 북진은 변화에 순응하지 못한 낙오자의 집단으로 변질된다. 

그녀의 통만진은 여러 군진 중에선 남쪽에 위치했지만 

훨씬 북쪽 최전선에 위치한 6진에서는 곧 북위왕조를 흔들어놓는 세력이 꿈틀거린다. 

서위․북주․수․당으로 이어지는 제국의 건설자들, 

관롱(관중과 농서)집단이 바로 그들이다. 

문명의 혜택에서 소외되었지만 중국 재통일의 기운이 넘쳐나던 곳, 

그곳에서 목란은 나고 자라며 아름다운 꿈을 키워갔던 것이다. 


말꼬리 --------------------------------

1.

언젠가 다른 곳에 남겼던 글을 약간 손대고 올려봅니다.

2.

위 지도에서 6진 전체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주도적 역할을 한 옥야진 정도는 나오지만

관롱집단의 주력을 배출한 무천진이 안나오네요.

3.

그런데 저 이야기는 한국 고대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고구려 정벌을 강력하게 외친 것은 

북위가 동서로 갈라진 후 서쪽에 자리잡아

북주-수-당의 주축이 된 관롱집단과

북제에 있던 동쪽의 명문가+권력을 장악한 이들이었죠.

그 둘이 수-당에서 한 덩어리로 뭉쳐 고구려 멸망까지의 지옥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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