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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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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역사잡설

장한가를 읽으며 양귀비를 생각하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10. 22. 15:17

장한가長恨歌 - 백거이白居易(772-846)

 


모택동의 글씨라는군요..


이른바 한국문학, 단편소설의 황금기였던 시절에

흔히들 말하는 표현이 있었으니

장안의 지가가 올랐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죠.

하도 읽고 읽히다보니 그것을 적을 종이가 모자라 종이값이 올랐다는 말입니다.

그 말의 어원은 이 시를 쓴 백거이,

흔히들 말하는 백낙천의 시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백거이의 시는 신라 사람들도 선호해서

경주의 귀족들은 사람을 시켜

백거이의 신작이 나오면 즉시 적어 경주로 보내게 하였지요.

정말 백거이의 인기는 국경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이 시는 당대 초전성기이자 몰락의 시발점이 된

당 현종조의 가장 큰 사건이었던 안사의 난,

그 중에서 그 도화선이라고 할 수 있는 

양귀비의 부침을 다루고 있습니다.

며느리와 시아버지, 무슨 소라넷 야설같은 이야기지만

나라가 기울어지는 와중에도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그 쓸쓸한 결말 때문에 여태까지 사랑받는 이야깁니다.

물론 대대로 이 시를 읽는 사람들은

遂令天下父母心 마침내 세상의 부모 된 사람들 마음이

不重生男重生女 아들 낳는 일보다 딸 낳은 일을 귀하게 여겼다.

이 표현을 무척 좋아했었지요.


역사학에서는 우연이란 없다, 필연만이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마치 한 사람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인다는 서술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짐순이 스스로도 그런 시각은 배격하고 봅니다.

특히나 짐순이는 시스템에 혼을 배앗긴 아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죠.

그래서 안사의 난이나 당의 황혼을 양귀비의 탓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기계적이지도 합리로만 똘똘 뭉친 존재라고 보지도 않기에

그녀는 그런 분위기에 불꽃을 일으킨 존재라고 봅니다.

아무리 명황 현종이 양귀비를 만나지 않았어도

그의 치세의 문자적 화황과 달리

당의 시스템은 나름의 약점을 가지고 있었고

또 절도사의 독립은 필연적이었으니까요.

다만 당이라는 거대한 냄비 속에 현종과 양귀비,

그리고 안록산이라는 양념들이 화학작용을 크게 일으켜

그 쇠퇴를 더욱 빨리 당겼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들이 아니었어도 누군가 나타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학이 가정법을 사용하지 않으므로 그 이상은 곤란하고..


이 뒷산에 장개석이 갇혀 지냈다고 합니다..


양귀비가 목욕을 하였다는 오늘날의 화청지는

여전히 그녀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로 붐빕니다.

짐순이도 그녀의 기운을 받을까 했었는데

짐순이가 길을 잃었던가 아니 다른이가 잃었던가 하여

사람 찾아 헤메다 제대로 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있습니다.

그냥 기억나는 것은 모택동의 필체로 새긴 장한가 부조와

그 곳에서 멀리 보이는, 서안사변시 장학량이 장개석을 가뒀다는 건물뿐입니다.

다시 온다던 다짐은 그저 대선공약과 같다는 세상의 진리죠.

(중국 음식에 향이 들어간 걸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니

칼로리 바란스로 연명하는 여행은 그닥이긴 합니다.

서안과 북경에서 맥도날드 빼고는 만두집에서나 그나마 섭생을..) 


말꼬리 -------------

1. 오늘 글도 땜빵이얏!

2. 지금 다른 원고가 밀려 삼국사기는 펼 엄두가 안납니다.

3. 당시 여인들 그림하나 넣으면 장땡이지만 그건 나중을 위한 탄약이므로..

4. 짐순이도 지온공국을 무너뜨리는데 기여했으니 나름 경국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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