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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6세기 신라사람의 무덤 발굴..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6세기 신라사람의 무덤 발굴..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12. 5. 20:47

어떤 의미로 경주는 지랄맞은 곳입니다.

천 년을 넘게 한 국가의 수도로 있었던 곳이라

모종삽 하나만 꽃아보려 해도 골치아픈 일이 비엔나 소세지처럼,

아니 텍사스 벌판의 버팔로 떼처럼 밀려온달까요?

농담삼아 화장실 수리만 하려고 해도 도장 받아야할 곳이 한두 곳이 아닙니다.

(비슷한 동네가 있네요. 로마Roma라고..)

한때 현 가카의 빠더께서 경주시민들을 전부 소개시키고

통째로 발굴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는데

요즘은 그냥 예산 잡히는대로 한 채씩 야금야금 사들여 발굴을 합니다..

아마 사들이는데만 2백년은 걸리겠지만 이게 맞는 겁니다.


이런 곳에서 유적이.. 경주는 늘 이래요.


지금 경주박물관에 널려있는(?) 상당수의 금제유물도

꼭 어느 반듯한 무덤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설마 여기에도.. 싶은 곳에서 건져낸 것도 꽤 될걸요.

(직접 그것들을 발견하신 분께 뭐뭐는 다 어디서 찾은 것..하며 살명을 들었는데 기억이... )

 

이걸 직관하지 못한다는 건 참 아쉬운 일입니다..

 

지금 밀려있는 일들로 토하기 직전까지 가는 와중에

기사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이 바닥에 가장 깊이 발을 들이민

연합통신 김태식 기자의 기삽니다.

6세기 신라사람 인골 묻힌 목관 경주서 발견

고고학은 완전 장님인 짐순이는 문화재청에 올라온 보도자료를 긁어봅니다.


경주 천원마을 진입로에서 삼국시대 목곽묘 출토

- 경주 천원마을 진입로 확․포장 공사부지 내 유적 -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최영기)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발굴조사를 하고 있는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94번지 일원 천원마을 진입로 확·포장 공사 부지에서 삼국시대 목곽묘의 부재와 통일신라시대 생활유적이 확인되었다.  


그 동안 신라·가야지역 목곽묘(木槨墓, 무덤 구덩이에 나무곽을 짜서 넣고, 그 안에 다시 시신을 담은 관이나 토기 등의 부장품을 안치하는 무덤형식)에 대한 조사는 많았지만, 목곽묘의 목부재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습지에 무덤을 조성하여 곽의 목재가 잘 보존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되며, 곽의 규모는 길이 230cm, 너비 90cm이다.


곽의 내부에는 인골이 온전한 채로 남아 있었으며, 유개고배(有蓋高杯, 뚜껑이 있는 굽이 높은 접시) 등 토기류도 11점이 부장되어 있었다. 목재의 치목과 결구방식, 매장방식 등 당시의 장례습속(葬禮習俗, 죽은 사람을 땅에 묻거나 처리하는 사회적 관례나 풍속) 연구와 함께 인골 연구 등 신라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또 조사구역과 인접한 경주시 탑동 21-3번지에서 원삼국시대의 목관묘가 발굴되었고, 이 곳 주변은 천관사가 건립되는 등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 도시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이므로, 경주지역의 문화환경 변화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된다.


마을 진입로를 넓히는 공사에 앞서 실시된 구제 발굴에서

6세기(그러니까 500년대) 신라인의 목관묘가 발견되었다는 게 요집니다.

그리고 목재가 잘 남았다는 건

워낙 한반도의 토질이 산성이 강해 수백년 전 분묘의 시신들도 온전치 않습니다.

천 5백년 전인데 목질이 그대로 남았다는 건 매우 희귀한 일입니다.

위 글에서는 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인골에 더 무게 중심을 주고 싶군요.

물론 거의 원형을 간직한 목관이 무가치하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만

1980년대에 통영 상노대도였나

신석기 시대 인골이 발견되었다고 신문 1면에 대서 특필되는 나라입니다.

생활사나 의학사의 관점에서 더 중요하달까요.

정말 몇몇 분들은 오늘부터 잠 못잘 껍니다. 흥분되어서요.

사진으로만 보아하니 인골의 상당수가 많이 남았습니다.

시신 전체가 남은 게 아니라 뼈남 남은 것이라

영양상태라던가 하는 정밀한 조사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뼈에 남겨진 일종의 나이테(병력이나 사망원인 등을 밝혀낼 수 있습니다..)

정도는 조사할 수 있겠지요.

과거처럼 유물만 조사하는 게 아니라 한층 더 깊은 연구를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지요.


발굴조사중 before & after.. -_-;;


말꼬리 -----------------------------------------

1. 그래도 1주에 한 편은 올려야할 것 같았는데 이게 구원하는군요.

2. 약간 멘붕이라 잠시 머리 식히는 중입니다. 12월은 이러지 싶어요.

3. 천원마을이란 지명을 듣고 천원돌파 그랜나간을 떠올린... 아놔..

4. 10만이 넘었군요. 일단은 자생력은 갖췄달까.. 그리 생각해볼랍니다.

5. 사진은 문화재청 보도자료에서 캡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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