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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귀산과 추항, 그리고.. 3 - 백제와 신라의 이젤론 요새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귀산과 추항, 그리고.. 3 - 백제와 신라의 이젤론 요새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4. 12. 18. 21:30

삼국사기 읽기의 초창기 글을 보면 원문의 양이 매우 적습니다. 짐순이나 여러분이나 수준이 올라간 것은 아닐텐데(혹시라도 계실지 모를 분들에게 사과해!!) 이렇게 늘어나는 건, 요즘 끊기가 참 힘들다는 것이죠. 마치 변비환자 화장실에서 명상하듯 뭔가 길어집니다.


원문

眞平王建福十九年壬戌秋八月 百濟大發兵 來圍阿莫<一作暮>城 王使將軍波珍千乾品・武梨屈・伊梨伐 級干武殷・比梨耶等 領兵拒之 貴山箒項 並以少監赴焉


해석

진평왕 건복 19년 임술, 가을 8월에 백제는 대병을 일으켜 아막<혹은 아모라고 한다>성을 포위했다. 왕은 장군인 파진간 건품・무리굴・이리벌, 급간 무은・비리야 등에게 병력을 주어 막게 하였다. 귀산과 추항도 소감으로 삼아 따라가게 하였다.


여기가 모자이크가 좋아 삼국사기를 읽는다는 미친女ㄴ의 서식지입니까?

602년의 가을, 신라가 소타성, 외석성, 천산성, 옹잠성 등 4개의 성을 쌓았습니다. 그것이 전략상 불리해진 것임을 안 백제 무왕은 좌평 해수에게 4만의 병력을 주어 이 성들을 공략하라고 합니다. 현재 이 4개의 성은 어디에 위치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같이 나온 아막성은(백제본기에서는 모산성) 대략 남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전북 남원시 주생면에 위치한 비흥산성(일명 할미산성,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4호)으로 보기도 하지요. 현재의 남원시로부터 약간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요천을 중심으로 인근의 교통로를 장악할 수 있는 요지이지요.


6세기 후반과 7세기의 백제와 신라는 마치 임재범의 노래처럼 어지럽게 엉켜있는 사이였습니다. 전대에는 고구려의 남진에 저항하기 위해 많은 교류가 있었지요. 성왕의 한강유역 회복 시도는 양국의 역사를 한 번 크게 바꿔놓는 발화점이 되었지요. 아시다시피 진흥왕의 한강하류 점령은 백제의 오랜 숙원이 무너지는 계기임과 동시에 보복에 나선 성왕과 좌평 4명, 그리고 병사 2만 9천 6백 명이 전사한 뼈아픈 역사로 이어집니다. 당연히 백제는 신라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칼을 뽑는 상황에 이르렀지요. 


그런 중앙의 정치사적 흥망과 함께, 6세기 후반 백제와 신라 양국은 한반도 동남부에 산개한 가야연맹을 먹기 위해 오랜 기간 다투고 있던 상태이기도 했습니다. 소백산맥 안을 석권하고 장벽을 넘고 싶은 신라의 욕망과 그것을 막고, 가야를 차지하고픈 백제의 욕망이 미친 듯이 충돌하던 상황입니다. 바로 위의 장수군과 남원시는 그러한 물리적 충돌이 원자로처럼 뻥뻥 터져가던 장소입니다. 


이런 중요한 요충지에서 싸움이 일어나는데 신라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밀리면, 뒤를 보이면 죽는 싸움인 것입니다. 마치 이젤론 요새와 같이 여기가 뚫리면 서로 상대의 심장을 향해 “오빠 달려!”를 외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신라도 당시 가장 중요한 중앙 군단인 대당을 비롯 대규모의 병력을 파견합니다. 


백제의 지휘관인 좌평 해수에 맞서 신라에서는 장군인 파진찬 건품・무리굴・이리벌, 급간 무은・비리야 등을 내보냅니다. 파진간은 17관등 중 4위인 파진찬의 좀 더 원초적인 호칭입니다. 왕족인 진골만 가능한 관등입니다. 현재도 9급 공무원의 숫자가 많고 장차관급으로 가면 그 수가 매우 적듯, 보는 사람에 따라 17등급 중 4위라 아주 높아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이 관등에 오를 자의 수는 매우 적습니다. 그러니까 건품과 무리굴, 이리벌은 고위 귀족이라는 것이죠. 그에 비하면 9위인 급찬은 낮아보입니다. 6두품도 오를 수 있는 관등입니다만 그래도 이들도 장군입니다. 그러니까 장군이 될 수 없는 6두품이 아니라 계급이 좀 낮은 고위귀족이라는 거지요. 


신라의 중앙군사제도에 대해 이해가 부족해서, 대충 이해하는 것만 이야기하자면 신라의 군단 시스템은 지금 현대의 한국 군대처럼 사단장과 참모집단, 각 예하부대에 지휘관이 고루 고정 배치된 것이 아닙니다. 아래의 병사들 집단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고위 지휘관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사령부가 설치되고 그때그때 지위부가 구성된달까요. 위의 이름이 언급된 건품이나 주인공인 귀산의 아버지 무은이 항상 군대를 통솔하는 게 아니라 왕이 ‘너님, 출장가셈’하면 그때 부대를 인수해 싸우고, 그게 끝나면 수도에 돌아와 지휘권을 반납하는 형태인 것입니다. 이는 통일기 전쟁 때도 그렇게 유지하지요. 그래서 나당전쟁기의 이런 모습을 행군조직이란 말로 부르기도 합니다.(물론 허겁지겁 읽어본 이인철 선생님 책에선 또 고정이라 하는군요)


그렇다면 귀산과 추항이 맡은 소감이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겠는데.. 아아.. 이 방면에 가장 권위가 있는 이문기 선생님의 “신라병제사”를 읽다가 포기한 이유가 이놈의 군관조직 부분에서 항상 머리가 꼬여서였는데(그래서 한국 고대 전쟁사의 꽃망울이 피워보기도 전에.. 전쟁사분야는 새싹을 정치사에 강탈.. 흑흑..) 오늘 소감에 대한 자료를 구한다고 허겁지겁 읽는다고 어디 되겠습니까. 다만 삼국사기 직관지 무관조의 해당 기사를 보면 장군 아래 부지휘관이나 예하부대장격인 대감의 보좌거나 또 별도로 작은 부대를 지휘하는 역할을 합니다. 장군이 사단장이라면 대감은 연대장, 소감은 대대장..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물론 이 블로그가 저명한 곳이었으면 이 문단은 그야말로 B-29 융단폭격의 향연이었을 겁니다. 듣보잡 군소 블로그라 다행이야. 데헷~♡)


귀산과 추항은 드디어 전장에 나섭니다. 국가 간의 의지와 수만 명의 삶에 대한 욕망이 어지러이 충돌하는 이 전장에서 그들은 무엇에 기대어 앞으로 나아갈까요? 원광 법사의 가르침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요? 한국 고대 전쟁사의 피어오르던 꽃망울, 로자 밀리테리카 앙 부통은 펼쳐보지도 못하고 져버렸지만, 아막성의 꽃은 어떻게 꽃잎을 피울까요?


말꼬리 ---------------------

1.

아무리 봐도 목적의식이 과했던 지난 회차는 망글이었습니다. 인정할 수 없군, 내 어림으로 인한 과오라는 것을.

2. 

3. 
웹 공간에 집이 여러 채지만 여기가 가장 연비가 낮다는 게 개그, 그럼에도 어느 폭죽뵨태는 그걸 또 즐기고 있다는 게 더 개그
4.
원래 삼국사기 읽기는 쉽게 가자는 컨셉인데, 자꾸 판을 벌이려고 해서 문제군요. 항상 짐순이의 제구는 유희의 구속에 홍삼상의 제구력을 합한 것이었지요. -_-;; 
5.
전장에 꽃잎 비유를 한다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인뎁. 역시 뿔달린 빨간 로리대령놈이 보기엔 짐순이도 숙청해야 할 어스노이드. 가랏! 액시즈. 추악한 짐순이와 함께! 하지만 하얀굇수 안문호가 구해주겠지..
6.
그러고 보니 짐순이가 좋아하는 3대 애니(간다무, 은영전, 마리미테) 드립을 한 포스팅에서 하다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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