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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내물왕 26년 - 시대는 변화하고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내물왕 26년 - 시대는 변화하고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5. 3. 18. 14:51

현재 대한민국은 과거의 망령을 고이 저승으로 돌려보내지 못해 산 사람이 사는 세상에 과거의 의지가 혼란을 던지는 꼴이랄까요. 사소하게는 개개인의 꼰대질부터 크게는 국가와 사회의 압축 퇴행의 모습까지.. 아, 그러니까 뭐 이렇게 질질끄나 싶을 정도의 문장을 쓰는 지금 어떻게든 화를 안내려고 비비꼬아 말하려는 짐순이의 마음을 아실라나요.


짐순이가 역사를 좋아한다고 해서 과거 짱짱이라고 주장하지 않음을 몇 번이라도 오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고대사를 공부하고, 그 중에서도 고구려사를 좀 많이 들여다 보지만 그 시절이 아름답다거나 이상적인 사회라고 한 적이 없다는 것을요. 마침 며칠 전에 한국사를 대표하는 명군의 목록에 광개토왕을 올려놓은 것을 보고, 이런 글 쓴 저능아 色姬는 영구격리시켜야 한다고 길길이 날뛴 적도 있지요.(사실 저능아도 많이 참은 겁니다..) 역사를 만지작거리는 사람들에게 넌 과거를 좋아하니까 그 시대로 돌아가면 좋겠구나..라고 한다면 니 엄마는 물장사를 해서 너를 낳았지..라는 말 이상으로 모욕감을 느낄 겁니다. 역사를 보는 것은 바로 현재와 미래를 응시하는 또하나의 길일 뿐입니다.


한국고대사도 관심 없는 사람들에겐 맨날 전쟁이나 해서 땅따먹기나 하던 시대라고 보일 수 있겠지만 그 나름 발전도 있고 위기도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발전 획기라고 불리는 시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화랑얘긴 언제 끝ㅌ낼꺼야!!)



원문

二十六年 春夏旱 年荒民飢 遣衛頭入符秦 貢方物 符堅問衛頭曰 卿言海東之事與古不同 何耶 荅曰 亦猶中國 時代變革 名號攺易 今焉得同


해석

26년 봄과 가을에 가뭄이 들어 흉작으로 백성들이 굶었다. 위두를 부견의 진(전진)에 사신으로 보내 방물을 바치게 하였다. 부견이 위두에게 물어 말하기를 “경이 말하기를 해동의 일이 과거와 같지 않다고 하는데 어찌된 연고인가”하여 답하기를 “하물며 중국에서도 시대에 따라 큰 변화가 있고 (나라의) 이름도 바뀌는데 지금 어찌 같겠습니까”라 하였다.




몇달만에 모자이크를 보니.. 눈물이, 눈물이.. 흑흑흑..

내물왕 26년, 그러니까 서기 381년에 신라는 5호 16국 중 하나인 부견의 전진에 사신을 보냅니다. 소백산맥 이남도 전부 확보하지도 못한 마당에 중국과의 외교를 추진할 여력은 없었습니다. 이 사절파견은 어디까지나 고구려의 협조하에 이루어졌습니다. 모용씨의 연과적대적이었던 고구려가 지금의 서안, 그러니까 장안에 중심을 둔 전진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지요. 마침 전진도 화북의 통일을 완성한 직후였습니다. 


언젠가 전진에 대해 자세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오겠지만, 티베트 계열의 저족 출신인 부견은 그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중국인보다 더 중국인스러웠습니다. 5호 16국 시대의 제갈량이라 불려도 손색없는 중국인 왕맹을 재상으로 등용하여 번영을 누렸지요. 한족과 호족의 융합을 최초로 시도했던 사람입니다.


한대의 역사/지리정보에 이해도가 높았던 부견은 인사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상세한 사정을 묻고는 자신이 책에서 본 과거의 자료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이건 왜 이러냐고 묻습니다. 지금 수준에서 보자면 참 멍청한 질문도 다 있다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자칭 천하를 다 가겼다는 사람에게서, 그리고 정보의 유통이 원활하기 않던 시대를 생각하자면 부견은 보통의 군주는 아니었던거죠. 


신라 사신 위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우리는 위 문장을 빼곤 알 수 없습니다만, 대답만을 보자면 꽤 지식이 풍부했던 사람같습니다. 중국의 역사가, 시대가 변하는 것처럼 우리의 시대와 역사도 바뀌는 것이라는 대답을 하지요. 아무래도 왕조국가의 경우 앞선 놈들은 망했지만 우린 안망한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대고 나라도 바뀐다고 하지 않고, 이름이 바뀐다고 두리뭉실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역시 보통 사람은 아닙니다. 적어도 중국인, 중국문화, 왕조국가의 성격같은 것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외교력을 가진 것입니다. 그것도 여러 번 다녀오며 정보가 축적된 것이 아니라 처음 가본 곳에서 말이지요.


그냥 읽으면 심심하고 뻔한 이야기 하는 장면같지만 그 속 내용은 지극히 외교적 수사가 가득합니다. 그냥 어께 펴고 내  할 말만 하는 게 외교라고 생각하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의 상당수보다 어쩌면 위두가 더 나은 거겠지요.


이 사료는 다른 의미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많은 분들이 한국사 교육시간에, 혹은 시험을 위해 들쳐본 수험서들에서 한국고대국가의 기틀을 다진 왕들 이름을 들어는 보셨을 겁니다. 고구려는 태조왕과 고국천왕, 소수림왕이 거론될 것이고, 백제에서는 고이왕과 근초고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라는요? 네, 위두를 전진에 보낸 내물왕이겠지요. 특히 4세기에 한국의 고대국가, 고구마 백개 심자가 급격한 성장을 했다고 보는 역사학계에서 그 발전상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떠올리는 이야기입니다.


박대재 선생님의 "의식과 전쟁"(책세상)이 나온 이후 4세기 변혁론을 어떻게 봐야하나라는 의문은 머리 속에 희미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워낙 게으른 짐순이女ㄴ이라 골똘히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해봐야지 이러고 있는데, 돌이켜보면 과연 그 얇은 책조차 이해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다 읽었는가부터 따져야겠군요. 일단 잠정적으로 4세기의 변혁론을 긍정하곤 있습니다만, 그걸 부정하던 아니면 더 새로운 관점으로 그걸 긍정하던 제대로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은 하게 되는군요.(이러면 짐순이의 수명은 3천년 정도로 늘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신데마스 게임만 하느라 세월 다보내는 현 상황부터 반성해야.. .


말꼬리 -----------------------------------

1.

이제 머리 아픈 일 중 딱 하나가 끝났으니(물론 다시 시작되긴 했습니다만..) 조금 시간이 나겠군요. 미노프스키 입자 살포 직후 연방군 상황이 이거지 싶어요.

2. 

반성해야 한다고 하지만 짐순이가 이렇게 귀여우니 그만둘 수 없는 거예요!(죽어!)


짐순이가 제일 귀여운 게 당연하죠. 여러분들은 그런 것도 모르고 계셨나요?


3. 

하물며 천칠백년 전 사람도 역사의 발전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오늘의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해서 안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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