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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한국고대사를 위해 필요한 위진남북조사의 이해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한국고대사강좌

한국고대사를 위해 필요한 위진남북조사의 이해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5. 4. 22. 11:40

위진남북조시대의 의미




1. 위진남북조는 어떤 시기인가?



① 중국 역사상 후한(後漢)의 멸망부터 수(隋)의 재통일까지를 위진남북조시대(220~589)라고 통칭함. 

② 중국에서의 ‘고대’사회였던 한이 멸망하고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무너짐으로 시작함. 앞선 시대인 진ㆍ한제국이 중국인 중심으로 유지되어온 반면, 위진남북조 시대는 중국북방의 호인들과 중국인이 서로 충돌하기도 하고 공존하기도 하면서 중국 역사의 새로운 흐름을 열어낸 시대.

③ 한제국의 활발한 대외정복으로 북방의 여러 종족들이 중국 내지로 강제 이주당함. 이들의 존재를 중국의 중앙정부가 억제하지 못함에 따라 새로운 시대를 여는 단초를 제공함.



2. 위진남북조 시대의 변화



가.  삼국ㆍ위ㆍ진

① 후한은 서기 184년의 황건적의 난으로 사실상 몰락. 권력은 동탁의 집정기를 거치며 공백기를 거쳤으나 화북 군벌의 한 명이 조조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를 옹립하면서 사실상 붕괴.(조조 사후 그의 후계자인 조비가 222년 헌제에게 양위를 받았음)

② 황하유역을 중심으로 한 조조의 위, 양자강 하류를 장악한 손권의 오, 사천성에 자리잡은 유비의 촉이 280년까지 대립.(촉은 이미 263년에 위에게 멸망)

③ 삼국통일 와중에 위왕조는 끝나고 사마씨의 진왕조로 교체함(265년)

④ 진은 천하 통일 후 황족간의 내분으로 혼란에 빠짐(8왕의 난, 291~306)

⑤ 진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중국 내부로 강제 사민되었던 흉노, 갈, 강, 저, 선비족이 대대적으로 발흥하여 진왕조를 무너뜨리고(영가의 난, 316) 중국 북부에 자신들의 민족국가를 건설(5호 16국)

⑥ 삼국~진에 이르는 동안 활발한 동방진출을 벌인 터라 한반도와의 관계는 좀 더 복잡 다양해짐.


나. 5호 16국

① 중국 북부에 흉노, 갈, 강, 저, 선비 등의 제 종족이 한, 전조(흉노), 전연, 후연, 서연, 남연, 북연(선비 모용부), 대, 북위(선비 탁발부), 전진(저), 후진(강), 후진(갈) 등의 국가를 건설.

② 이들은 국가를 세웠으나 중국인을 포용할만한 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민조근 물론 중국인과도 유합하지 못하는 약점을 보여 단명으로 끝남.

③ 이때의 경험이 후일 북위의 호한정책에 반영.

④ 특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고구려는 가장 적대적인 선비족의 전연과의 대결을 위해 후조, 전진과의 관계를 강화하였.


다.  북조

① 선비족 탁발부의 북위(건국, 386)는 중국북부의 군소국가들을 통합함.(439)

② 5호 16국 시대의 각 국가들이 중국 북부의 다양한 민족집단을 포용하지 못한 것에 영향을 받아 호족과 한족의 융합을 추구함.

③ 효문제가 낙양으로 천도한 이후(495) 급격한 한화정책 추진. 그에 대한 선비족의 반발로 6진의 반란이 일어나 사실상 붕괴.(524)

④ 북위가 일시 동위와 서위로 양분되었으나 각각의 실력자 우문태와 고환이 북주와 북제를 건국함.

⑤ 한반도와의 관계에서 북위는 고구려에 대한 외교를 중시하였다. 북위가 동북아시아의 최강자로 부상하게 되자 북쪽의 유연, 동쪽의 고구려, 남쪽의 송ㆍ제, 서쪽의 토욕혼이 북위를 포위하는 역관계를 구축하기도 하였음. 그 와중에도 북위와의 관계는 시종일관 온건한 분위기였으나 그를 계승한 북제, 북주와는 긴장관계 조성(나중에 고구려와 수ㆍ당의 전쟁에도 영향을 줌)


라.  남조

① 진이 영가의 난으로 멸망하게 되자 진의 황족 중 일부가 양자강 이남으로 남하하여 망명정권인 동진을 건국함.(317)

② 그 뒤를 이어 유유의 송(420), 소도성의 제(478), 소연의 양(502), 진패선의 진(557)이 차례로 건국.

③ 북조가 다양한 민족구성을 갖는 것과 달리 남조는 토착 강남의 한족과 영가의 난으로 피난온 북방의 한인들로 구성.

④ 남조는 주로 백제ㆍ신라ㆍ가야와 교섭.



3. 위진남북조대의 책봉의 의미



① 이 시기의 중국의 외교정책은 다분히 상대 국가보다 더 우월하고 정통성을 가진 나라임을 과시하기 위한 것임.

② 남북조시대에 접어들면서 단순히 상징적인 면을 넘어서 적성국가를 압박하거나, 자신의 전쟁에 뭐나 도움이 될만한 것을 필요로하는 정도로 발전함.

③ 중국의 고유한 문명이라고 생각하던 진제국이 이민족에 의해 멸망당하면서 다른시기보다 중화주의적인 면은 많이 줄어듬.



말꼬리 -------------
개인적으로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부인정권 이전 전반부)까지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정치제도에서 튀어나오는 몇몇 이름들은 이 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지요. 이미 한참전에 끝난 귀족제, 관료제 논쟁에서 하다못해 미야자키 이찌사다의 "구품관인법 연구"만 읽었어도 그 논쟁은 안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요즘 고대사에서도 가끔 관료제 이야기가 나오는데 .. 글쎄요. 개인적으로 그리 호감주고픈 논의는 아니라서요.

신라의 군주제라거나 몇몇 제도, 용어들도 이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고대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교과서같았던 당시의 중국에서 그 개념들을 차용해왔다고 하는 게 맞겠지요. 군주제의 경우 초창기 만들어질 당시의 개념과 거의 유사합니다.

중국사에서도 그닥 인기가 없는 시대기는 하지만(연구자 수가 앞 뒤 시대에 비해 적지요) 그래도 한국사하는 입장에서 관심을 두어야 하는 시대인 것은 맞습니다.

언젠가 정리해두었던 요약본 화일을 발굴해내어 올려봅니다. 로스트 테크롤로지!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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