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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식민지 시대는 과연 견딜만 했는가..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식민지 시대는 과연 견딜만 했는가..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4. 9. 11:50

십수년을 넘게 역사책만 후벼파면서

몇가지 가지고 있던 생각 중의 하나가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어서 못한 일을 해내는 사람들에 대해 존경심을 갖자'였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구식 화승총을 들고 용감히 일어선 의병들,

먼 만주에서, 시베리아에서 풍찬노숙을 하던 독립군들,

감옥에서 극한의 고통을 맛보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은 독립운동가들,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도 목숨을 바쳐 싸우던 군인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난 투사들.

그 상황에 마주하였을 때, 그렇게 싸울 자신이 없다.

아마 조용히 입다물고 숨어살았을 것이다.

비겁하지만 그렇다고 꺼삐딴 리의 삶은 못살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삶을 살아온 분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인간으로서, 역사가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음지에 쳐박힌 인간에 끌려 역사공부를 시작했는데

나이를 먹어가며 계속해야할 이유가 더 늘어났다.


어느 학자나 자기가 가진 학설이 있다.

고대사로 치면 부체제론을 믿던, 성읍국가/중앙집권적 귀족국가론을 믿던,

철지난 이야기지만 고려시대 관료제론을 믿던,

아님 약간 최신식의 통일신라 관료제론을 믿던,

온달이 단양에서 죽었다거나 서울 아차산에서 죽었다거나 아님 제3의 장소라 생각하거나

그런 모든 생각들을 다 품을 수는 없는 일이고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밀고 갈 권리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다른 생각도 인정하고,

또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자료의 엄정한 검토와 왜곡을 거부하는 자세가 전제조건이 된다.


워낙 바르지 못하고 철분이 부족해선지 

논문을 읽으며 싫은 소리도 하고, 메모도 남기고, 가끔은 비난도 했지만 

그 저자에 대해 존재를 부정하진 않았다.

'나는 내 학설을 믿어야 하지만 네가 강제로 그럴 의무는 없다'

이게 있어야 학문은 항문이 되지 않는다.


이제 앞에 늘어놓은 두 이야기를 하나로 합쳐야겠다.

제목에 나온 것처럼 일제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사람들은 현란한 통계자료를 들어가며

일제시대가 한국사회를 근대적으로 변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냉정하게 놓고봐도

왕조의 신민이 한쪽은 사회주의를 가장한 왕조국가의 신민이 되고

한쪽은 '민주주의' 공화국의 시민이 되었다.

농업이 가장 중요한 산업에서 상공업이 중요한 사회가 되었다.

저 윗 동네는 그렇다 치더라도 7천만이 넘는 한반도 거주인 중

5천만이 근대적인 세계에 살게 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특히나 그 36년 동안에 민족의식이 크게 진작되고,

개인의 발견이 높아지지 않았던가.

이렇게만 본다면 식민지 근대화론은 훌륭한 학설 중 하나로도 보인다.

그러나 고양된 기분은 거기까지다.


통계는 정직하다.

그들은 그렇게 이야기 한다. 동의한다. 통계는 솔직하다.

그러나 그것을 만지고 해석하는 인간들은 정직하지 않다. 그게 문제다.

일제는 어떻게든 자기들의 통치가 조선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피눈물나는 노력임을 입증해야 했다.

일본인을 위한 의료시설과 교육시설을 만들고는 조선에 세웠으니 조선 것이라 했다.

일본의 견인포와 군용트럭이 만주까지 이동하기에, 또는 의병들과 불순분자들 때려잡기 편하도록

넓게 도로를 만들고는 교통의 혁명이라 했다.

통계에는 그러한 인간의 의도는 설명할 능력이 없다.

한 번 묻겠다.

영하 80도의 냉동고에 오른 손을, 영상 100도의 오븐에 왼손을 넣었다.

평균내니 상온 20도, 당신은 행복할 수 있습니까?라고

그 통계조차도 세밀하게 뒤져보면 결코 은혜로운 식민통치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그러고는 나라를 위해 몸바친 사람들이 테러분자라고 한다.


수년 전에 논문 하나 발표한 주제라 학자라고 하기엔 민망한 신세다만

그렇게 많은 논문과 책을 써내는 분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고민스럽다.

자신을의 생각을 표현할 자유를 만들겠다고 인생과 생명을 바친 사람들에게 

작은 존중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이들도 존중의 대상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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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한국인이 어떤 사회를 겪어왔는지

서중석 선생의 지배자의 국가, 민중의 나라(돌베개, 2010)의 서문이라도 읽어주시고,

일제시대가 어떤 세상이었는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동북아 역사재단에서 내놓은 일제 강점 지배사의 재조명(2010)의

권태억 선생의 총론과 박찬승 선생의 일제시대 생활상에 대한 부분을 읽어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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