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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동아시아 율령제는 (적어도 한국과 일본) 분식회계였다,,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동아시아 율령제는 (적어도 한국과 일본) 분식회계였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8. 9. 13. 14:38
두보의 '석호의 관리'에선 아들들을 모두 징집하고도 모자라 할아버지를 데려가겠다며 관리가 문을 두드린다. 산상억량의 '빈궁문답가'에선 밀린 세금을 내라고 촌장이 문을 두드린다. 시대는 늦지만 '청산별곡'에서는 이링공디링공하야 선을 넘으니 사슴이 울타리에 올라 금을 켜는 환성을 본다.

언젠가 이거 이야기를 해야지 하고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이 있었다만 다시 끄집어낼 일이 생긴다.(목가죽 한 장이 엄청 즐겨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내년 상반기..읍읍) 일단 뇌의 먼지부터 털고..

직관지/백관지, 혹은 당육전의 정교한 설계도, 혹은 스냅사진, 또는 매우 긴 시간 노출을 해서 찍은 사진만 놓고보면 아름답다 못해 현자타임 가질 판이다. 그 기록에는 아랫것들의 파열음이 들리지 않는다. 옹정제가 아닌 이상, 즈은하~ 태평성대이옵나이다..라고 하면 구중궁궐에서는 알 길이 없다. 누렇거나 붉은 두건, 혹은 털복숭이 이민족, 개기름 떡칠한 강한 신하가 칼을 들고 궁궐을 들어서야 그기 아이라는 걸 알게 된다. 아니 모르고 죽거나.

명청, 조선왕조까지 어찌보면 율령제다. 그러나 특별히 중국의 중세(즘슈니는 교토대쪽이다) 한국과 일본의 고대를 그 시대로 부른다면 그것은 완성형이 아니라 가려고 노력한 시대다. 특히나 고려, 가마쿠라 막부 이후 지배체제가 후퇴한 것 같지만 고대의 분식회계의 장기지속이 불가능하다는 걸 솔직하게 인정한 거다.

가장 극단적인 예지만 헤이죠쿄에서 헤이안쿄 사이의 어느 시대에 이런 계획이 입안되었다. 100만 정보를 개간하여 모자란 농지를 확보한다. 그게 왼료된 것이 메이지 초기다. 일본에서 발견된 촌락문서의 성격을 두고, 이게 일반촌이냐 국가 직영이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만 어느 쪽이라 해도 정반대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차피 선진시대~진한시대의 제민지배체제처럼 집의 숫가락 숫자까지 파악하려는 노력은 했다. 어느 정도 억지로라도 관철하기도 했고, 지금과 달리 고대사회가 인간구성원 배치가 입체적이지 않고 점과 선으로 이루어져 어느 정도 파악가능했다는 이점도 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많은 원인을 들 수 있으나 근본적으로 국가 자체의 역량에 비해 체제 유지를 위해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하니 파탄이 난 거다. 상대적으로 중앙집권성향이 강하다는 한국에서도 조선 성종조, 분권성향이 강했던 일본은 메이지 초반에야 장가적으로 추진가능해진 거다. 결코 율령제 후퇴가 그 사회, 조직니 후퇴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역량을 이해하고, 유지가능한 수준까지 물러난 것이다.

현대의 이런 구조에 대한 이해는 솔직히 구중궁궐과도 같다. 서진의 혜제가 쌀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않나라고 반문한 것과 같다. 이를테면 징집가능 규모, 인력배치, 예산 배분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F-22, 원자력추진 항공모함과 이지스함 선단을 요구하는 거과 같다.


내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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