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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7 01:57

아주 오래간만에 이 블로그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고 여행후기를 더는 안쓰겠다는 것은 아니지요. 어찌되었든 이야기는 다시 이어갑니다.


- 원문
公主獨歸 宿柴門下 明朝更入 與母子備言之 溫達依違未決 其母曰 “吾息至陋 不足爲貴人匹 吾家至窶 固不宜貴人居” 公主對曰 “古人言 ‘一斗粟猶可舂 一尺布猶可縫’ 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 可共乎”

- 번역문
공주는 홀로 돌아와 싸리문 아래서 잠을 자고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온달)모자와 더불어 자세히 말하였는데, 온달은 마음이 정해지지 않라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온달의 모친이 말하기를, "우리 자식은 지극히 천하니 귀인의 배필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우리 집은 매우 가난하니 그런 고로 귀인이 머물만한 곳이 못됩니다"라 하였다.
(그러자) 공주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옛 사람의 말에 한 되의 곡식으로도 방아찧을 수 있고, 한 척의 포로도 꿰멜 수 있답디다. 즉 진실로 한 마음이 될 수 있다면, 어찌 부유한 연후에야 같이 살 수 있답니까"라 하였다.


이거 길거리에 나가 만나는 처자마다 '내 아를 낳아도!'라 졸랐다간 뺨을 맞을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어느 바보는 같이 살아드리겠다는 아가씨가 나타났는데도 도망을 갑니다.

사실 저 상황에선 '넌 누구냐'란 의문과 함께, '얘랑 놀다간 10분안에 저 뱃 속에서 소화되고 있겠구나'란 생각을 한 건 당연하다고 한 달 전에(눼, 무려 한 달 전입니다) 이야기 했었죠.

이 이야기에 따르면~ 온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간 것으로도 부족해 문을 걸어 잠그고 방 안에서 오돌오돌 떨었음이 분명합니다. 공주는 밤이슬을 맞으며 온달네집 보초를 섰겠지요. 자, 방안의 두 사람은 용변을 어찌 처리했을까요? 긴장한 순간에는 방출의 욕구도 없어집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아침에도 멀쩡하게 있으니 귀신이나 여우는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더는 여기서 밀릴수 없다는 공주는 단도직입적으로 두 사람에게 말하죠.

"내가 니 아를(당신 손자를) 낳아주마!!"(물론 뻥입니다)

사실 온달이 우물쭈물하며 답변을 못한 건 당연합니다.
평생을 없이 살던 놈 앞에 갑자기 어린 아가씨가 같이 살자니 놀라는 건 당연하지요.
갑자기 살자고 하니 어떻게 먹여살릴까요.
다 큰 어른이 무섭다고 도망와 밤새 벌벌떨었지요.
밤새 문고리잡고 있었음은 안봐도 뻔합니다.

보통의 한국의 어머니라면(정확히 말하면 드라마에 나오는 분들이라면)
이런 대단한 집의 딸내미가 온다니 반기겠지요.
조금만 약해보여도 우리 귀한 아들을 어덯게 저런 여자에게 보내냐고
평지풍파를 만들어내는데요. (물론 드라마 얘깁니다)
그러나 온달의 모친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내 아들이 비천하고 우리 집이 누추하니 귀한 자식을 못들이겠다라 합니다.
오호라, 고구려의 어머니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어머니들보다 더 고결한 건가요?

온달을 이야기할 때 많은 분들이 신흥 귀족이거나 평민이라는 입장에서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신분제가 얼마나 강고한가를 생각하면
공주와 결혼한 온달은 낮은 신분도 아니고
신분이 안맞으면 결혼은 불가하다는 모친이 대단한 정신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뭐, 이런 대사가 나오는 정도라면 굉장한 지적수준이죠)
그저 저 대사는 신분의 벽이 높음을 이야기 합니다.

신분제에서의 결혼은 오로지 동급하고만 이루어집니다.
남자의 경우, 첩이나 성적 파트너의 경우 낮은 신분의 여자를 취하는 것은 허용되지요.
그건 허용의 대상입니다. 정실 부인만 되지 않는다면요.
대를 이어갈 자식의 피에 더러운 아랫것 피가 섞이지 않으면 됩니다.
그래서 호부호형의 아픔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낮은 신분의 남자는 높은 신분의 여자를 얻지 못합니다.
만약 그걸 시도하려 했다간 여자의신부의 집단에 속하는 남성들이 가만있지 않죠.
자기가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천한 것의 소유가 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단 심리랄까요?
만약 시도했다간 비극이 일어나겠죠.
귀한 여인을 노렸다고 남자가 죽거나, 신분의 고귀함과 몸을 더럽혔다고 여자가 죽거나,
아님 둘 다거나.. .

그래서 장보고의 딸은 왕비가 되지 못하고, 장보고도 죽어야 했고요.
같은 진골임에도 불구하고 김서현(김유신의 아버지)
진흥왕의 조카딸과 결혼하기 위해 납치극을 벌여야 했고요.
소지왕은 지방민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가 동네 노파에게 혼나고 의문사를 당하지요.
아들을 낳았는데도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지증왕이 왕위에 오르기도 합니다.
신분의 벽을 넘는다.. 로맨스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만은 아닙니다.

공주는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카운터 펀치를 한 방 날리죠.
아무리 가난해도 다 같이 살아갈 수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
만약 마음만 맞는다면 행복해질 수 있는데
어찌 부유해진 다음에야 같이 살 수 있단 말이냐고 말합니다.
그날 이후로 온달네 집에는 수저 한 쌍이 더 생겼습니다.


좀 더 꼼꼼히 읽으신 분이라면 위에서
온달은 낮은 신분이 아니다..라 해놓고 또 신분은 넘기 어렵다는 말을 한 것에서
엄청난 모순이 숨어있음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뒤로 돌려야겠습니다.
하나의 포스팅으로 잡아야할 문제고 또 슬슬 머리가 아파옵니다.
공주의 마지막 공격을 이야기하며 끝내야죠.
온달 마지막쯤 제대로 이 문제를 이야기 할 것을 약속드리죠.


Favicon of http://eejemap.tistory.com BlogIcon 잡학왕 | 2009.09.17 03:42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소지마립간 부분은 그냥 넘겨봤던 건데.....저리 생각할수가 있었군요. 소지마립간의 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증마립간이 64세인데 왕이 된 이유도, 왕이 그 여자를 만난지 2달만에 죽은 것도 그렇고.....음~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09.09.18 02:41 신고 | PERMALINK | EDIT/DEL
아까 전화로 말했으니 댓글에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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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6 09:00

8월 25일은 볼 것이 많았습니다.
24일글을 3편으로 나누었는데 25일은 5편 이상은 끌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우리 지온은 10년은 싸울 수 있다던 님께 묵념.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망했자나요!)
오늘은 볼 것 투성이인 집안의 유적들을 돌아보기 전에 예열한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짧게 나가겠습니다.

밤에 집안으로 들어와 도시가 어떤 모습인지 확인할 기회는 없다시피 했습니다.
몇몇 분들은 발마사지도 받으러 가셨지만
워낙 오녀산성에서 흘린 땀이 많아 빨리 씻고 싶은 맘 밖에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변방 중의 변방인지라 몸조심도 해야한다는 말이 심야산보를 막았습니다.
뭐, 한밤중에도 길 전체가 공사중인데다 밤에 문을 여는 곳도 없으니 마땅히 할 일도 없지요.
왜들 그렇게 한국의 밤문화, 밤문화..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8시가 지나며 상점들은 하나 둘 문을 닫았으니까요.
그렇게 밤은 지났습니다.



숙소 창문에서 바라본 공원의 모습.
고구려 유적공원이라고 붉은 글씨로 새겨놓은 공원에 가봐야 한다는 생각은
귀국 비행기에서나 났습니다.
아직까지 RGM-79에겐 유적만이 중요하단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을 봐야한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에야 생겨난 생각이니 통탄스럽지만
뭐, 첫 여행입니다.
(올 가을에 나라, 교토를 갈 예정인데 이 경험으로 인해 공원구경도 일정에 들어갑니다)



우선,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짐정리를 하는 시간이니 아직은 한산했습니다.
일행분들은 아침에 공원을 가보셨다는데
왜, 누구라고 콕 찝어 말할 수 없는 머저리는 아침 먹을 때까지 방안에서 기다렸을까요?



RGM-79가 운전을 안하는 이유는 순간 대처능력이 약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지면 모든 게 멈춘다는 것이죠.
그러나 타지역으로 출장이 빈번한 지금, 겨우 맘을 달래어 운전을 배울 생각을 하려는데
중국의 길거리는 그러한 생각을 막아 버립니다.
어느 분이 그러셨습니다.
나중에 차를 몰고 직접 돌아댕기는 것이 어떻냐구요.

차들도 행인을 염두에 두지 않고 속도를 줄이지 않고요,
행인들의 횡단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생각함에 두려움이 없으면 천만인이 막아도 간다더니
맹자님의 나라는 더 진화되어 차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는 부처님의 나라는 어떨까.. 이런 잡생각도 해봅니다.
(이거 이 발언이 외교문제로 발전하진 않겠죠?)
운전은 꽤나 거칠게들 하는데 그걸 모두들 잘 피합니다.
이분들은 강화인간인가요? 뉴타입인가요?
언젠가 중앙선을 넘어 추원하는 차와 우리 일행의 차가 충돌에 가깝게 스쳐지났는데
여기 분들은 위험하지 않았다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다시 공원입니다.
정말 가봤어야 했어요. (죽은 아들 뭐 만져준다고 일어나냐? 어인 후회를 그리 하누!)



전날 밤에 고기(!)를 먹으러 갈 적에 파출소가 있고 이 차가 있어 찍으려다
소심한 마음에 포기했는데(그래놓고 사진불가지역에선 공안 옆에서 사진찍으려고 한 RGM-79)
마침 숙소 앞에 세워져 있길래 찍어보았습니다.



뭔가 차를 잡으려는 듯한 아가씨들. 그나마 듕궉에서 본 몇 아니되는 미혼 여성들입니다.
그래서 감히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숙소를 나왔을 때는 사람이 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사람들도 집안에서 나와 일터로, 학교로 향합니다.



그냥 거리를 찍었습니다.



사실 RGM-79가 기대한 건 집안 시내를 돌아댕기는 것이었습니다.
오녀산성이나 환도성도 중요하지만 국내성만큼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진은 이것 한 장 뿐입니다.
그냥 차를 타고 스쳐지나갔거든요. 이 사진도 차 안에서 찍은 겁니다.

이것을 더 보아야 했습니다.
400년 고구려의 도읍의 흔적을 찾았어야 했는데
풍남토성 이상으로 집안시는 파헤쳐지고 있었고, 성벽은 제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한지 오랩니다.
1930년대의 사진 속에 남은 것은 고사하고
지금 2009년의 모습이라도 담아야 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이란 것에 등재되는 덕에 대대적인 파괴는 면했다지만
언제 저 모습이라도 남아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동북공정이 끝나고, 그 중요성이 어떤 요인에 의해 감소한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다른 일정을 줄여서라도 이것만은 보자, 100미터라도 걸어보자..라고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오녀산성의 잔존 성벽을 더 살피지 못한 것과 함께 아픔으로 남습니다.

귀국 길에 국내성이라도 보려면 경비가 얼마 드나 물어보았더니
혼자 온다면 비수기라도 80만원은 들 것이란 말에 다시 갈 엄두도 안났습니다.

변수 동으로 흐르고 봄 풍경은 끝이 없는데,
수대의 궁궐은 벌서 행적도 없다.
나그네여! 긴 둑에 올라 바라보지 말라.
바람 일어 버들개지 날리면 사람의 근심을 자아낸다.
- 이익(748~827? 당의 시인), 변하의 노래

시인은 이미 사라진 폐허를 보고 보지 말라,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만
역사학 전공자는 굳이 그 폐허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사람입니다.
보지 못하고 눈물 흘리는 것보단 보고나서 아파하는 게 낫습니다.
역사의 현장은 아사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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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RGM-79의 블로그(http://rgm-79.tistory.com),
그리고 야구 사이트 이닝(
http://www.inning.co.kr),
그리고 다음 카페 신나는 점프점프(http://cafe.daum.net/jump0080)에 올라가고 있습니다.
가을하늘 | 2009.09.16 23:41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저도 국내성이 몹시 아쉬웠습니다. ...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09.09.17 00:02 신고 | PERMALINK | EDIT/DEL
언제 다시 가야 하는데 그 날이 올런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누가 연구비 좀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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