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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7 01:00

모자이크에 눈길이 가는 사람은 지는 겁니다.

앞에서 온달을 소개했으니 이제는 여주인공인 공주를 소개할 차례입니다.

대개 평강공주라고 불리고 있으나 실제 이름은 알 수 없습니다. 평강공주라는 이름은 평강왕의 공주라는 뜻으로 불립니다.

 자, 기록을 살펴보죠.

- 원문 -
1. 平岡王少女兒好啼
2. 王戲曰 “汝常啼聒我耳 長必不得爲士大夫妻 當歸之愚溫達” 王每言之
3. 及女年二八 欲下嫁於上部高氏
4. 公主對曰 “大王常語 汝必爲溫達之婦 今何故改前言乎 匹夫猶不欲食言 況至尊乎 故曰 ‘王者無戱言’ 今大王之命 謬矣 妾不敢祗承”


- 번역문 -
1. 평강왕에게는 작은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울기를 잘하였다.
2. 왕이 놀리며 말하기를 "너는 항상 울어 내 귀를 아프게 하는구나. 장차 커서는 사대부의 아내는 될 수 없으니 마땅히 바보(같은) 온달에게 시집보낼 수 밖에 없구나"라  하였다. 왕은 매번 (공주가 울 때마다) 그렇게 말하였다.
3. 공주가 자라 16세가 되어 상부의 고씨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하였다,
4. 공주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대왕께옵서는 항상 말씀하시길 '너는 필히 온달의 처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어찌 전에 하신 말씀을 고치십니까. 필부도 식언을 하지 않으려 하는데 하물며 지존께서 그러시다뇨. 옛 말에 '왕은 헛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지금 대왕의 명은 잘못된 것이므로 소녀는 감히 따를 수가 없습니다"라 하였다.


공주의 첫 등장은 이리 파격적입니다. 이쯤되면 막가자는 건가요?
공주가 어릴 때부터 너무 울어대니 왕이 놀리는 대목부터 시작하죠.
뭐, 호랑이가 잡아간다, 혹은 망태할아범이 잡아간다는 식의 뻥카성 달래기를 하는데
왕도 이 말이 문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입니다.
눼, 아이들은 아직 사회화가 크게 진척되지 못하여
다른 이의 말을 잘라서 부분적으로 기억하거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죠.
동일패턴 농담의 잦은 사용의 부작용이 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군요. -_-;;;;

下嫁라는 단어는 공주의 결혼을 말합니다.
아무래도 왕과 동급의 지위가 없는지라 왕족과 결혼하지 않는 한 대개는 귀족과 결혼해야 했습니다.
(서양과 달리 이웃나라 왕자와 결혼하는 경우는 매우 적었습니다)
그러니 아래 쪽으로 시집가는 것이지요.
상부의 고씨에게 보낸다고 하는데 상부가 뭔가는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죠.

아직 사건은터지지 않았으니 서장은 이쯤에서 끝내죠.
다음에는 저잣거리를 떠돌던 온달과 궁궐 안에서만 사는 공주,,
절대 만날 일이 없었던 두 남녀가 드디어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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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vicon of http://kr.blog.yahoo.com/exturned BlogIcon 검객노찬엽 | 2009.07.28 14:21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모자이크에 눈길이 가서 졌;;;ㅋㅋㅋ
담글부터가 서막의 시작이군요...흥미로운 내용인듯;;ㅋ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09.07.29 11:20 신고 | PERMALINK | EDIT/DEL
패배를 축하드립니다(응?)ㅋㅋㅋㅋ
오오오 | 2013.12.30 11:39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단호해서 단호박같은 평강공주! 역사를 공부하려면 한자를 배워야 되겠군요.. 의욕 50% 감소 ^_ㅠ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3.12.31 13:41 신고 | PERMALINK | EDIT/DEL
한구고대사연구 초창기엔 일어도 알아야 했었다죠.
뭐, 60년대까지는 연구성과가 일본이 압도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전문적으로 달려들 것 아니라면 굳이 잘 알지 못해도
여유있게 공부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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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6 10:54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관련된 전설로
그가 삼국사기를 펴내면서 과거의 사료를 불태워 자신의 저작만을 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과연 그가 그랬던 것일까?

김부식보다 한참 뒤에 살았던 이규보의 글에서 한가지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동명왕(東明王)의 신통하고 이상한 일을 많이 말한다. 비록 어리석은 남녀들까지도 흔히 그 일을 말한다. 내가 일찍이 그 얘기를 듣고 웃으며 말하기를,
“선사(先師) 중니(仲尼)께서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씀하지 않았다. 동명왕의 일은 실로 황당하고 기괴하여 우리들이 얘기할 것이 못된다.”
하였다. 뒤에 "위서(魏書)"와 "통전(通典)"을 읽어 보니 역시 그 일을 실었으나 간략하고 자세하지 못하였으니, 국내의 것은 자세히 하고 외국의 것은 소략히 하려는 뜻인지도 모른다. 지난 계축년(1193, 명종 23) 4월에 "구삼국사(舊三國史)"를 얻어 동명왕본기(東明王本紀)를 보니 그 신이(神異)한 사적이 세상에서 얘기하는 것보다 더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귀(鬼)나 환(幻)으로만 생각하였는데, 세 번 반복하여 읽어서 점점 그 근원에 들어가니, 환(幻)이 아니고 성(聖)이며, 귀(鬼)가 아니고 신(神)이었다. 하물며 국사(國史)는 사실 그대로 쓴 글이니 어찌 허탄한 것을 전하였으랴. 김부식(金公富軾) 공이 국사를 중찬(重撰)할 때에 자못 그 일을 생략하였으니, 공은 국사는 세상을 바로잡는 글이니 크게 이상한 일은 후세에 보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생략한 것이 아닌가?
- "동국이상국집" 2 고율시 동명왕편 서문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
에서 긁어왔음을 밝힙니다.

무신정권기의 문신인 이규보가 동명왕편을 쓸 당시에 "구삼국사"라는 책이 남아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구삼국사"란 삼국사기 이전(대개는 고려 초로 봅니다)에 간행된 삼국의 역사서죠.
(구라는 접두어는 삼국사기 편찬 이후에나 붙었을 것이고 아마 원제는 삼국사겠지요)
삼국사기가 편찬된 것이 1145년이니 반세기가 넘도록 과거의 역사책도 남아있었고,
독자들이 각자의 장단을 파악할 정도로 공존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이글을 쓸 당시 이규보는 일개 포의였기 때문에
왕궁에 비장된 도서를 보고 지었다라는 가설도 성립랄 수가 없죠)

그렇다면 한가지 질문을 던져봅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십수가지의 고기古記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보이지 않으니 일연이 불태워 버린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자연 도태된 것으로 보입니다.
범엽의 후한서나 진수의 삼국지 이전 이후에도 많은 역사서가 간행되었으나
남아있는 것은 둘 뿐입니다.
많은 당대의 학자들이 이 둘 외에도 다른 책들을 참고하기도 하였으나
남은 것은 둘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둘이 정부의 공인을 받은 것, 그 중에서 가장 잘 된 것이라고 해야겠죠.
출판량이 매우 적은 시기에다 보관도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잘되었고, 국가의 공인을 받은 것 외의 책을 보관하기란 어려움이 많겠죠.
가뜩이나 전쟁이나 분쟁이 많고 정치적 부침이 심했던 시기에
두 책 외의 책이 안전하게 보존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동물도 개체수가 많아야 종족유지의 확률이 더 높아지지 않습니까?
아마 "구삼국사"와 수많은 고기류는 그런 과정을 거쳐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나 "구삼국사는" 정부공인 역사서가 나옴에 따라,
또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이 널리 퍼져감에 따라 점점 설 자리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입니다.
다들 김부식을 유학에 눈이 멀어 역사를 삭제하였다 욕은 하지만
나름 과거의 특수성을 의외로 많이 인정했던 사람이고
도리어 조선시대 유학자들로부터 '저 자식 유학자 맞아?"란 비난을 얻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김부식보다 더 특수성을 주창했을 역사서가 안전하게 보존되리란 희망은
애시당초 무의미한 것은 아닐까요?
비판적인 것은 좋지만 하지 않았을, 혹은 하지
못할 것에 대한 비난은 온당치 않습니다
.
신고
Favicon of http://topsy.tistory.com BlogIcon 즈라더 | 2012.06.28 20:09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김부식 죽이기에 의해서 만들어진 황당한 주장이죠. -.-;;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2.06.28 20:12 신고 | PERMALINK | EDIT/DEL
우리 부식옵하는 그러한 삶을 살지 않았'읍'니다~. 여러분!!
Favicon of http://comterman.tistory.com BlogIcon 컴터맨 | 2012.06.29 13:09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언제 어디서 들어온 정보인지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아마도 '국민학교'인듯)

김부식 = 나쁜놈
삼국사기 = 가짜, 사기

제 머리속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흠...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2.06.29 13:20 신고 | PERMALINK | EDIT/DEL
우리 부식옵하가 이렇게 나쁠리가 없어라는 라노베라도 쓰고싶어요. 엉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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