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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6 04:18

추석연휴 잘 보내셨나요? 요즘 정신없이 돌아다니다보니 집에 들어오면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 것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추석연휴에는 종일 드러누워 있었으니 그것을 한탄하는 아내가 없음이 다행이고, 그를 달래기 위해 백결선생처럼 거문고를 뜯어야 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온달과 같이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공주에겐 한가할 여유조차 없군요.


- 원문
乃賣金釧 買得田宅·奴婢·牛馬·器物·資用完具 初買馬 公主語溫達曰 “愼勿買市人馬 須擇國馬病瘦而見放者 而後換之” 溫達如其言 公主養飼甚勤 馬日肥且壯

- 번역문
이에 금팔찌를 팔아 땅과 집, 노비, 소와 말, 가재도구를 사니 살림살이가 장만되었다. 처음에 말을 사려할 때, 공주가 온달에게 말하기를, "시정상인의 말은 절대 사지 마세요. 반드시 국마로 병들고 파리해서 내놓는 것을 고르세요"라 하였다. 온달이 그 말에 따라 (말을 사니) 공주는 매우 정성으로 키웠다. 말은 나날이 살이 찌고 또 건장해졌다.


앞서 궁을 나올 적에 공주가 팔찌 수십 매를 차고 나온 것을 기억해 주세요. 그것은 공주가 자기를 받아줄 지 모를 남자와 살아가며 치룰, 자기가 뿌리치고 나온 가족들과의 총성없는 전쟁을 위한 나름의 군자금 구실을 하였습니다.

팔찌를 팔아 모은 돈으로 사들이는 것을 주목해주세요. 농사지을 땅과 집, 노비, 소와 말, 그릇과 가구 등의 가재도구를 장만했습니다. 이를 일러 고구려가 상당한 경제적 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기도 합니다.
물론 부의 창출이라는 점에선 중요한데, 이 때가 모든 땅은 왕의 소유라는 토지개념이 자리하던 때도 아니고, 상행위는 어느 때에라도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 사회경제적 분화가 고구려 전기에 이미 존재했다는 점에서 너무 지나치게 의미를 두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수서" 고구려전에 '(인두)세는 베 5필에 곡식 5석이다. 유인(여러가지 논란이 있지만 유목민족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듯 싶습니다)은 3년에 한번을 내되, 열사람이 어울러서 세포 1필을 낸다. 조(소득세)는 가장 높은 호는 1석, 다음은 7두, 그 다음은 5두이다'라고 기록된 것처럼 소득에 따른 차등세율을 적용한 것으로 보면.. 또 가능한 사회지 싶기도 한데요.  

'설화상으로는' 온달의 신분이 낮았기에 조선후기와 같은 변화상을 생각하고
막연히 신분의 상승이랄까 경제력 강화를 떠올렸다간 단 큰 코 다칠 문젭니다.
당시의 신분제는 현대인의 이해범위를 조금 넘어선다고 봐야겠지요.

다만 앞서 말한 임재해 선생의 시각처럼
복덩어리 여성이 집안에 들어와 가운을 일으킨다는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하여튼 공주의 경제적 기여는 온달에게 더는 거리를 떠돌지 않게 해주었다고 봐야겠지요.

이 부분을 설화적으로 보게 만드는 대목은 국마를 사오는 대목입니다.
온달이 탈 말을 사오게 하는데 공주는 병들어 내쳐지는 국마를 사오라고 하지요.
제대로 관리받지 못하다 공주의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자
금새 본색을 드러낸 준마!
좀 낮익은 이야기지 않습니까?

고구려를 세운 시조 동명성왕 신화에서도 부여의 금와왕이 말을 기르는 일을 시키자
좋은 말은 혓바닥에 바늘을 꽃아 여리게 만들고 노둔한 말은 더 잘멱여 키우죠.
다시 바늘을 뽑자 날랜 말이 되었다는 이야기, 기억나십니까?
이 대목을 가지고 당시 고구려 사회의 기강이 흐트러졌다고 확대해석하시면 곤란하고요.
평생 노동을 해보지도 않은 공주가 말을 잘 보살피다니요.
말을 잘 타고 다니고 다루기를 좋아했을 수는 있으나
병든 말을 다시 살려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을 다루었을까에 대해선 의문이 가지요.
그러니까 집장만을 했던 것처럼
공주가 내조를 잘했다는 것의 설화적 과장은 아닐런지요.

(부제를 붙일 적에 칼 폴라니의 책 "인간의 살림살이Livelihood of man"를 생각했더랍니다)



지나가다 | 2014.06.25 03:16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부족사회의 공주는 말이 애완용이며 자가용이었을거 같습니다. 눈만 뜨면 말이 보였으니까요.
그러므로 현대의 좀 사는 집 애들이 고급승용차를 장난감처럼 다루듯
당시의 말이 사람들과 그정도로 친숙했다고 상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말을 보살피며 살찌워 건강하게 만드는 일은 일반적 상식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왕도 평생 몇 백리밖을 떠나보지도 못했을 수도 있을테고 왕이 한미한 온달의 소문까지 들을 정도였으니
도읍이라고 해도 요즘의 일개 동네 정도도 안됬을 수도 있겠지요.
-조선 시대 성을 봐도 그 면적이 얼마안되므로
백성의 생업이 거의가 농업 축산 등의 일차산업이었으므로 공주도 그런 환경속에서
자연스럽게 지식을 체득했다는 생각입니다.
하여 과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4.06.25 18:17 신고 | PERMALINK | EDIT/DEL
일단은 부족사회란 말은 적절하지 않다는 태클부터 달고요.

그런데 여자가 말을 탈 수 있느냐는 그때그때 다릅니다.
유목사회가 아닌 이상.
전통사회에서 여성은 극히 제한적이죠.
중국사만 봐도 춘추전국 때는 불이 나도 남자의 손을 잡을 수 없는 법도 때문에
노나라의 공녀가 불에 타죽죠.
또 위진남북조야 워낙 인종적 잡탕이고
그 연장선상의 당대에는 말을 탈 줄 아는 여성들이 많았지요.
한국사로 봐도 조선시대야 아예 여자들을 묶는 방향으로 나갔으니 제껴놓고
삼국이나 고려도 종종 벌어지긴 하지만
점차 중국처럼 변해가거든요.

그리고 고대사회의 인구밀도는 지금과 달라서
그냥 한 곳에 모여사는 형태고,
그러다보니 왕도같은 곳의 규모는 오히려 조선보다 더 크죠.
...

사실 도움 되는 답변은 아닌데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하려니 너무도 상반되는 것들이 돌출하여
(게다가 그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해줄 기준점조차 없는!!!)
답글 다는 이순간의 머리가 너무 아픕니다.

확실한 건
삼국시대 후반의 왕실이라면 이미 백성들의 삶과 멀어진지 오래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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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7 01:57

아주 오래간만에 이 블로그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고 여행후기를 더는 안쓰겠다는 것은 아니지요. 어찌되었든 이야기는 다시 이어갑니다.


- 원문
公主獨歸 宿柴門下 明朝更入 與母子備言之 溫達依違未決 其母曰 “吾息至陋 不足爲貴人匹 吾家至窶 固不宜貴人居” 公主對曰 “古人言 ‘一斗粟猶可舂 一尺布猶可縫’ 則苟爲同心 何必富貴然後 可共乎”

- 번역문
공주는 홀로 돌아와 싸리문 아래서 잠을 자고 아침이 되어서야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온달)모자와 더불어 자세히 말하였는데, 온달은 마음이 정해지지 않라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온달의 모친이 말하기를, "우리 자식은 지극히 천하니 귀인의 배필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우리 집은 매우 가난하니 그런 고로 귀인이 머물만한 곳이 못됩니다"라 하였다.
(그러자) 공주가 대답하여 말하기를, "옛 사람의 말에 한 되의 곡식으로도 방아찧을 수 있고, 한 척의 포로도 꿰멜 수 있답디다. 즉 진실로 한 마음이 될 수 있다면, 어찌 부유한 연후에야 같이 살 수 있답니까"라 하였다.


이거 길거리에 나가 만나는 처자마다 '내 아를 낳아도!'라 졸랐다간 뺨을 맞을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어느 바보는 같이 살아드리겠다는 아가씨가 나타났는데도 도망을 갑니다.

사실 저 상황에선 '넌 누구냐'란 의문과 함께, '얘랑 놀다간 10분안에 저 뱃 속에서 소화되고 있겠구나'란 생각을 한 건 당연하다고 한 달 전에(눼, 무려 한 달 전입니다) 이야기 했었죠.

이 이야기에 따르면~ 온달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간 것으로도 부족해 문을 걸어 잠그고 방 안에서 오돌오돌 떨었음이 분명합니다. 공주는 밤이슬을 맞으며 온달네집 보초를 섰겠지요. 자, 방안의 두 사람은 용변을 어찌 처리했을까요? 긴장한 순간에는 방출의 욕구도 없어집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아침에도 멀쩡하게 있으니 귀신이나 여우는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더는 여기서 밀릴수 없다는 공주는 단도직입적으로 두 사람에게 말하죠.

"내가 니 아를(당신 손자를) 낳아주마!!"(물론 뻥입니다)

사실 온달이 우물쭈물하며 답변을 못한 건 당연합니다.
평생을 없이 살던 놈 앞에 갑자기 어린 아가씨가 같이 살자니 놀라는 건 당연하지요.
갑자기 살자고 하니 어떻게 먹여살릴까요.
다 큰 어른이 무섭다고 도망와 밤새 벌벌떨었지요.
밤새 문고리잡고 있었음은 안봐도 뻔합니다.

보통의 한국의 어머니라면(정확히 말하면 드라마에 나오는 분들이라면)
이런 대단한 집의 딸내미가 온다니 반기겠지요.
조금만 약해보여도 우리 귀한 아들을 어덯게 저런 여자에게 보내냐고
평지풍파를 만들어내는데요. (물론 드라마 얘깁니다)
그러나 온달의 모친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내 아들이 비천하고 우리 집이 누추하니 귀한 자식을 못들이겠다라 합니다.
오호라, 고구려의 어머니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어머니들보다 더 고결한 건가요?

온달을 이야기할 때 많은 분들이 신흥 귀족이거나 평민이라는 입장에서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신분제가 얼마나 강고한가를 생각하면
공주와 결혼한 온달은 낮은 신분도 아니고
신분이 안맞으면 결혼은 불가하다는 모친이 대단한 정신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뭐, 이런 대사가 나오는 정도라면 굉장한 지적수준이죠)
그저 저 대사는 신분의 벽이 높음을 이야기 합니다.

신분제에서의 결혼은 오로지 동급하고만 이루어집니다.
남자의 경우, 첩이나 성적 파트너의 경우 낮은 신분의 여자를 취하는 것은 허용되지요.
그건 허용의 대상입니다. 정실 부인만 되지 않는다면요.
대를 이어갈 자식의 피에 더러운 아랫것 피가 섞이지 않으면 됩니다.
그래서 호부호형의 아픔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낮은 신분의 남자는 높은 신분의 여자를 얻지 못합니다.
만약 그걸 시도하려 했다간 여자의신부의 집단에 속하는 남성들이 가만있지 않죠.
자기가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천한 것의 소유가 되는 것은 참을 수 없단 심리랄까요?
만약 시도했다간 비극이 일어나겠죠.
귀한 여인을 노렸다고 남자가 죽거나, 신분의 고귀함과 몸을 더럽혔다고 여자가 죽거나,
아님 둘 다거나.. .

그래서 장보고의 딸은 왕비가 되지 못하고, 장보고도 죽어야 했고요.
같은 진골임에도 불구하고 김서현(김유신의 아버지)
진흥왕의 조카딸과 결혼하기 위해 납치극을 벌여야 했고요.
소지왕은 지방민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가 동네 노파에게 혼나고 의문사를 당하지요.
아들을 낳았는데도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지증왕이 왕위에 오르기도 합니다.
신분의 벽을 넘는다.. 로맨스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만은 아닙니다.

공주는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카운터 펀치를 한 방 날리죠.
아무리 가난해도 다 같이 살아갈 수 있는데 뭐가 문제인가.
만약 마음만 맞는다면 행복해질 수 있는데
어찌 부유해진 다음에야 같이 살 수 있단 말이냐고 말합니다.
그날 이후로 온달네 집에는 수저 한 쌍이 더 생겼습니다.


좀 더 꼼꼼히 읽으신 분이라면 위에서
온달은 낮은 신분이 아니다..라 해놓고 또 신분은 넘기 어렵다는 말을 한 것에서
엄청난 모순이 숨어있음을 발견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뒤로 돌려야겠습니다.
하나의 포스팅으로 잡아야할 문제고 또 슬슬 머리가 아파옵니다.
공주의 마지막 공격을 이야기하며 끝내야죠.
온달 마지막쯤 제대로 이 문제를 이야기 할 것을 약속드리죠.


Favicon of http://eejemap.tistory.com BlogIcon 잡학왕 | 2009.09.17 03:42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소지마립간 부분은 그냥 넘겨봤던 건데.....저리 생각할수가 있었군요. 소지마립간의 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증마립간이 64세인데 왕이 된 이유도, 왕이 그 여자를 만난지 2달만에 죽은 것도 그렇고.....음~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09.09.18 02:41 신고 | PERMALINK | EDIT/DEL
아까 전화로 말했으니 댓글에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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