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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써주세요.. 개판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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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써주신다면 만든 보람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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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1 21:52

論曰
人君卽位 踰年稱元 其法詳於春秋 此先王不刊之典也 伊訓曰 成湯旣沒 太甲元年 正義曰 成湯旣沒 其歲卽 太甲元年 然孟子曰 湯崩 太丁未立 外丙二年 仲壬四年 則疑若尙書之脫簡 而正義之誤說也 或曰 古者 人君卽位 或踰月稱元年 或踰年而稱元年 踰月而稱元年者 成湯旣沒 太甲元年 是也 孟子云 太丁未立者 謂太丁未立而死也 外丙二年仲壬四年者 皆謂太丁之子太甲二兄 或生二年 或生四年而死 太甲所以得繼湯耳 史記便謂 此 仲壬 外丙爲二君 誤也 由前 則以先君終年 卽位稱元 非是 由後 則可謂得商人之禮者矣


사론(史論): 임금이 즉위하면 해를 넘겨 원년을 칭하는 것은 그 법이 춘추에 상세히 있으니, 이는 고칠 수 없는 선왕의 법이다. 이훈(伊訓)에 ‘성탕(成湯)이 이미 죽었으니 태갑(太甲) 원년이다.’하였고, 정의(正義)에는 '성탕이 이미 죽었으니 그 해가 곧 태갑 원년이다.’라 하였다. 그러나 맹자에 ‘탕왕(湯王)이 죽자 태정(太丁)은 즉위하지 않았고, 외병(外丙)은 2년, 중임(仲壬)은 4년이다.’라고 하였으니, 아마 상서(尙書) [이훈]에 몇 글자가 빠져서 정의의 잘못된 설명이 나온 듯싶다. 어떤 사람은 "옛날에 임금이 즉위하면 어떤 경우는 달을 넘겨 원년을 칭하기도 하고, 혹은 해를 넘겨 원년을 칭하기도 하였다."고 말한다. 달을 넘기고 원년을 칭한 것은 ‘성탕이 이미 죽었으니 태갑 원년이다.’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맹자에서 '태정이 즉위하지 않았다.'라고 한 것은 태정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음을 일컬음이고, ‘2년, 중임은 4년이다.’한 것은 모두 태정의 아들인 태갑의 두 형이 태어나서 2년 혹은 4년만에 죽었음을 말하는 것이니, 태갑이 탕(湯)을 이을 수 있었던 까닭이다. 사기(史記)에서 문득 중임과 외병을 두 임금이라 하였으나 잘못이다. 전자에 따르면 앞 임금이 죽은 해에 [남해 차차웅이] 즉위하여 원년을 칭하였으니 옳지 않고, 후자에 따르면 곧 상(商)나라 사람의 예법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남해차차웅 즉위년조.

(번역은 네이트 한국학의 번역을 그/대/로 옮깁니다)


딱 한 번 원칙을 깨겠습니다.
원래 이 블로그를 맹글면서 세운 원칙 중 하나가 번역은 스스로 하자였습니다.
뭐, 삼국사기 번역서를 낼 것도 아니고
아무리 연구자라해도 한문실력이 출중하지 않음은 주변인물이라면 다 아시고,
설령 여길 모르고 오셨던 분들이라하셔도 그걸 기대하진 않으시겠죠.
그래도 아무리 개판이래도 스스로 하자는 건 최소한의 예의입니다..만
솔직히 이 부분을 읽을 때치고 편하게 넘어간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만은 정문연본 삼국사기의 번역을 그대로 긁었습니다.
절대 읽어낼 자신이 없는 색복지만큼은 안읽습니다.
그건 번역본을 읽어도 환장하겠거든요.
모르면 모르겠다.. 솔직히 밝히고 시작하겠습니다.

삼국사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 김부식이 사대주의에 찌들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초장부터 깨는 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으로 나오는 사론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평이 아니라
범례가 되었습니다.
나, 이제 앞으로 일케일케 할테니 니들은 그런줄 알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동양의 햇수를 세는 법은 요즘처럼 서기, 단기, 불기..식으로
절대적 기준이 되는 해를 정해 그 후로 세는 법이 아니라
정치적 지배자를 중심으로 해를 셉니다.
서기 몇 년에 태어났다가 아니라 무슨 왕 몇 년에 태어났다.. 이런 식이죠.
옆 나라 일본에서 1988년은 쇼와 64년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즉위한지 64년 째 되는 해라는 뜻이죠.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모든 왕들이 12월 31일 오후 11시 59분 59초에 죽어준다면 문제가 없는데
그렇게 '칼같이' 죽는 것은 바늘 위로 원산폭격하기 보다 더 어렵단거죠.
만약 A라는 왕이 7월 27일에 죽었고, 그의 아들이 7월 28일에 업무를 이어받았다면
그 해는 어느 왕의 치세에 해당되느냐가 문제가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두가지 방안이 나오게 됩니다.
첫째 유년칭원법.
만약 7월 27일에 A왕이 죽고, 왕자 B가 뒤를 이었다해도
그 해는 여전히 A왕의 치세에 들어갑니다.
B가 다음해 정월에 천지와 조상들에게 알리고 정식으로 즉위식을 거행해야
비로소 새로운 원년으로 쓰지요.

둘째는 즉위년 칭원법.
왕자 B가 부왕을 이어 옥좌에 앉은 순간부터 원년으로 칩니다.
그러니까 한 해가 전왕의 말년이자 신왕의 원년으로 겹칠 수가 있죠.
어차피 일을 새로 시작하는 데 그게 원년이지 아니냐는 방식입니다.

삼국사기를 서술함에 있어 바로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거서간이 죽고
아들인 남해차차웅이 즉위함에 따라
그 기사를 어떻게 처리할까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 한 번만 쓰고 버릴 것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부딛치는 문제거든요.
그래서 김부식은 사론의 형식을 빌어 범례를 정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아마 이 부분은 김부식의 독단이 아니라
그가 참고했던 서적들로부터 이어져온 문제같습니다.
만약 방식을 바꾸면 모든 기사의 연대를 다 바꾸어야 하거든요.
(가뜩이나 오차가 있는 기년의) 오차도 더 늘어날 것이고요.
그러나 기본적으론 유년칭원법이 옳다고 생각하니까
이 모순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상나라도 그랬으니 여기서도 가능하다는 '판례'를 이끌어낸 것 같습니다.
그의 고민이 엿보인달까요?
현대 한국사학의 과제로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를 말하지만
적어도 중세사가들 중에서 김부식만은 고민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후배격인 조선조의 학자들은 좋게 말해 신념이 있었고,
나쁘게 말하면 좀 더 교조적이었으니까요.

적어도 삼국사기를 비판하기 위해선 32개의 사론이라도 읽어야 합니다.
과연 김부식, 그가 사대주의에 환장한 배알도 없는 놈이어던가
그의 글이나 읽어보고 말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말꼬리: 보름 가까이 방치한 것에 대한 변..
1. 머리가 굳었습니다. 콜로니라도 떨어졌는지 여름엔 이럽니다.
2. 23일부터 27일까지 듕궉에 다녀왔습니다.

그치만 이걸로 변명 축에도 못끼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3. 사료 그림화일을 이어붙이는 것이 귀찮아서였습니다.
이거 신선하죠?
돌을 던지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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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8 23:08
요 며칠 머리회전도 멎어버려 아무 일도 못했습니다.
여름이기도 하고요(여름은 쥐약입니다) 지쳐버린 탓이기도 했습니다.
공부도 공부고, 블로그 관련 세 집 살이를 하는데 전부 손을 놓아버렸습니다.
휴가도 없는 일상이 사람 기력빠지게 하나봅니다.
그러다 몇 년 전에 보고 분노했던 기사를 다시 읽어버렸습니다.
아니 웹 공간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죠.


이 기사를 다시 읽으며 맥이 빠져버렸고, 의욕이란 게 다시 살아나지 않습니다.

여기서 삼국사기 블로그를 열었다고 해서 무조건 빠돌이 역할을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김부식이란 인간 자체도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삼국사기도 완벽한 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땅의 사람들에게 구역질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김부식이나 삼국사기 못잡아먹어서 안달난 사람들이 많은데
정말 읽어보고 비판하는 것인지 궁금한 비판이 상당수지요.
김부식을 사대주의자라고 비판하는 의견이 특히 많은데
그 엄한 내용 완독하라고 권하지도 않습니다.(복식지같은 부분은 RGM-79도 안읽습니다)
32개의 사론, 그리고 각 지에 서두에 달린 서문만이라도 읽어보세요.
어떤 사론은 극우민족주의자가 아닌가 싶은 것도 있습니다.
처음에 사론 분석을 하면서 대체 이 사람의 머리 속에 뭐가 들었는지 이해도 안되고
심지어는 선생님 앞에서 울다시피 한 적도 있습니다만
전형적인 중세 코스모폴리탄이랄까요?
민족과 세계, 즉 특수와 보편의 문제에서 가급적이면 보편을 외치지만
만약 두가지가 충돌하면 민족의 중심에서 특수를 외친다고 해야할까요.
오히려 조선시대에 신라의 고유한 풍습을 정당화한다고
보수꼴통 소릴 들었다는 것은 왜 무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를 깎아내렸다고요?
역사는 오락이라고 주장하시는 옆나라 모 할마씨 이후 더 심해진 것인지도 모르는데
동양의 역사서술이 좀 딱딱하고 형식적인 면도 없지 않지만
적어도 어느 사서에라도 지켜지는 원칙은 있습니다.
바로 지어내지 말자. 다시 말해서 붓들고 장난치지 말자는 것입니다.
19세기 이래 나온 서양의 역사서처럼 저자의 개성이나 사상이 배어든 게 아니라
철저히 자료집이라는 형식을 고수하면서까지 지켜낸 원칙이죠.
(아, 몇몇 얼치기들이 그걸 들어 동양에는 역사학이 없다고까지 하는데
서양의 원기록 자체도 자료집이란 걸 깜빡해서 하는 소릴테지요.
뭐, 삼국사기나 중국의 사서는 가까운 반면에
서양 자료는 애시당초 구경하기 힘드니 서양은 다 그럴 것이다란 착각이고)
썪어빠진 유학자라면 절대 잘라내 버렸을 이야기들도 살려낸 게 김부식입니다.
물론 그의 입장에서도 너무 황당하다 생각되는 건 배제했겠지만
적어도 마구마구 깎어버린 것이 아니란 건 제대로 읽어본다면 아실껍니다.
아예 김부식이 내용을 지어낸 창작물로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황당합니다.
아주 엄밀하게 말하자면 편집자의 역사관이 가미된 자료집으로 봐야겠죠.

치우가 실존인물인지도 모르고, 하물며 그가 우리랑 동족인 것도 확실치 않습니다.
(나중에 글을 올리겠지만 그놈의 동이족이란 개념은 문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월드컵 이후 그의 얼굴이랍시고 그려놓는 것은
보통 귀면와라고 부르는 삼국-통일신라시대 기와의 문양에서 따온 것인데
(미술사가 강우방은 용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론 지지하는 바입니다)
요즘은 대놓고 우리민족인 치우천왕의 얼굴이라 하더만요.
그런 이야기를 기준점에 두고 우리나라 역사는 위대한데
김부식이란 개호로자식이 역사를 깎아내렸다 하니 대체 어디서부터 웃어야 할까요.

더군다나, 이 분이 소속된 신문사는 국가주의라던가 하는 것에 진저리를 내는 곳인데
그곳의 기자는 국가주의의 허상 아래 할딱거리고 계시고..
Favicon of http://BLOG.DAUM.NET/crow97-00 BlogIcon 붉은비 | 2012.11.15 09:04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대학 다닐 때 들었던 수업에서(대체 경영학도가 한국중세사 수업은 왜 들었던지...ㅜ.ㅜ)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삼국사기야말로 동양 역사서의 최고봉에 있는 역작이다"
그 이유인즉, 김부식 이전의 그 누구도 그처럼 '크로스 체킹'을 철저히 하면서 저작을 하지 않았다,
라는 것이었죠.(말이 좋아 크로스 체킹이지 천년간 쌓여온 문헌으로 그런 작업을 하다니 상상만
해도 토할 것 같습니다...-_-;)

짬짬이 눈팅을 하다가 어느덧 09년까지 거슬러올라왔네요.
매번 재밌는 글 감사히 읽고 있다는 인사를 뒤늦게 드립니다.^^

뱀다리> 병약미소녀 컨셉이 이 시기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3년간
건강이 안 좋아지신 것 같군요. 추워진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길...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2.11.15 10:36 신고 | PERMALINK | EDIT/DEL
우리 부식옵하가 동양역사서의 최고봉을 썼다는 건 과찬이십니다.
알고보면 틈도 많아서..
엄청난 자료가 쌓인 건 아니지만 나름 뭔가를 찾아내려고 열심히 노력하기는 했죠.

계속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병약미소녀 된지는 좀 오래되었는데
초반에는 발톱을 감추었을 뿐이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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