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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2 04:43

 

왕명

재위

서력

事      項

文咨王

1

492

위魏에서 사지절도독使持節都督 요해제군사遼海諸軍事 정동장군征東將軍 영호동이중랑장領護東夷中郞將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 고구려왕高句麗王에 책봉함.

3

494

부여왕이 항복함. 신라와 살수薩水에서 싸움.

4

495

백제의 치양성雉壤城을 공격하였으나 신라의 원군에 격퇴당함.

5

496

제齊에서 거기장군車騎將軍으로 올려줌. 신라의 우산성牛山城을 공격함.

6

497

신라의 우산성牛山城을 함락시킴.

7

498

왕자 흥안興安을 태자로 삼음.

10

501

백제에서 수곡성水谷城을 공격함.

11

502

백제에서 변방을 공격함.

15

506

백제를 공격하였으나 눈으로 회군함.

16

507

장군 고로高老를 보내 한성漢城을 치게 하였으나 격퇴당함.

17

508

양梁에서 무군대장군撫軍大將軍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로 책봉함.

21

512

백제의 가불성加弗城․우산성圓山城을 함락시켰으나 백제왕의 요격에 패함.

28

519

왕이 죽음. 태자 흥안興安이 즉위함.

安藏王

2

520

양梁에서 영동장군寧東將軍 도독영평이주제군사都督營平二州諸軍事 고구려왕高句麗王에 책봉함. 위魏에서 안동장군安東將軍 영호동이교위領護東夷校尉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 고구려왕高句麗王에 책봉함.

3

521

졸본卒本에 행차하여 시조묘 참배. 돌아오는 길의 州邑에 1인당 1곡斛의 곡식을 사여함.

5

523

백제를 쳤으나 격퇴당함.

11

529

왕이 직접 출정, 백제의 혈성穴城을 빼앗고 백제군과 싸워 이김.

13

531

왕이 죽음. 왕제 보련寶延이 즉위. (고려高麗에서 그 왕 安을 죽였다 -일본서기 계체繼體 25年)

安原王

2

532

위魏에서 사지절使持節 산기상시散騎常侍 영호동이교위領護東夷校尉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 고구려왕高句麗王에 책봉함.

3

533

왕자 평성平成을 태자로 삼음.

4

535

동위東魏에서 종전 작호에 표기장군驃騎將軍을 더함.

10

540

백제에서 우산성牛山城을 공격하였으나 격퇴함.

15

545

왕이 죽음. 태자 평성平成이 즉위함. (고려高麗에서 대란이 발생하여 죽임당한 자가 많았다 - 일본서기 흠명欽明 6年)

陽原王

4

548

동예병東濊兵 5천으로 백제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으나 신라新羅가 구원함. 환도丸都에서 가화嘉禾를 바침.

7

551

돌궐突厥이 신성新城에 쳐들어왔으나 격퇴함. 백제․신라가 한수유역漢水流域을 공취해감. (신라가 죽령竹嶺에서 고현高峴까지 10군의 영토 획득. 고구려승려 혜량慧亮이 귀순함 - 거칠부전居柒夫傳)

8

552

장안성長安城을 쌓음. (북제北齊에서 유망민 5천호를 송환해감 - 북사北史 고려전高麗傳)

10

554

백제의 웅천성熊川城을 공격하였으나 패함.

11

555

태천泰川 농오리산성籠吾里山城을 축조함.(진흥왕眞興王이 북한산을 순수함 - 북한산비北漢山碑)

13

557

왕자 양성陽成을 태자로 삼음. 환도성丸都城에서 반란이 일어남.

15

559

왕이 죽고 태자 양성陽成이 즉위함

平原王

2

560

졸본卒本에 행차하여 시조묘始祖廟에 참배. 귀로의 주군州郡의 사형 이하의 죄수를 사면함. 북제北齊에서 사지절使持節 영동이교위領東夷校尉 요동군공遼東郡公 고구려왕高句麗王으로 책봉함.

4

562

진陳에서 영동장군寧東將軍에 책봉함.

7

565

왕자 원元을 태자로 삼음. (북제北齊에서 진흥왕眞興王을 사지절使持節 동이교위東夷校尉 낙랑군공樂浪郡公에 책봉 - 진흥왕眞興王 26年)

8

566

장안성長安城의 내성內城을 축조함.(평양성석각平壤城石刻 ④)

10

568

(진흥왕眞興王이 북쪽 국경을 순수함 - 마운령비磨雲嶺碑․황초령비黃草嶺碑)

19

577

북주北周에서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대장군大將軍 요동군개국공遼東郡開國公 고구려왕高句麗王에 책봉함.

23

581

수隋에서 대장군大將軍 요동군공遼東郡公으로 책봉함.

28

586

장안성長安城으로 천도함.

31

589

장안성長安城의 외성外城을 축조함(평양성석각平壤城 石刻 ①②③)

32

590

수隋가 진陳을 멸하였다는 소식에 조련과 군량비축 등 전쟁에 대비. 왕이 죽고 태자 元이 즉위함. 수隋에서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책봉하고 요동군공遼東郡公을 잇게 함.

嬰陽王

9

598

친히 말갈병靺鞨兵을 이끌고 요서遼西를 쳤으나 영주총관營州總管 위충韋沖이 격퇴함. 수隋는 한왕漢王 량諒, 왕세적王世積을 원수元帥로 하여 30만으로 공격하였으나 풍랑, 홍수로 실패함. 백제가 수隋와 협공을 모의하므로 백제를 침.

14

603

장군將軍 고승高勝을 보내 신라의 북한산성北漢山城을 쳤으나 진평왕眞平王이 반격하여 퇴군.

 

먼저 복잡한 연표를 제시하겠습니다.
삼국사기를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기록,
그리고 금석문 중에서 고구려의 6세기에 대한 중요한 기사만을 정리하였습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저게 답니다. 특히 6세기는 자료가 매우 희소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아~, 정말 갑갑하죠?
이걸 블로그 글이라고 올려놨나.. 12시에 모 사이트에 접속해 이름 적고 싶으시죠?
이게 무슨 수업이라고 달랑 저 표로 여러분을 괴롭히려 하겠습니까.
뭐 대단한 원한이라도 있는 것도 아닌데요.

그래서 어디에선가 쓴 6세기 고구려에 대해 쓴 문장을 감히 재탕해먹으려고 합니다.
중원지역의 고구려 유적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쓰기 위해 작성했던 자료이고
더 멀리 올라가자면 저 위의 뭔가 만들던 자료에서 파생된 겁니다.
다시 머리 아프게 적는 것보다 이 글이 더 효과적으로 먹힐 것 같군요.
(결국 네 귀차니즘 문제잖아!!!!!!!!!!!!!!!!)

고구려는 광개토왕과 장수왕대에 활발히 영역을 확장하고 국제관계에서도 동북아의 강국으로서 영향력을 증대시켜왔으나 6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소 침체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기록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한반도에서 나제동맹에 의해 주도권을 상실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430년대 백제와 신라가 동맹을 맺은 이래 고구려의 남진은 갈수록 강한 저항을 받게 되었다. "삼국사기"에 의거해 문자명왕 원년(492)부터 영양왕 13년(603)까지 고구려가 백제ㆍ신라와 충돌한 것을 살펴보면 점점 공세보다는 방어전의 성격이 강했다. 장수왕대까지 고구려가 공격을 많이 했다면, 이제는 반격을 당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또 551년에 한수유역을 상실한 이후 603년까지 신라에 대한 공격이 없었고, 568년 국내성의 배후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옛 옥저지역(지금의 함경남도)에 신라의 마운령비와 황초령비가 세워질 정도로 남쪽의 영역상실에 대한 대응조차 미진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동방세계에서의 패권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북제의 문선제는 무력시위를 감행하여 북위말에 건너온 유망민 5천호를 송환시켰다, 560년 북제는 고구려의 패권을 상징하던 ‘동이교위’라는 관작을 565년 신라 진흥왕에게 수여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앞선 북위왕조 때에 남중국의 남제의 사신과 고구려의 사신을 동등하게 대우한 것을 생각하면, 고구려의 국제적인 지위가 많이 위축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부적인 정치적 진통을 들 수 있다. 일본기록에 따르면 안장왕ㆍ안원왕 사후에 두차례의 왕위계승을 둘러싼 정쟁이 있었다. 특히 안원왕 사후에 벌어진 치열한 정쟁에서 패배한 세력의 사상자가 2천명이었다는 사실은 당시의 상황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왕은 국무총리격인 대대로를 뽑는데 있어서도 본인이 임명하지도 못했다. 왕위계승전이 치열하고, 귀족들이 대대로에 취임하기 위해 무력으로 승부하는 상황은 심각하여 일부의 사람들이 외국으로 이탈하는 일도 생겨났다.

위에서 든 세가지 현상만을 놓고 본다면 당시의 고구려는 쇠퇴 내지는 약화의 길을 걷고있었던 것으로 단정지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본다면 이 시대의 여러 현상은 갑자기 늘어난 영토와 자원을 재편하고 자기의 것으로 내실화하는 데에 따른 진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고구려는 이런 변화 속의 진통을 그대로 방치하지 않았다. 먼저 북위와의 평화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대내외적으로 안정을 찾아 체제정비에 힘을 쏟았던 시대이기도 하다. 세금을 걷어도 사람의 머리수만큼 일괄적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재산의 정도에 따라 차등징수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영토 내의 다양한 민족들을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으며 지방제도와 군사제도를 효율적으로 구축하였다. 이는 고구려가 활발한 정복으로 인한 다양한 주민구성과 각기 상이한 경제적 환경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능력을 구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침체의 이면에서 이런 활발한 국가체제 내실화작업이 수행되고 있었다. 7세기에 수ㆍ당의 침략을 70여년 가까이 막아낼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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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2 03:37


자, 뭘 하겠다고 이런 그림을 걸어놓았을까요?

이제 삼국사기를 읽고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해 공부를 할
RGM-79 GM이라고 합니다.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자면
어디에선가 한국 고대사를 전공으로 하고 있는 초짜연구자라고 해두죠.
(신비주의 컨셉으로 나가면 뭔가 있어보인다 이거죠;;;;)

삼국사기를 갖고 뭘 어떻게 할꺼냐. 이게 문제죠.
먼저 하루에 한 줄, 혹은 한 문장 정도씩 읽어나가고요.
그 다음에 읽은 부분의 핵심인 인물과 사건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나갈까 합니다.
너무 팍팍 나가면 읽는 분들도 어려워할 뿐만 아니라
제가 매우 귀찮아 합니다.(문제의 핵심!)

맨 첫 발은 썰렁하게 나가지만
마지막 한 발은 천지를 울릴 것이다 생각하고 나가봅시다.
우선은 첫 시작은 삼국사기 권 45, 열전 5의 온달전으로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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