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양원왕 (2)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원문七年 … 秋九月 突厥來圍新城 不克 移攻白巖城 王遣將軍高紇 領兵一萬 拒克之 殺獲一千餘級 해석7년 가을 9월에 돌궐이 쳐들어와 신성을 포위했지만 이기지 못하였다. (군세를) 옮겨 백암성을 공격하니 왕은 장군 고흘을 보내어 1만 명을 이끌게 하였다. 막아 무찌르니 죽여 얻은 적의 수급이 1천여 개였다. 547년에 신성과 백암성의 방어시설을 재정비한 이야기는 한참 전에 했습니다. 과연 그로부터 4년 후인 551년에 북방의 돌궐이 쳐들어와 신성과 백암성을 각각 공격하고 있었지요. 짐순이는 고구려의 6세기를 매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전반기의 치열한 정치적 혼란, 그리고 후반기의 급변하는 국제정세, 그리고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할 온달까지.. 앞시대와 뒷 시대만큼은 아니어도 주목할만한 가치가 ..
원문 三年秋七月 攺築白巖城 葺新城 해석 3년(547) 가을 7월, 백암성을 개축하고 신성을 수리하였다. 양원왕은 고구려사에서 그렇게 많이 불려지는 이름은 아닙니다. 앞 시대는 광개토, 장수왕(덩달아 그의 손자 문자명왕)이 있고, 그의 다음대에는 온달과 평강공주로 알려진 평원왕, 그리고 국제전과 멸망기의 3왕, 영양왕, 영류왕, 보장왕이 한국사 능력시험을 보는 이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지요. 6세기 전반부의 왕들은 그야말로 공기 정도의 존재감을 자랑합니다. 더욱이 고구려사의 연구논문도 이 시대를 다루는 것은 매우 적습니다. 이 시대를 다루는 논문을 쓰려던 사람이 매우 중요한 논문을 쓰신 다른 선생님에게 '그 시대를 전공하려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뭐, 그런 대접을 받는 시대의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