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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475년의 파국에 대해서 대개는 한성이 함락되고 웅진으로 천도하였다는, 매우 건조한 문장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수도를 잃었다, 왕이 죽임을 당했다, 그 정도면 꽤 아팠겠다 싶은 인상을 받을 겁니다. 하지만 475년 한성 함락은 백제인들에게는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받은 사건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한성에서 웅진으로 이어지는 연속성에 대해서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하는데, 사실 실상을 알고나면 어느 정도는 공감가는 일입니다. 현재 한국 사회의 고민 거리 중 하나가 지방소멸, 수도권의 비대화입니다. 그런데 고대에는 아예 머리가 8, 몸이 2인 상황입니다. 수도에 모든 것이 몰려 있는 정도가 극단적으로 심합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을 보여주면 서울은 아예 식물인간 수준이 아니냐고 할껍..
어제 거의 좀비가 된 상태에서(뭐긴 뭐겠어요. 잠을 안잤으니..) 지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백제 동성왕 때 백제가 한강유역에 다시 들어갔느냐 아니냐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뭐, 그 것에 대한 논문을 보고 의문이 들었답니다. 이래저래 한 40분 가량을 그 문제에 대해 통화를 했지요. 이란 그 논문에서 나왔다는 영유와 점령의 기본 개념, 그리고 한성 함락 후 백제의 상황에 대한 기본적 개괄.. 고고학이야 담을 쌓고 사는지라.. (생각해보니 짐순이 주변엔 고고학자들이 고대사 하는 사람들보다 몇 배 많습니다.. -_-;;)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분명 한강 이남에 고구려 유적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또 백제의 흔적이 아주 사라진 것도 아니고 (물론 기록만 놓고 보면 500년이니 아예 안보인다는 것이 더 이상합..
문제의 사리봉안기, 하얀 밑줄이 문제의 대목, 百濟王后佐平沙宅積德女, 백제 왕후는 좌평인 사택적덕의 딸이다. 출처 : 09년 1월 19일자 문화재청 보도자료 미륵사지 서탑에서 나온 사리기의 발견으로 좀 뒤숭숭하더니 급기야 이런 신문기사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90121162214723 http://media.daum.net/society/nation/jeolla/view.html?cateid=100009&newsid=20090121162214723&p=yonhap 사리기의 출토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나니 당황스럽기보다는 통설과 다른 논지들이 떠오르더군요. 많은 학자들이 무왕설에 지지를 보냈지만 뭔가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