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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340년대, 고국원왕은 선대부터 야심차게 추진해온 대외확장정책에서 실패를 맛보고 있었습니다. 5호16국시대라는 중국의 대혼란을 틈타서 낙랑・대방군을 몰아내고 요동군과도 치열하게 싸우고 성공을 거둔 아버지 미천왕과 달리 고국천왕은 강한 저항에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342년에는 선비족 모용부의 전연이 환도성을 점령하고, 미천왕의 시신과 태후(그러니까 미천왕의 왕비), 그리고 5만여 명의 사람들이 끌고 갔습니다. 이것 때문에 고구려는 요동을 둘러싼 전연과의 다툼에서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없었지요. 그렇다면 남으로 창끝을 돌리면 어떨까? 낙랑과 대방군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한 고구려는 남쪽의 백제와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고구려가 있었던 곳에 비해 남쪽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습니다. 만약 그곳에 ..
원문 五年 春二月 始創肖門寺 以置順道 又創伊弗蘭寺 以置阿道 此海東佛法之始 해석 5년(375) 봄 2월에 처음으로 초문사를 세워 순도를 머물게 하였다. 또 이불란사를 지어 아도를 머물게 하였다. 이것이 해동 불법의 시초이다. 한국고대사에서 불교의 위치는 매우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태학설립과 율령의 반포/관제정비와 동급의, 어쩌면 그 이상가는 무게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불교이전의 일반적인 사상적 흐름은 그야말로 범신론이었죠.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 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전부 신비로운 존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었습니다. 산에는 산신이 있고, 강에는 강의 신, 동물과 초목, 바위, 당시로서는 규명되지 않은 모든 자연현상이 다 초월적인 존재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 겨울이 ..
어제 아는 분의 부친상이 있어 강릉에 다녀왔습니다.결혼식은 못가도 상가에는 간다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는데다(물론 그것도 중요한 일정과 겹치면 못가지만요..)오랜 시간동안 알고지낸 분이어서 안갈 수는 없더군요.자정께 돌아와 기진맥진했다가 일어나칠지도 얘기나 해볼까 금석문책을 펴보다 생각이 나서 이걸로 갑니다.(그렇다! 짐순이는 지조때로 살아가는 19세 청순가련 병약미소녀였던 것이다!!) 1919년 부여의 부소산성 안의 사비루 근처에서 불상이 하나 발견됩니다.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부처를 보살 둘이 보좌하는 삼존불의 형태이지요.가운데 부처를 본존불, 양 옆의 보살들을 협시보살이라고 부르죠.(이른바 업계용어. 알아두시면 박물관에서 편합니다..)불상이야 전형적인 삼국시대 불상입니다.대개는 불상하면 대웅전이나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