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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전장의 병사들은 픽셀이 아니다..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전장의 병사들은 픽셀이 아니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6. 23. 22:47

농서의 노래 - 진도


흉노를 소탕하겠노라 자신을 돌보지 않더니,

무장한 오천 군대가 오랑캐 땅에서 죽어갔다.

가엾다. 무정하 강변에 널린 백골들은

몸철 안방에서 꿈에 그리던 사람이었다.


요즘에야 전쟁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있지만 간만에 한 번 생각이 나서 써봅니다.

어찌보면 오래전에 쓴 글 두려움을 잊는 법, 양주의 노래의 속편이기도 합니다.

위의 시는 당나라 시인 진도의 농서행입니다. 


흉노가 나오는 것을 보면 한나라를 무대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고전의 시대에는 흉노는 오랑캐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무정하, 황하의 한 지류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오르도스 지역을 두고 다투던 한대를 다루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무장한 오천 명의 병사들이 목숨을 잃는데 한이 흉노와 싸울 때, 이런 일은 비일비재 합니다.

이런 일을 잘 안겪은 왕조는 당과 청뿐입니다.

 둘 다 유목민족에 기원을 두고 있고

그들과 같은 기동전을 구사한 왕조만이 그들을 장기적으로 복속시킬 수 있었습니다.

더 넣자면 북위도 해당되겠지요.


진도라는 시인은 전쟁의 찬란함을 말하는 대신 병사들의 가정에 깃들은 비극을 조명합니다.

지금 이 강가에 백골이 된 사내들이 원래 어디 있어야 하는지

이들의 부재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지에 대해 

그렇다면 이 전쟁이 남은 사람들에게는 어떤 아픔을 주는지에 대한 노래도 있습니다.


규방의 설움 - 왕창령


안방의 새악시 근심이라는 것을 몰랐다.

봄 날에 화창한 차림으로 단정한 이층 누각에 올랐다.

무심코 거리의 버들빛을 보고는

남편에게 출세하라고 권했던 것을 후회한다.


이 시를 읽는 느낌은 흑백톤으로 노동하는 분들 찍어놓고

삶의 무게 어저구 허세떠는 사진사를 보는 느낌입니다만 

(예전엔 문예부원들이 이런 시를 쓰곤 했죠. -_-;;;;;;)

왕창령의 다른 전쟁시들에 비하면 나름 심각한 겁니다.

(요즘 태어났으면 재상은 커녕 양판소작가였을지도요. 요건 농담.)


당대야 신분제가 굳어지다 다시 무너지는 시대라 해당이 안되고

이 시가 다루는 무대는 진한대입니다.

전국시대부터 총력전이 되면서 국가가 전 국민의 계급을 20개 가량 만들죠.

가장 낮은 국민이 1급, 재상이 20급.

특히 전장에서 어떤 공을 세웠냐에 따라, 얼마나 비겁한 행동을 했냐에 따라

(요즘으로 따지면 계급인)'작'이 오르락내리락하지요. 

법가통치를 시행하는 나라들에서는 관리가 될 수도 있고 죽고 가족이 연좌되는 일도 일어납니다.

특히나 속옷만 입고 칼 한자루만 들어도 적진에 들어갔다는 

진秦나라 병사의 용맹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이 철부지 아낙의 슬픔은 남편보고 군공을 세워 출세하라고 재촉한 대가이기도 합니다.

군공을 세우고 돌아왔다면 이 후회는 없었겠지요.


당나라 때야 그런 제도는 사라졌는데도 왜 한나라의 이야기를 다룰까요?

우선은 과거의 일을 들어 현재를 이야기하는 시풍을 들 것이고(문제 발생시 빠져나갈 수도 있죠)

또 하나는 대외적으로 치열하게 팽창과 수축을 거듭하는 당나라의 현실이

한대와 비슷하기에 그 때의 이야기들이 공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은 그런 당나라 시인들의 넋두리나 들어주자는 생각으로 쓰는 글은 아닙니다.

바로 전쟁사책에 실리지 않는 병사들의, 그 가족들의 무게에 대한 것이지요.

적어도 한국에서 전쟁사를 좋아해요..라는 말은

전쟁의 경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마스터한다는 것과

아니면 이 전차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느 공장에서 생산되었고, 

어떤 특징을 가졌다고 마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쉽게 말하면 무기의 고증학이지요)

전장에서 그들은 어떤 보급을 받으며 어떤 심정으로 전투에 임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적습니다.


그렇다보니 때때로 전쟁은 스타크래프트 경기 중계처럼 보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슈팅게임 리뷰보는 기분이랄까요.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이, 적의와 증오가 강력한 에너지로 발화하는 장면은 

멀리서 관망하기엔 멋있게 보일런지 몰라도 

실제 거기에 삶을 빼앗기는 사람들의 눈에는 암흑 그 자체입니다.

우리에게도 내일 당장 전쟁이 재개되면 바로 현실이 될 일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역사스페셜을 보다가 화가 나서 술집에 가서 진탕 마신 적이 있습니다.

광개토왕의 정복활동을 다룬 내용이었는데

그 분은 마치 백제는 박멸되어야할 존재고

고구려의 군사행동을 스포츠중계에서 우리편이 이기듯 설명하더군요.

(재미난 건 그 분 박사논문은 백제사라는 겁니다.

물론 고구려사도 겸업하시는 분입니다만 ;;;;;;;;;;;;;;;;;;;;;;;;)

나름 고구려사 전공인데도 백제병사들의 죽음에 무심하다 못해 악의 퇴치로 봤달까.

그런 무심함에 화가 났습니다.


전쟁을 공부하다보면 스포츠 중계를 본달까 무덤덤한 것은 어쩔 수 없긴 한데

거기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와 같이 피가 통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전쟁은 오락이 아닙니다.


※ 이 시들의 번역은 임창순선생의 『당시정해』(소나무, 1999) 192, 128쪽에서 따왔습니다.

※ 전쟁을 공부한다는 친구들한테 항상 존 키건의 『전쟁의 얼굴』(지호, 2005)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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