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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살수대첩에서 수공하지 않은 것은 알기 싫냐?(번외 - 01)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한국고대사강좌

살수대첩에서 수공하지 않은 것은 알기 싫냐?(번외 - 01)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12. 6. 00:30
사진은 누르면 커져요.. 출처는 이불 속이라 책장에 있는 거 꺼내기 귀찮아..  

오늘 올라온 그것은 알기 싫다 7회를 듣다보니 또 직업병이 도졌는데 
금강산댐(북한식 명칭 : 임남댐)을 다루는 부분에서 살수대첩 수공 얘기가 나왔다. 
결론만 먼저 이야기하자면 살수대첩 수공 그딴 거 없었다. 
趙家之馬笑.. 
아직도 한국고대사를 다룬 책에서 가끔 이 이야기를 발굴해내면 기운이 빠져버리는데 
솔직히 매년 이 부분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반복되는 얘기를 하는 것도 지친다. 
누가 처음 이야기한 것인지 약간 용의자들이 좁혀지지만 
삼국사기나 중국정사에도 실려있지 않은 이야기들이 재생산되는 것을 볼 때마다 맘이 아프다. 
이건 진행자들의 교양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국난극복사 교육이 근본적인 문제다. 
(니가 유형 팬이라서 실드치는 거 아니냐고 태클을 건다면 
그날 꿈에 머리에 트윈테일이 달린 18미터 짜리 모빌슈츠가 
오른 손으로 法規를 날리는 꿈을 꿀꺼다. - 율령제 공부하느라 법의 중요함을 배웠지;;)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다루어야할 생각은 있었는데 
오늘 방송분을 듣고 또 그런갑다 할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적어본다. 
물론 그 방송의 중심은 평화의 댐 GRYB이었고 
거기의 내용 전반에 대해선 별로 토를 달 것도 없다. 
그저 잠깐 지나간 얘기지만 한국고대사의 살수대첩 그게 내 주제기도 하고.. 
또 지금 넥7으로 스트라이크 위치스 틀어놓고 있는데 
후쿠엔 미사토 목소리를 들으며 이런 머리 아픈 글 쓰기 싫고 
(끄고 하면 되잖아! 이 쟈브로와 솔로몬이랑 아 바오아 쿠의 밥순아!) 
또, 고구려 전쟁사는 별도로 다뤄야 할 글이다. 
생각같아선 수서, 북사, 자치통감 기록 다 끄집어 내야하지만 
스트라이크 판치스 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유로 짧게 언급하자. 

평양성이 험하고 튼튼하여서 갑자기 함락시키기 어려운 것을 헤아리고,
 마침내 그 속임수에 따라 되돌아갔다. [우문]술 등이 방형의 진을 이루고 행군하였는데, 우리 군대가 사방에서 습격하니 [우문]술 등이 한편 싸우며 한편 행군하였다. 가을 7월에 [수나라 군대가] 살수에 이르러 군대의 반이 건넜을 때 우리 군사가 뒤에서 후군을 쳤으므로, 우둔위장군 신세웅(辛世雄)이 전사하였다. 이리하여 여러 군대가 모두 무너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되어 장수와 사졸들이 달아나 돌아가는데, 하루낮 하룻밤 사이에 압록수에 이르러 450리를 행군하였다. 
- 삼국사기 권 20, 고구려본기 8, 영양왕 23년 
- 출처는 네이트 한국학의 한국학중앙연구원 본 삼국사기 페이지

지금은 "삼국사기를 읽어보자"도 아니니 해석은 긁었다. 
(평소엔 원문만 긁어오지만. 오늘 바쁘단 말이지..) 
기록은 간단하다. 
요동지역의 핵심인 요동성을 먹지 못한 상태로 시간을 허비한 
(수 양제만 안왔어도 요동성은 함락되었다. 황제 본인이 고구려편.. 쩝..) 
수나라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 지역의 겨울은 훨씬 더 빨리 다가온다. 
10월이면 폭설이 내리는 것이라 가뜩이나 좋지 않은 보급로를 유지할 수도 없다. 
특히 겨울이 오면 요택이라는 거대 늪지는 얼어붙지만 
수나라에 반항적인 유목민족들이 군사활동을 벌이는 시기다. 
(실제 645년 안시성 공방전 당시 설연타가 연개소문의 뇌물을 먹고 당군의 퇴로를 압박했다) 
돌아가는 길도 만만치 않아서 무너가 성과를 거두어야 하는데 
요동성은 수 양제 자뻑질로 함락을 못하고 
결국 30만의 별동대를 평양성으로 파고들게 해서 
결정적으로 승기를 잡으려는 발상인데 뭐 발상은 나쁘지 않았지만 
문제는 적의 종심 깊숙히 군을 쑤셔 박아야 한다는 것,
고구려 '하이웨이'에 휴게소가 있을리 만무하고 
가뜩이나 생산력 딸리는 관북지방 북부에서 식량 확보하기도 어렵고 
결국 평양성 코 앞까지 온 순간 쌀통은 바닥을 보이고
(가둬버릴 왕자라도 있었다면 그리 했겠지) 
돌아가는 길에 살수에서 궤멸에 이르는 타격을 받는다. 

이러한 배경지식을 깔고 읽어야 하는 것이 위의 기사다. 
우선 물 얘기는 없다. 
물론 강을 건너다 공격 받은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물을 가뒀다가 공격하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혹시라도 기록이 누락될 수 있자나여라며 
반론을 취할 사람을 위해 기술적인 이야기로 언급해보자. 

현대의 댐을 쌓을 때도 강물이 흐르면 콘크리트 구조물을 쌓을 수가 없다. 
고대 로마의 시멘트는 물에서도 굳었다지만 현대의 건축에서 그것은 힘든 일이다. 
춘천시민들의 머리맡을 두렵게 하는(물론 춘천시민인 19세도 겁난다)
소양강 다목적 댐같은 사력댐도 흐르는 물에서는 구축될 수 없다. 
보통은 댐 건설지 앞에 서 물길을 돌려 여수로를 만든 후 구축을 한다. 

북한의 임남댐이 문제였던 또 하나의 이유는 
이것들이 돈도 없고 시간도 어느 '뚱땡이'가 규정지으니 공기 맞추느라 
시멘트 구조물이 마르기 전에 물을 받으려고 했다는 거고. 
1980년대 서해안에 여러 곳에 방조제를 만들 때는 바닷물이라 물을 피할 수 없어 
가장 무식한 방법으로 둑을 쌓았다. 
바닷물이 들락날락해서 뭉개버리는 속도와 양보다 더 빠르게 더 많은 흙을 들이 붓는 것. 
마지막 트럭이 양쪽에서 흙을 붓는 장면은 생중계로 보여줬던가... 
(그걸 밥먹으며 조국의 위대함을 깨달으라는 거냐.. 이거 공산국가도 아니고) 
그나마 토목기술이 나아졌다는 요즘도 흐르는 물의 힘은 신의 분노보다 더 무서운 것인데 
과연 그 시절에 수공이 가능한 양의 물을 단기간 안에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수나라 군대의 통과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을까?
  누르면 커지는 파노라마사진. 그리고 빠지지 않는 모자이크;;;  

중부지역에서 경주를 가는데 일부 역사학 전공자들만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경북 영천의 청제인데 신라 왕실 직할 농경지에 물을 대던 저수지다. 
그거 하나 쌓는데도 국가의 일급 기술자들이 상당수의 인력 동원해서 겨우 쌓은 건데 
일본의 헤이안 시대 만들어진 저수지 둑 쌓는 거 봐도 이건 보통 노력이 아니다. 
그야말로 사단장님이 보고계셔가 아니라면 하기 싫은 것이다.
  배수구의 일부 여기가 물을 풀어 아래쪽 농경지에 물을 보내죠..  

이런 식의 둑을 쌓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또 누군가는 소나무 가죽을 서로 이여붙여서 물을 막았다고 하는데 
청천강이라는 강이 소나무 가죽으로 어찌해볼 강이 아니며 
(나름 북한의 4대강은 될꺼다. 아니면 5대강인가?) 
그리고 그렇게 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소재로 물을 막아본들 
수나라 30만을 쓸어버릴 물은 나오지 않는다. 
발목 정도, 그래 인심쓴다 무릎이라고 치자
아무리 배곯고 사기 떨어져도 그 물에 쓸려갈 정도면 훈련소장 멸족당할 얘기지.
그 방송에서 임남댐 수공얘기할 때 나왔듯이 
막았던 물이 다 그 곳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다. 
물은 중간에 넓게 퍼지는 습성이 있어 옆으로 새고 
장마철이라 하도 먹어 포화상태가 아닌한 땅은 물을 어느 정도 흡수한다. 
소가죽으로 막으려 하느니 
땅 속에 대가리를 박고 수나라군은 없쪙..하고 귀염떠는 게 더 현실적인 방안인 것이다. 

어디에도 수공 이야기는 없다. 
그렇다면 살수대첩은 뭐냐한다면 식량은 바닥나고 
너무 깊이 들어온 탓에 어지간히 긴장도가 높아진 상태에 친거다. 
종심 깊숙히 들어올 때야 
고구려군이 거짓으로 져준 것에 힘입어 아픈 줄도 모르고 신나게 왔는데 
평양성 앞두고 을지문덕의 그 싯구를 받았을 때야 
'그거슨 페이크'였다는 것을 깨달은 상태. 
돌아가는 길에 방진을 짰다는 것은 극단적인 방어로 전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천강을 건너는데 반쯤 강을 건너는 사이에 공격한다는 말만 나온다. 
실은 도하중의 적을 공격하는 것은 하나의 공식이기도 하고. 
긴장이 극단적으로 높아진 가운데 물을 건너느라 틈이 보일 때 공격한다는 것. 
당하는 입장에선 도저히 빼도 박도 못하는 상태. 
고구려군이 얼마나 동원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적어도 수나라 별동대만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형의 익숙함과 수나라 군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소수의 포위전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평야에서의 대회전이 아닌만큼 
여기저기 잘 박아 넣으면 퇴로가 막힌데다 도하중 공격을 받아 
패닉에 빠진 군대를 요리할 수 있다고 본다. 


말꼬리 ------------------ 
1. 트위터를 하지 않으니 대신 유형과 그것은 알기싫다 진행팀에게 전해주길 바래. 
    살수대첩에서 수공따윈 없었다고
2. 저 위의 사진은 우리나라 전쟁사책 중 최고로 치는 책의 한장면인데
    이#일이 감수했다는 것과 함께 유삼하게 맘에 안드는 장면. 
    자세한 얘기는 곧 전쟁사책 소개글 올릴 때 덩달아.. 할 거 또 밀리네. 쩝.. 
3. 스트라이크 판치스를 넥7의 동영상 구동테스트하느라 봐야하느라 짧게 쓴다해놓고 또 길어졌당. 
    ㅎㅇㅎㅇ하는 장면을 많이 놓쳤다구!!! 
4. 샤나랑 리네는 모에해!!!!!!!!!!!!!!
5. 요 글 써놓고 넥7에서 수정하다 문단 배열 다 날라가 다시 노트북 켜고 수정했다.
    어느 개객기가 태블릿 디바이스가 PC라고 주장하는 거야?
6. 방금도 살수대첩 수공이라는 포스팅을 봤다. 아놔 돌겠네..
    제발 어린 것이 맘놓고 스토판 볼 수 있게 해달란 말야.
    자꾸 그딴 소리들 쳐하니까 이런 포스팅 쓰다가 늙게 생겼잖어!!(어린 것이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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