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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인간의 기억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고대사 잡설

인간의 기억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3. 11. 14:01

요즘은 만나지 못하지만 여태까지 알고 지낸 사람들 중에
가장 특이한 인간을 꼽으라면 당연히 T도 들어가야할껍니다.
(19살 인생이 얼마나 대단하겠냐만 그래도 19살에게 그 시간은 전붑니다)
뭐 간단히 개인정보 유출을 피하는 사항에서 언급하자면
세상에 태어나서 이리저리 주제를 바꿔 던져 봐도 이야기가 끊기지 않은
단 두 명 중에 하나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책만 판 nerd가 아니라 산전수전 다 겪은...
하여튼 그는(그라고 합시다. 귀찮으니) 좀 특이한 성격이라 약간의 기행도 벌였는데
오늘 하려는 일화는 역사학개론 시간에 다뤄도 될 이야깁니다.

한참 합기도였던가 뭔가를 배우던 어느날엔가
시멘트바닥에 자기 몸을 메다 꽃았습니다.
주위의 동행인들에게 낙법이란 이런 것이라면서,
그러고 멀쩡하게 일어나 몸을 툭툭 털었답니다.
목격했던 사람 말로는 정말 쿵하는 소리가 났다나요.
이 이야기가 한 몇 년이 지나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각색됩니다.
그는 달리는 차의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거나
아니면 2층에서 창문으로 뛰어내리며 낙법을 구사했다던가.. .
이는 사람들의 기억이 점점 흐려가기도 하고
또 재담꾼들이 술자리서 전승에 전승을 거듭하다가 살이 붙은 결과고요.
이미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라 구비문학에서 다뤄야할 이야기가 되어갑니다.

언젠가 정선의 산골에서 옛날 이야기를 수집하다 들은 이야기인데
일제 강점기 눈밭에서 귀신을 본 이야기도 나오고요.
해방공간에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만주로 떠난 아기장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이게 좀 더 현대적인 문명의 탈을 쓰면서

사회학자들이 좋아할만한 도시전설로 탈바꿈하죠.
또, 독립운동사 조사를 하다 보니 불과 5,60년전의 사람 기억이
수천년 전을 다룬 문자기록보다 더 신뢰하기 어려운 것도 봤어요.
(결론은 사마천은 굇수다 안문호급의 우주굇수)

역사학에서는 이런 인간 기억의 변화를
무드셀라 증후군이라고 해서 사람이 점차 기억을 편집하는 것을 설명하지요,
시간이 차츰 좋은 것만 기억에서 살아남는다는 겁니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구비문학에서는 시간과 사람에 따라, 장소나 당시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를 각편version이라 부르지요.
문자를 창조하기 전이나, 그럴 정도로 발달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죄다 전승의 힘으로 전달할 수 밖에 없어요.
지지난 세기부터 그런 사회를, 역사를 연구한 학자들은
문자를 가진 사회의 인간기록은 우월하고
그렇지 못한 사회의 인간의 기억은 부정확하단 입장을 견지했으나
의외로 그들의 전승은 정확했어요..
뭐, 사마천은 자신의 전승으로부터 수천년된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정리해서
사기를 썼는데 20세기 후반부터 치열한 검증을 거쳤는데
오히려 20세기 초반 가열차게 검증을 요구한

의고파가 저승에서 당혹해할 정도로 정확성을 인정받지요.

이렇게 끝내버리면 인간의 기억에 단점이 많다고 해놓고
또 이제와서 뭔 소리냐, 치매냐, 19살이 아니라 119세냐는 태클도 들어오겠죠.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이런 듣보잡 블로그는 암만 떠들어도 조용합니다. -_-;;)
문자기록이 활성화된 사회와 비문자사회의 기억에 대한 입장은 좀 다릅니다.
문자사회는 대체재가 있어요.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어딘가에 적어두면 되지요.
문자사회일 경우 사회구성 개체수가 상대적으로 많으니
그 어떠한 기억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요. 즉 백업서버가 충분하죠.
다만 워낙 방대해진 조직에 따른 자료의 양이라거나
알아두어야 할 지식의 양이 워낙 많다보니 어차피 기억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비문자사회는 기억보관의 대체재가 없어요.
오로지 인간의 뇌가 유일한 서버지요.
그 사회가 상대적으로 환경적 요인에도 취약하고
구성개체수도 적다보니 백업서버도 그만큼 적죠.
그래서 인간이 그걸 기억하는 것이 절박함을 가지게 되죠.
사회의 규모만큼이나 기억의 양이 적습니다.
식량수급이나 적대요소와 같은 삶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조상들의 전승
그래서 그런지 앞서 말한 문자사회의 인간기억보단 더 정확합니다.
사이버공간의 여러 게시판에서 놀다보면 불과 3년전 벌어진 일로
그 사건에 대한 입장차이가 아니라 실증주의문제로 싸워요.

그냥 문자기록이라고 해서 다 정확한 것도 아니고
인간의 기억이라고 다 부정확한 것은 아니죠.
또는 그 반대의 일도 역사에서는 종종 일어나지요.
그런 현상을 보는 짐순이, 네 뇬의 생각은 뭐냐고요?
그.때.그.때.달.라.요~(feat. 미친소선생)
(자매품으로 야구해설가 하일성의 ‘야구, 몰라요’가 있지요)
역사가는 그저 사료나 읽고 남의 논문이나 책을 읽는 게 일이 아니라
뭐가 맞는 건지, 과연 이게 맞는 건지를 고민하고 추적하는 일을 합니다.

위키백과/엔하위키/네이뇬만 쳐보고, 사료 몇 개나 외우고
다 아는 척하는 키워들에게 가볍게 법규를 날리며,
조낸 지루한 글을 마치고
발로 뛰는(?) 삼국사기 해석질 준비를 해야겠어요.
상봉역에서 키보드 꺼내 쓰다보니 어느새 춘천역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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