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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근초고왕 28년 - 사료 한 줄도 소설이 된다..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백제이야기

근초고왕 28년 - 사료 한 줄도 소설이 된다..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3. 12. 21:31

원문

二十八年 春二月 遣使入晉朝貢 秋七月 築城於靑木嶺 禿山城主率三百人奔新羅


해석

28년(373) 봄 2월 사신을 보내어 진에 조공케 하였다. 가을 7월 청목령에 성을 쌓았다. 독산성주가 300명을 이끌고 신라로 도주하였다. 


출처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삼국사기(http://db.history.go.kr/url.jsp?ID=sg)에서 제공하는 옥산서원 소장본. 노트북 포맷한지 한달이 다되어가는데 아크로뱃도 안깔아서 걍 긁었습니다.

사실, 오늘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지난 주에는 쉬었고, 동천왕시리즈도 잠시 숨을 돌릴까, 그리고 너무 백제를 방치플레이했구나란 생각이 겹쳐 성왕이야기를 하렸더니 이것도 2부작 분량이라 현재 진행중인 흐름을 끊을 수도 없어.. 이래저래 짱구를 굴리다..(원래 속도라면 점심시간에 올라갔어야죠) 그냥 타협한 것이 이 이야깁니다. 아무래도 현직으로도 역사소설가이신 니자드님 소환의식이 되어버릴 거 같아요오~~.


이걸 할까 저거 할까 생각해보다 이 부분에 이르니 떠오르는 소설이 있었습니다. 아마 원래 제목으로 말하면 잘 모르실 거고 다시 고쳐써서 내놓은 제목으로 이야기하면 아실 분도 계실 겁니다. 이문열의 "대륙의 한"(1995~ 둥지에서 7권으로 출간, 2003년 아침나라에서 재출판, 2010년 개정판 출판)입니다. 이 7권짜리의 역사소설은 원래 1986년에 성정출판사에서 요서지라는 이름으로 3권으로 나왔었지요. 짐순이는 대륙의 한이라는 책은 보지도 않았고, 어찌어찌하다보니 요서지 초판본만 구비하고 있습니다.(이것도 나름 개인적으로는 골동품입니다. 지금 사는 집도 짐순이 나이의 두배 이상.. 참 옛날 거 무지 좋아해요.. 이노무 가시나)  


문학사에서는 이문열이 삼국지로 돈을 긁어모으기 전에 뭘 했었나를 알려주는 자료가 되겠지만(김성한의 역사소설이 극단적으로 리얼리즘을 추구한다면 이시절부터 이문열은 삼국지의 연장선상이었지요. 오히려 칼레파타칼라가 특이한 결과물... 컷!) 여기는 역사블로급니다.


하여간 소설은 백제 정치사에서 나오는 진씨와 해씨의 대결이란 구도, 그리고 1980년대 일세를 풍미한(?) 백제왕계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가상의 역사극을 만듭니다. 고이왕-책계왕-분서왕-계왕, 구수왕-비류왕-근초고왕, 두 왕계의 대결과 그를 둘러싼 진씨와 해씨의 권력다툼이라는 스토리를 만듭니다. 계왕의 왕자인 여광(가상인물입니다)과 해씨들의 왕위 복위 운동이 요서기의 큰 줄거리입니다. 해씨들의 근거지 대두성에서 고이~계왕계의 잔존세력과 해씨가 반란을 일으키고, 그와중에 고구려의 고국원왕이 백제에게 싸움을 거는.. 소설로는 꽤 재미난 이야깁니다. 나중에 진실이 밝혀지며 여광과 근초고왕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결국 여광은 숙부뻘인 근초고왕에게 승복을 하고 대신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해 요서로 진출하고 그부분부터는 그야말로 삼국지 연습장+30% 무협물이 되어버리죠. 물론 스케일은 광개토대왕인가 뭔가하는 몇년전 사극보다 낫습니다. -_-;;; 무슨 어른들의 사정이 있는지, 이 요서의 백제 식민지는 수의 통일과 함께 붕괴되는 매우 짧은 후일담을 남기며 소설을 끝맺습니다.(요 부분은 나름 비장합니다. 요 부분은 손가락을 들어올립니다)


이 소설이 더 고쳐지며 어떻게 변했는지는 모릅니다만 더는 이문열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요.(시대순으로 그의 작품을 따라가다가 냉전이후 탈력한 운동권 학생 이야기가 나오는 소설 읽다가 끝났어요) 다만, 80년대 백제사연구의 한 축을 담당했던 왕계연구나 김상기-방선주 선생이 제기한 백제의 요서경략설, 근초고왕의 마한병합에 대한 고고학과 문헌사의 학술논쟁 등의 연구사를 이해하고 읽으면 매우 흥미진진합니다.(다만 지금 시대에 그걸 찾아보는 어린 얼간이가 있을리가. 연구사정리를 개똥으로 아는 마당에..)


다만 백제 왕계문제라거나 해씨들과 진씨들의 권력점유 선후,

(실제로는 진씨가 짱먹다가 나중에 해씨가 큽니다) 

이런 부분은 수정해야할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그런 내용으로 소설을 썼으면 이문열은 미래인)

그리고 전반부의 무대가 된 대두성은 웅진 천도 후 해씨의 근거지죠.

뭐 이런저런 문제는 있지만 이 건 소설이지 2000년대 연구서가 아니죠.


사실 이 소설에서 역사적인 사료는 매우 적게 들어갑니다.

일본서기나 중국사료까지 다 들춰내지만

삼국사기에서 그나마 겹치는 걸 찾자면  

고국원왕의 침입이나 근구수의 반격전, 그리고 오늘의 저 기사뿐입니다.

소설에서는 원래 해씨의 중심인물인 해다곤이 해씨 견제책으로

마침 공석이던 독산성의 성주에 임명됩니다.

이 반란이 실패로 끝나고 대두성에 농성중이던 해씨들이 자결한 사건 후에

신라에 투항을 합니다.

(주인공과 연결시켰던 자신의 딸도 이때 죽지요) 

그 부분은 저 사료를 재활용한 것이지요.


요즘의 이문열은 일부에서는 그야말로 큐베급의 욕을 먹고 있지만

기본적인 역량은 가지고 있는 작가입니다.

짐순이가 요즘 사극을 안보고 욕도 안하는 것에는

애시당초 작가들의 역량에도 한숨나오지만

적어도 고대를 다루는 경우 긴 호흡의 스토리를 짠다는 것 자체가

연금술의 경지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한때 유행하던 선덕여왕 사극도 말은 많았지만 

사실 선덕여왕 대본집필에 필요한 자료는 극히 적은데

한시간분량의 드라마를 몇십편 찍어야 하니까...

그래도 요서지는 고대사에서도 가장 많은 한숨이 나오는 백제를 가지고

꽤나 흥미진진한 역사물을 만들었죠.

욕은 먹지만 그래도 나름 역량은 인정해야죠.

(불멸의 이순신을 쓴 윤뭐시기같은 작가들은 말할 가치도....) 

다만 맛이 간 이후에 출간한 개정본은 어떻게 변했을지 몰라

권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김진명의 고구려라는 소설이 많이 팔립니다.

그에 대한 호불호는 차치하더라도

그런 문학작품의 역사적 문제를 지적하기에 앞서

그들이 이용할만한 소스를 제공하는 것과

이 바닥이 그렇게 재미난 소스를 제공하지 못함을 먼저 돌아봐야죠.

독자들은 제발 소설 읽고 그게 역사라고 착각하진 말고요.


말꼬리 -------------------

1. 

저기 언급된 방선주라는 이름이 나올 때, 현대사 전공자들이 갸우뚱한다면, 

바로 그 분 맞아요. 미쿡으로 가시기 전엔 동양사전공이었다능..


2. 

짐순이는 백제 요서경략설, 내지는 나중에 대두한 진출설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지만, 

저분들의 논문과 대륙삼국설을 동급으로 보는 이가 있다면 좀 분노할 겁니다.

개인적으로 틀렸다고 보지만 나름 학문적으로 인정할만한 연구입니다.


3.

불멸의 이순신이 나왔을 때 드라마는 안보고 

역사적 오류를 지적하는 (아는 사람은 알만한)사이트에서 논 기억이..


4.

갠적으로 전근대를 다룬 역사소설로는 고 김성한 선생의 소설들을 권합니다.

전장묘사는 최인호나 이문열도 그 앞에선 오징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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