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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진덕왕 4년 - 우리가 이해 못한 외교의 언어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진덕왕 4년 - 우리가 이해 못한 외교의 언어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7. 3. 00:00

원문

大唐開洪業 巍巍皇猷昌 

止戈戎衣定 修文繼百王 

統天崇雨施 理物體含章 

深仁諧日月 撫運邁時康

幡旗何赫赫 鉦鼓何鍠鍠 

外夷違命者 剪覆被天殃 

淳風凝顯 遐邇競呈祥 

四時和玉燭 七曜巡萬方 

維嶽降宰輔 維帝任忠良 

五三成一德 昭我唐家皇


해석

대당(大唐) 큰 왕업(王業)을 개창하니 높디 높은 황제의 포부 빛나도다. 

전쟁을 그치니 천하가 안정되고 전 임금 이어받아 문치를 닦았도다. 

하늘을 본받음에 기후[雨施]가 순조롭고 만물을 다스림에 저마다 빛나도다[含章]. 

지극한 어짊은 해 달과 짝하고 시운(時運)을 어루만져 태평[時康]으로 나아가네. 

깃발들은 저다지도 번쩍거리며 군악 소리 어찌 그리 우렁찬가! 

명을 어기는 자 외방(外方) 오랑캐여 칼날에 엎어져 천벌을 받으리라. 

순후한 풍속 곳곳에 퍼지니 원근에서 다투어 상서(祥瑞)를 바치도다. 

사철이 옥촉(玉燭)처럼 고르고 해와 달[七曜]은 만방을 두루 도네. 

산악의 정기 어진 재상 내리시고 황제는 신하를 등용하도다. 

삼황오제(三皇五帝) 한 덕을 이루니 길이길이 빛나리 우리 당나라. 


※ 시의 경우는 해석하기 스스로 어려워 정문연 번역을 그대로 긁었음을 밝힙니다.


이 원문의 문제는 아래 말꼬리에 적습니다..

한동안 이런저런 미소녀의 사정으로 납작 엎드려 있었습니다. (어른들만 사정이 있는 게 아냣!!) 그리고 한 가지 시끄러웠던 사안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혼란한 시대, 무슨 말부터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잠깐 그 이야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이따금 인터넷을 뒤지면 흥한 것은 연애상담이라 방문객을 많이 올리는 게 소원이라면 연애블로그를 꾸려보는 것도 좋겠지요. 자꾸자꾸 새로운 사람이 연애하는 법 글을 올려도, 책으로 세상에 내놓아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연애인가 봅니다. 뭐 아예 남자와 여자가 통하지 않는 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또 누군가는 이 바닥의 고전이라 할 화성과 금성 어쩌구하는 책을 꺼낼 겁니다. 아예 화성인과 금성인이 만난 것이니 대화가 잘 될 리가 없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사고의 전환이었지요. 지금에 와서야 아예 생각구조나 논리 구조가 다르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다만 어떻게 다른 건가만 공부하면 되는 거겠죠. 그러나 오늘 이야기할 외교라는 것은 같은 태양계의 두 행성간 대화가 아니라 안드로메다와 우리 은하 사이의 소통 이상의 어려움을 가집니다. 외교라는 것에 목숨을 거느니 어우동이 되겠다!!! 정작 대외관계에 집중하는 짐순이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뭐, 문자를 보내다가, 또는 글을 쓰다가 받침 하나 빠지거나, 문장부호를 날려먹거나, 글자 한자가 도망을 갔을 경우 꽤나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되지요.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유행하고 문자프로그램이 성행하면서 오히려 자동완성이란 편리한 기능 덕에 문제가 되기도 하고 실수로 엉뚱한 내용이 가게 되면 난감한 일도 생깁니다. 또, 쉼표 하나로 유태인 학살의 문턱에서 살아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를 어떻게 처리하라는 명령서 문장에 쉼표가 빠지며 문장이 꼬여서 가스실 행렬에서 노동구역 노동으로 바뀌고 나중에 풀려났지요. 그런데 개인적인 실수야 어떻게든 넘어갈 수 있지만 (물론 그게 성적인 문제가 되면 그냥 낙인이겠지요) 외교라는 것은 마치 명왕성으로 탐사선을 쏘아 보내는 것 이상으로 정밀해야 합니다. 어떠한 문장 하나도 가까이는 지금 당장, 멀리는 수십 년 후의 세상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지요. 머리 아픈 고민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는 딱 하나. 모두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일치할 때, 그땐 그냥 콩보고 팥이라고 불러도 We are the world가 됩니다.


위의 시구를 진성왕이 당에게 바치던 650년을 전후로 해서

신라의 연대기는 매우 복잡해집니다.

백제는 의자왕의 즉위 후 대대적 공세를 벌여

한강유역의 상당부분과 가야의 옛 영역을 손에 넣습니다.

진흥왕 이후 활발하게 성장한 신라가 그 대가를 치루는 과정이었지요.

진평왕 대부터 눈만 감을 만하면 백제는 쳐들어 왔고요.

진평왕 대부터 신라인은 마치 독일에 맞서 소수의 사람들이 용기를 보인

영국항공전은 아이들 소풍으로 보일 정도로 치열한 방어전을 벌입니다.

그리고 선덕왕 말년과 진성왕 초년은 그 강도가 제일 강할 땝니다.

김유신 같으면 여기서 백제를 막고 돌아올라 하면 다른 곳으로 쳐들어오지요.

그거 막고 돌아올라 하면 또 어딘가 난리가 나죠.

그거 보면 이렇게 치열할 때는 고려 말의 왜구 침략기뿐입니다.

(이성계도 전국을 뛰어다녔죠. 남과 북을..)

고구려도 그렇다고 호의적인 건 절대 아니고요.

600년대 초반까지는 잠잠했지만 드디어 진흥왕 때 빼앗긴 영토 수복에 나섭니다.

이미 진평왕 초반부터 임진강과 한강유역은 전장이 되고요.

마운령과 황초령까지 치고 올라간 신라는 어느 시점엔가 후퇴를 합니다.

적어도 현 휴전선 인근까지는 밀려난 것 같습니다.


내부도 편안한 것은 아닙니다.

이미 선덕왕의 말년, 진덕왕의 초년에 비담의 난을 겪습니다.

무언가 신라 내부에 쌓여 있던 불만히 한 번에 폭발을 일으킨 것이죠.

드라마로 보면 그저 그런 사랑싸움 같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100년 전 고구려를 한동안 얼려버린 내전 급의 사건입니다.

이렇게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는 와중에 그 내전으로 안 망한 게 다행이지 싶죠.

(개인적으론 고구려와 백제가 때를 놓쳐버린 것 같습니다만..)


신라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풍부한 지역이 아닙니다.

지금이야 공업화로 타 지역보다 낫지만

(대구나 부산분들 자꾸 앓는 소리 하시는데 

서울 경기 빼고 거기보다 더 좋은 곳 없습니다.

거기가 아프다면, 다른 데는 이미 호흡기 떼고 있어요..)

과거에는 폐쇄적인 지역의 지리적 특성,

아무리 남쪽이라지만 동남에 위치한 바람에 생산력도 좋지 않지요.

요즘 조선 후기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를 보고 있는데

영서지역이 먹을 게 없다 없다 하지만

경상도보다 토산품이 많더군요.

(정말 그 기록대로라면 우리도 밥상을 차리면 반찬이 20개쯤인가 봅니다.

전라 40개, 강원 영동 30개, 영서 20개, 경상 10개.. 요건 농담 탕!)

생산력은 경기-충청-전라 축선을 따라잡지 못하고

사회문화적 기반도 척박하다는 국내성 인근보다 떨어집니다.

인구요?

대한민국에서야 경상도에 공업지대가 많아

타도보다 서울에 덜 빼앗겨서 전라도보다 많아 보이는 거죠.

지금이나 조선시대도 그러할 진데

천 년 전으로 거슬러가면야 지금의 경상도 지역이 우위를 가진 게 별로 없습니다.

다들 말하잖아요.

한강유역을 먹으니 신라가 급성장했다고

그러나 간과하는 건 씹어서 목으로는 넘겼는데

위장이 소화를 하기 전 옆집 사람들이 난입해서 자꾸 배를 때리는 형국입니다.

위가 녹이고, 대장과 소장이 영양분을 흡수할 시간은 있었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아니 안토하고 버틴 게 용할 정돕니다.

흔히들 말하지만 다구리 앞에 장사는 없습니다.


하여간 신라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합니다.

중고기부터 괜히 왕호 사용에 국호 통일하고

열심히 사신 보낸 게 아닙니다.

정말 신라에게는 외교가 유일한 탈출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때로는 고구려를 견제하고픈 중국 국가들의 욕구가 맞아떨어지기도 하지요.

고구려와 사이가 나쁜 북제는 동이세계의 최고 강국이라는 상징성을 가진

동위교위란 작호를 진흥왕에게 내립니다.

사실 신라가 그만큼 세졌다기 보다는 고구려 엿좀 먹으라는 외교행위죠.

다만 실익은 없지만 신라의 지명도는 약간 올라갑니다.

그렇다고 신라의 외교가 늘 성과를 거둔 건 아닙니다.

7년 전인 643년에는 당 태종으로부터 아주 치명적인 모욕을 받습니다.

상대적 약소국인데다 여왕이라는 것을 이용한 것이죠.

이 건 나중에 따로 다뤄야하겠지만

당태종의 장난이 비달사순비담의 난을 불러왔다고 보는

연구자도 많을 정돕니다.

외교는 힘의 반영이라는 냉정한 법칙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진덕왕의 시는 참으로 Anal Sucking(Brown Noser)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과거의 한마디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시를 가지고 신나게 비판에 열을 올렸습니다.

외교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1:1 당당한 만남이라는 신화에 혼을 빼앗긴 분들,

또는 우리는 항상 대륙을 호령했다고 생각하고픈 분의 눈에는 뭐가 만족스러울까요?

외교가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아주 초창기도 아니고 그럭저럭 나라꼴을 갖추어가게 되면 

외교는 초정밀 시계처럼 돌라갑니다.

개중에는 근초고왕이 신하를 시켜 일본 사신에게 자기 창고 보여주고는

이걸 일개 신하의 창고라고 말하며

'우리편 되면 우리 왕께서 창고 대방출할꺼임~. 

그거 열라 큼! 내 창고는 비교도 안 되는 거임' 이런 뻥카도 나옵니다.

과거 동란기 난민 송환문제로 북제 사신이 고구려왕에게 주먹을 들이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외교행위는 웃는 듯 마는 듯,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하지만 그 아래에선 매우 교묘한 언어들이 오갑니다.

지금도 외교관은 말을 아낍니다.

그리고 사소한 표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습니다.


외교가 힘의 반영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강자가 약자를 빨아주기도 합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게 이익이 된다면 입니다.

이를테면 미국이 소말리아에게 기어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누구도 소말리아가 미국을 누르고 초강대국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겠죠.

때로는 상대에게서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 편을 욕할 때도 있습니다.

동감을 하게 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때로는 어떻게든 한쪽이 삐지거나 손해 보지 않게끔

다 먹을 수 있는 것도 조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약간 양보해도 나중에 상대를 저지하는 장벽이 됩니다.

그런 외교적 사고가 증발한 것이 1차대전 후 전후처리 협상이고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것은 또 하나의 비극을 초단기간에 양산했지요.


그냥 비판하기는 참 쉽습니다.

그렇다고 답답하면 너희들이 뛰던가..도 아니고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닥..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런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 교육 탓이지요.

A는 B다.

이렇게 세상을 단순하게 가르치니 그 너머에 뭔가가 있을 것이란 생각은 하질 못하고

그저 모니터에 비춰진 것만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오독하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자꾸 칭찬 과하게 하는 문화권 사람들한테 은근히 칭찬을 요구하지요.

(카메라 들이밀지 않아도 그냥저냥 좋은 말 많이 해줍니다)

그러면 그게 세계의 인정인양 동네방네 떠들며 자화자찬들 하지요.

말과 말 뒤에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당할 수 밖에 없는데

순진한건가 멍청한건가.. 그래놓고는 조상들을 재단질합니다.


외교는 '무조건' 당당해야 한다고요?

그 당시, 신라는 고개 쳐들고 외교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도 세상은 지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애들 상대로요?

내가 친구가 적으면, 암울한 애들 모아 이웃사촌부라도 만들면

적어도 하렘놀이는 할 수 있죠.

그러나 주변에 적들에게 둘러싸여 맨날 두들겨 맞는 처지에

갑놀이 할 수 있나요?

제발 자기도 실생활에서 못하는 거 조상들에게 억지로 강요하지 맙시다.


그냥 죽은 자는 말을 못하니까 자꾸 매도를 하시는데

그렇게 영혼도 팔아먹을 듯 행동했지만

정작 신라의 내부 구조는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할 때까지 그대로 갑니다.

중국 거라면 그대로 갈아엎고 닥치고 했을 것 같은데요.

의외로 많은 것들을 카피하기까지 해놓고

정작 자신의 사회시스템의 중추만은 절대 안 건드립니다.

그런 경험이 일천한 일본마저도 당나라 율령시스템 구축하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신라는 겉포장과 말단만 좀 바꾸고 말았어요.

그 말 많은 경덕왕의 한화정책도 깊이는 매우 얕았어요.

신라는 애널써킹을 하는 와중에도 싸울만하면 싸움에 임합니다.

그게 나당전쟁이고요.

적어도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이 

중고기 이후 신라의 외교를 비웃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특히 미 항모가 황해에 들어선 시점 이후

대한민국의 외교는 완전히 말라비틀어졌지요.

어지간해서 내가 해도 이거보다 낫다는 말은 절대 안하는데

전 정권의 외교를 보고 처음으로 이 말을 했습니다)


제발요 그냥 문구에 집착하지 마세요.

외교는 당신이 이성에게 뻐꾸기를 날릴 때 쓰는 말과 

그에 대한 반응의 1천배는 더 미묘합니다.

그냥 "내 아를 낳아도!"라고 하면 알아서 웨딩드레스 입고 나타나주지 않아요.


말꼬리 ------------------

이번엔 사진속 글자와 원문이 많이 틀립니다.

첫구절 大唐開洪業에서 大唐開이 생략되었구요.

그 다음줄의 修文繼百王 統天崇雨施에서

繼百王 統이란 부분이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여러 판독에서 淳風凝顯 요 문단만 4글자인데

(눼, 5언시에 글자 하나가 빠지는 것도.. 혹시 진성여왕의 덜렁이 미소녀설???!!!)

요, 원문에는 幽자가 들어가 있네요. 이건 모르겠당!

요건 현재 가장 오래된 판본인 정덕본에도 그대로 나와있는 오륩니다.

아마 그 전에 필사나 정리 작업 중 생긴 오탈자를 그대로 개재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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