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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설씨네 아가씨 04 - 다주고 가는 남자, 다 얻고 가는걸까?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설씨네 아가씨 04 - 다주고 가는 남자, 다 얻고 가는걸까?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9. 12. 08:52

원문

薛氏甚喜 入告於父 父引見曰 “聞公欲代老人之行 不勝喜懼 思所以報之 若公不以愚陋見棄 願薦幼女子 以奉箕箒” 嘉實再拜曰 “非敢望也 是所願焉” 於是嘉實退而請期 薛氏曰 “婚姻人之大倫 不可以倉猝 妾旣以心許 有死無易 願君赴防 交代而歸 然後卜日成禮 未晩也” 乃取鏡分半 各執一片云 “此所以爲信 後日當合之” 嘉實有一馬 謂薛氏曰 “此天下良馬 後必有用 今我徒行 無人爲養 請留之 以爲用耳” 遂辭而行

 

해석

설씨는 매우 기뻐하며 그의 부친에게 고하였다. (그녀의) 부친은 가실을 불러 말하기를 “그대가 노인의 일을 대신하고자 한다고 들었소. 기쁘면서도 걱정이 듦을 이길 수 없소이다. 이걸 어떻게 갚을까 생각해보았는데, 만약 그대가 어리석고 가난하여 꺼려하지 않는다면, 어린 여식을 권하니 비질이나 시키게 해주면 좋겠소만.” 가실이 다시 절하며 말하기를 “감히 바랄 수 없던 것인데, 이는 원하는 바입니다”하였다. 이에 가실은 물러나 날잡기를 청하니 설씨녀가 말하기를 “혼인은 인간의 큰 일인데, 갑작스럽습니다. 소녀는 이미 마음을 허락하였으니 죽어도 바뀔 일은 없습니다. 원컨대 그대는 방추를 다녀와 교대하고 돌아오면 그때 날을 잡아 식을 올려도 늦은 게 아닙니다”라 하였다. 이에 거울을 반으로 쪼개어 서로 한 조각씩 집으며 말하기를 “이것을 증표로 삼아 후일 만나서 합쳐봅시다”라 하였다. 가실은 말 한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설씨녀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이는 천하의 좋은 말이오. 후일에 반드시 필요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역을 가서 길러줄 사람 없으니 청컨대 여기에 두고 써주시오”라 하고는 드디어 작별하고 떠났다.

 

설씨네 아가씨의 고민이 해결될까요? 아버지의 군역을 대신하겠다는 용자가 나타났습니다. 아.. 지금 문을 열고 나가 거리의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군대 가고 싶냐고요. 아직 가지 않은 이는 찡그릴 것이요, 이미 다녀온 이는 죽일 듯이 쳐다볼 겁니다. 강원도에서 왔다니까 거기서 군 생활하다가 죽을 뻔했다는 분들 많이 만나봤어요. 아마 전역한지 수십년은 지난 분들이.. 하하. 누구하나 가고 싶다고 큰 소리로 외치는 건 박카스 광고의 모델 밖에 없었어요. 아니 그도 광고연기니까 그랬지 속마음은 싫었을 거예요.


그것도 설씨네 아가씨의 부친은 두 번째인지 세 번째인지 모르겠으나 하여간 다시 오라는 겁니다. 기분이 상큼할리가요. 누군가 대신하겠다는 사람이 나왔다는데 그게 안기쁠 리가 있을까요. 그래서 신이난 아버지는 ‘고맙네. 이를 어쩌나 뭘로 보답해야 하나. 흠흠. 내 딸이라도 주고 싶구만.. 흠흠.. 쟤가 못생기고 가난하게 살아서 좀 찌들었지. 그래도 좋다면 그냥 자네 집에서 비질이나 시키게’


딸의 의사와는 관계가 없이 정해지니 이 무슨 폭거냐고요? 

강원도 산골에선 수십년전까지도 

신부는 신랑의 얼굴을 결혼식에나 봤습니다. 

그냥 아버지와 아버지끼리 만나서 정하면 그뿐이었어요. 

그때는 꽃같았던 할머니들은 그냥 가라면 가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니 혼례하는 당일 날 슬며시 쳐다본 거지 뭐 제대로 보시기나 하셨겠어요. 

천년도 더 넘은 과거인데 뭐 어쩌겠습니까.


여기에 좀 재미난 표현이 나오죠. 비질이나 시킨다. 

요즘처럼 자네같은 작자가 내 딸을 감히 데려가려고 하느냐고 

윽박지르는 세태와는 다릅니다. 

물론 정말 천한 일이나 시키면 화를 내시겠지만 

이는 딸과 결혼해달라는, 아주 간혹가다 남자에게 청혼하는 여인의 관용적인 표현이죠. 

그냥 집에 두고 청소나 시키시오, 거둬서 청소라도 시켜주세요. 

그런 표현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쓰일 일이 없는 표현이지요. 

하하 이젠 청소기가 대신하는 시대니 현대의 남성은 청소기랑 결혼해야겠군요.


남자는 사모하던 여인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여인은 아버지의 고민을 해결해줄 듬직한 남자를 얻었습니다. 

그 아가씨에게 선택권은 없었지만 적어도 나름 믿을만한 사람을 구했으니 

그래도 망한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그 시대에는요.


남자는 뭔가 남기고 싶어했지만 여자는 나중으로 미뤘어요. 

저 위의 해석문에서는 다 집어넣지는 못했지만 

어딘가 여자는 발을 빼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차피 부모 허락이 나왔는데 그냥 식을 올려도 되잖아. 

남자가 전방에 가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건가? 

좀 얍삽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과연 그녀가 그런 계산적인 여자였는지는 다음에 짚어보지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드는 의문.

과연 자식놈이 남의 집 군역이나 대신하고

말까지 넘겨주는 상황에 가실네 부모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그건 사료에 나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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