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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내물왕 즉위년 - 고모랑 결혼한 남자..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내물왕 즉위년 - 고모랑 결혼한 남자..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4. 8. 20. 01:20

원문

奈勿<一云 那宻>尼師今立 姓金 仇道葛文王之孫也 父末仇角于 母金氏休禮夫人 妃金氏 味鄒王女 訖解薨無子 奈勿繼之 <末仇末鄒尼師奈兄弟也>


해석

내물<혹은 나밀이라 한다>이사금이 즉위하였다. 성은 김씨로 구도갈문왕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말구각간, 어머니는 김씨 휴례부인, 왕비는 김씨로 미추왕의 딸이다. 흘해이사금에게 아들이 없어 내물이 뒤를 이었다.<구도와 미추이사금은 형제이다>


아아 모자이크가 들어갈 여지가 없을 쩡도로 꽉찬 제구!

교과서에 참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나왔습니다. 이를테면 초중고교 각각 5학년, 2~3학년, 1학년에 배우는 교과서에 항상 등장하는 고대사의 인물이기도 하지요. 고대국가 성립기의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교학사 그림- 지면 관계상 아래로>


빌어먹을 교학사 고교한국사 교과서에도 이 왕의 이름은 걸려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범하는 오류를 제외하면 이 대목은 멀쩡하군요.(참고로 여기 인용된 것은 작년 가을에 공개된 부분입니다)


<미래앤컬쳐 그림- 지면 관계상 아래로>


미래앤컬쳐(구 국정교과서)의 고교한국사 교과서는 좀 더 자세합니다. 그럭저럭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다만 그로부터 부자 상속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아들인 눌지에게 차기 왕위가 가지 못하고 실성왕이 뒤를 이었으니, 부자상속에 한해서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박・석・김, 3성이 왕위를 나눠먹는 시스템에서 김씨가 다 해먹는 시대의 시작이라고 보면 모를까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내물왕을 끌어들인 것은 아닙니다.


바로 그의 결혼이 그 주제입니다. 그의 아버지도 김씨, 어머니도 김씨, 부인도 김씨입니다. 그때도 경주 김씨 외에 다른 김씨가 있었을 리 만무하니 요즘말로 하면 당연히 동성동본 결혼입니다. 더욱이 지금처럼 촌수가 아주 먼 동성동본혼도 아닙니다. 다 가까운 가족관계의 사람들끼리의 결혼입니다. 내물왕의 왕비는 할아버지의 형제의 딸, 그러니까 고모뻘의 사람이지요. 물론 우리들의 고모님들 나이대의 신부를 떠올리면 곤란하지요. 뭐 나이는 훨씬 어린데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들도 있죠. 지금 같으면 혼인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불법입니다.


보편적인 인류사회에서는 문명단계로 들어온 이래로 근친혼이 도덕적으로 규탄받고 터부시되는데, 신라나 고려 초, 고대 이집트(투탄가멘의 부인도 누이였고, 그의 부모도 근친혼이었죠, 후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도 근친혼을 해왔지요)나 그 유명한 합스부르크의 턱이라는 열성유전병을 자랑한 합스부르크 왕가도 그렇고 근친혼은 종종 일어납니다. 물론 남매끼리 결혼한 고대 이집트의 경우는 정말 특수한 것이고, 보통은 사촌 언저리에서 이뤄지지요.


왜 이런 결혼이 일어날까요? 가까운 근친이 매우 매력적으로 보이는 증세에 단체로 감염되었을리는 만무합니다. 가족같이 가까운 경우에는 그 이성에 대한 매력이 감쇄한다는 이유도 있고, 또 수천, 수만 세대의 유전의 경험상 가급적이면 가족 외 집단에서 배우자를 구하는 게 낫다는 결론은 유전학의 탄생 이전부터 알려진 것입니다. 실제로 이집트 왕실 내의 근친혼에서 벌어지는 가족병력의 유전, 그리고 합스부르크왕가의 열성유전자의 대를 이은 출현은 유명합니다. 가뜩이나 7만년 전의 극격한 인구감소를 겪어 가뜩이나 유전자의 다양성이 많이 손상되었음을 생각하면 피하고 싶은 결혼의 형태입니다. 그런데도 신라를 비롯한 몇몇 국가, 사회에서는 근친혼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이에 대한 답변 또한 나와있기는 합니다. 근친혼을 택한 조직의 특성은 바로 그 근친혼을 수행하려는 이들의 신분구조가 어떻게 돌아가느냐에 좌우합니다. 더 쉽게 말해 그들의 신성성이 높아질수록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상대가 제한됩니다. 갑오개혁에 의해 신분제가 사라진지 백년이 지난 지금에도 결혼은 여전히 가문과 가문 사이, 좀 더 순화시켜 말해도 같은 수준끼리 해야 문제가 없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신분의 차이가 극명하고 또 상위 신분의 특수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결혼의 상대자를 구하는 일은 매우 어려워집니다. 이쁘냐 아니냐, 돈이 많냐 적냐, 착하냐 성격이 나쁘냐.. 이런 것을 가릴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너와 격이 맞는 결혼 적령기의 여성을 찾을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신(에 준하는 존재)이었던 이집트의 경우 같은 신과 가까운 가족 밖에 대상이 안남지요. 그러므로 카이사르를 만나기 전의 클레오파트라는 어린 남동생을 남편으로 삼았었지요.


삼국시대의 경우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고구려와 백제의 경우 귀족들에는 왕실과 다른 이들도 속해 있었습니다. 신라의 경우는 국가 형성시의 규모의 차이에 따라 왕족들이 귀족층의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신라의 경우 소집단들이 모여 초기 신라를 이룩할 때, 고구려나 백제를 형성한 집단들 하나하나가 신라의 초기의 규모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상층 신분의 폭이 좀 더 넓었지요. 비록 국가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 신분층이 차지하는 인구비율을 보면 처참할 것입니다. 삼국시대 귀족층의 인구규모는커녕 전체 국가의 인구도 뚜렷하지 않은 상태라 단언할 수 없지만 통일신라의 전체 관리(각급 부대 상급 장교들 포함)의 정원수나 문무왕 때 관등에 따라 목장을 나누어준 것을 검토하면 특히 최상층의 숫자는 극히 적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숫자가 알려진 경우도 있습니다. 헤이안 시대의 일본 인구를 800만으로 볼 때, 겐지모노가따리의 주요 등장인물이 될 수도 있는 최상층은 200명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중하급 관리, 싱라로 치면 5두품, 4두품들에 해당될 사람들이 1만 2천명입니다. 만약 짐순이가 그 시대의 꽃같은 아가씨라고 가정할 경우 200명 중 100명은 당연히 여자일 것이므로 뺍니다.(백합물을 찍을 수는 없잖아!!) 나머지 100명 중에서 도저히 결혼할 수 없는 노인과 아이들을 제하고, 이미 임자가 있는 분을 빼고나면 결혼 적령기의 남자는 두서넛이면 많을 겁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오라버니와 정치적으로 으르렁 거리는 사이도 있을 것이므로 극단적으로 가정해보면 짐순이는 결혼 대상자가 한 명 정도 남습니다. 


그 남자가 건담으로 치면 샤아 아즈너블처럼 허우대는 멀쩡한 유녀성애자(로리!)가 될 수도 있고, 겉보기는 무서운 도즐 중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뭐, 그래도 가족들과 부하들에게는 한 없이 따뜻한 우주 남자..) 아니면 히틀러의 꼬리인 기렌 자비나 졸라 찌질 콘스콘 소장이 걸릴 수도 있죠.. 아! 짐순이는 연방이고 저들은 지온이잖아!!(은하영웅전설로 치면 양 웬리냐 포크 준장이냐, 아니면 라인하르트냐 오베르슈타인이냐.. 훌쩍) 뭐, 그저 남자면 된다는 매우 슬픈 사태에 직면할 수 밖에 없지요.


물론 좀만 넓게 보면 사내는 많지만 죄다 신분이 맞지 않는 ‘놈’들뿐이죠. 당시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낮은 신분의 천한 것과 피를 섞었다간 우리 가문의 피가 덩달아 탁해지고, 근대 유럽식으로 말하면 사교계의 왕따가 되려는 짓이지요. 다들 과격한 묘사에 넋을 잃고 보지만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당대에 파문을 일으킨 것은 그 적나라한 묘사가 아니라 귀족의 부인이 노동계층의 남자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물론 타이피스트가 정서를 거부해 올더스 헉슬리의 부인이 타이핑 한 건 물론 과격한 묘사 탓이지만요) 지금처럼 인구수가 많은 김해 김씨나 전주 이씨, 밀양 박씨들처럼 대학에서 출석번호가 가까워 친하게 지내다 사랑이 싹트고 보니 쟤도 나랑 동성동본이더라.. 이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고민입니다.  


이 부분은 남자도 해당이 됩니다. 다만 축첩이 허용되던 시대기 때문에 낮은 신분의 여자를 품을 수도 있고 자식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봐야 호부호형을 못하는 홍길동의 고대버전이었겠지요. 김유신의 아들이야 3남인 원술이 유명하니까 3형제만 알지만 그 외에도 군승이라는 아들도 존재했습니다. 아마 그의 어머니의 신분은 낮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보면 결국 결론은 버킹검, 아니 근친혼 밖에 없는 겁니다.


후대의 유학자들은 이른바 개족보를 만났을 때 그를 어떻게 해석할까를 고민했습니다. 유학의 보편성으로 그 부도덕성을 비판할 것인가, 아니면 고대사회, 그리고 당시 삼국의 특수성을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습니다. 조선시대는 그냥 특수성은 개나줘라 하고 보편성을 들어 난도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존 가장 오래된 역사서를 남긴 김부식은 이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알려진 것과 달리 팀을 짜서 책을 만들었기에 이 기사는 그의 팀원 중 누구 하나가 썼겠지만 그에 대한 논평은 김부식의 글입니다. 짐순이의 사대주의자일리 없는 옵하는 뭐라고 이야기 했을까요?


말꼬리 -----------------

1. 

한참 전부터 학계에서는 내물왕이라는 이름 대신 나물왕이라 부릅니다만 여기서는 귀에 익은 내물왕이라고 부릅니다. 아직도 나물왕이라는 이름이 입에 안걸리네요.

2. 

다음 주는 이 결혼에 대해 김부식은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 함 봅시다. 미리 말하자면 꽤나 전향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역시나 이 옵하는 꼰대끼도 있어요. 콩깍지가 씌인 女ㄴ은 그래도 ‘울 옵하는 납흔 남자의 매력이 있다’고 빠수니질을 하겠죠. 눼, 여기는 국내 유일, 우주 유일 김부식 빠수니 블로그거덩요.

3.



교학사 교과서의 내물왕 설명



미래앤컬쳐 교과서의 내물왕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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