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귀산과 추항, 그리고.. 1 - 이야기의 시작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귀산과 추항, 그리고.. 1 - 이야기의 시작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4. 12. 4. 11:20

아주 오래간만에 삼국사기 글이 나옵니다. 이러저러한 일로 잠시 손에 놓았는데 그 동안에도 이런저런 시도들이 잇엇지요. 다만 나오지 못한 것일 뿐. 원래 진행하려던 김양은 잠시 접고(아마 다른 방식으로 나갈 것 같습니다), 최근에 관심을 가진 어떤 주제에 대해 하려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미로에서 갑자기 두어번 선회를 하다보니 오늘의 이야기로 나왔습니다. 그동안 오뒤세우스의 모험의 1/1000은 떠돌았던 것 같네요. 


원문

貴山 沙梁部人也 父武殷阿千 貴山少與部人箒項爲友 二人相謂曰 我等期與士君子遊 而不先正心修身 則恐不免於招辱 盍聞道於賢者之側乎 時圎光法師 入隋遊學 還居加悉寺 爲時人所尊禮 貴山等詣門 摳衣進告曰 俗士顓蒙 無所知識 願賜一言 以爲終身之誡


해석

귀산은 사량부 사람으로 아비는 무은 아간이다. 귀산은 어려서부터 같은 부 사람인 추항과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서 말하기를 우리들은 선비와 군자와 어울리기로 기약하였으나 먼저 마음을 바로 잡고 몸을 다스리지 못한다면 즉 수치를 부르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 어찌 현자의 곁에서 도를 듣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하였다. 이때 원광법사가 수에 유학을 갔다가 돌아와 가실사에 머무르고 있는데 당시 사람들에게 존경과 예우를 받고 있었다. 귀산 등이 (가실사의) 문 앞에 이르러 옷자락을 걷어 올려 예를 표하고 나아가 말하기를 “속세의 선비는 우매하기 짝이 없어 아는 것이 없습니다. 원컨대 한 말씀 남겨주시어서 죽을 때까지 지킬 계율로 삼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권45, 열전5. 모자이크가 부족해!!

오늘의 이야기는 화랑 귀산의 이야깁니다. 원래 짐순이의 패턴이면 진흥왕 떄 화랑의 시작 기사부터 나가야 겠지만 그랫다간 너무 장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서 여기서부터 시작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다 화랑도에 대한 책이 나오지 싶어요.. 싫다!)


귀산은 진평왕대의 사람으로 경주에 살던 사람이라는 것은 사량부인이라는 문구로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위의 부카니스탄에서 볼 수 있듯이 수도에 산다는 것은 대단한 특권층이라는 이야기지요. 당시의 신라는 수도 사람들과 지방 사람들에게 주는 등급도 달랏습니다. 흔히들 17관등이라고 부르는 관등제에 편입시키지 않고 지방민들에게는 별도의 위계를 주어 차별합니다. 일부는 소경이 만들어지면서 수도에서 이사가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왕경인입니다. 


적어도 그냥 보기에 평민같아도 지방의 평민보다는 급이 높습니다. 저번에 다룬 설씨녀의 경우는 한미하다고 나오지만 오늘의 주인공 귀산은 아버지가 아간, 그러니까 17관등제에서 6등에 해당하는 아찬입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것이 진골과 6두품인데 나중에 아버지가 아찬보다 더 위로 승진하니까 진골인 것이죠. 진골이라함은 그냥 귀족이 아니라 왕족이거나 거기에 준하는 신분이라는 이야기지요. 부카니스탄 식으로 말하자면 당에 한 발 걸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것도 아바이 동무가 중앙당 서열에 올라가있는 상태!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은 아바이가 잘나가고, 지도 좀만 노력하면 잘 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거죠. 그렇게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면 경주 오렌지족 놀이를 해도 뭐라 할 사람이 그닥 없겠구만 참 착실합니다. 극소수의 예를 가지고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 바다로 나간 대세도 그렇듯 진평왕대의 상류 청년들은 현실에 안주하기를 겁내었던 걸까요? 현재의 만족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친구 추항(아마 얘도 금수저)과 함께 맹세를 하는 것이 마치 이 비석의 내용과 유사하지요.


출처는 아래 해석문 끝에.. 그 임신이 아냣!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임신년 6월 16일 두 사람이 함께 맹서하여 쓴다. 하늘 앞에 맹서하여,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忠道)를 집지(執持)하고 과실이 없기를 맹서한다. 만약 이 일[맹서]을 잃으면 하늘로부터 큰 죄를 얻을 것을 맹서한다. 만약 나라가 불안하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워지면 가히 행할 것을 받아들임을 맹서한다. 또 따로이 먼저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서하였다. 시(詩), 상서(尙書), 예기(禮記), 춘추전(春秋傳)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서하되 3년으로 하였다.


한국금석문 종합영상정보시스템에서 사진과 해석문을 업어왔습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두 명의 화랑이 서로 자신을 갈고 닦음에 대한 맹세를 하고 그것을 돌에 세긴 것이지요. 이 비석을 552년(진흥왕 13)으로 보기도 하지만 아무리 봐도 612년(진평왕 34) 혹은 그 이후로 보는 게 맞지 싶습니다. 진흥왕 순수비의 문장 역량을 생각하면 그 시대에 어린 것들이 상서 예기를 공부하고 있었다고 보기엔.. 하여튼 이런 마음가집으로 공부에 임한 것이지요.


두 사람은 당시 신라 최고의 지식인으로 꼽히던 원광을 찾아갑니다. 여기 문장을 해석할 때 애를 먹었는데 속세의 선비라고 다른 사람 번역하듯 했지만 적당한 단어가 안떠올랐습니다. 士라는 글자는 선비 사라고 읽고, 대다수는 조선시대의 문신관료 내지는 그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士라는 단어는 좀 더 전사, 무사에 가까운 의미를 가집니다. 이 시대의 士도 역시 전사, 무사의 성향이 강한 관리예비군의 성격으로 봐야죠. 그냥 속세의 선비라고 풀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후대의 선비, 사대부를 의미하니까요. 


그리고 옷자락을 걷는다는 말은 "예기"같은 책에 따르면 스승이나 높은 사람들에게 행하는 예라고 합니다. 신분이 높을 수록 질질 끌리는 옷을 입는데, 여기서는 그런 옷이 땅에 질질 끌리지 않게 옷자락을 손으로 잡아 올리고 조심스레 걷는다는 의미같습니다.


하여간 귀산과 추항은 할 수 있는 예를 다 하며 자신들이 스스로 정진하기 위한 가르침을 달라고 원광법사에게 청했습니다. 과연 원광법사는 어떤 답을 주었을까요?(뭐, 역사의 세계에 스포일러 돌아다닌다고 화내는 멍청이는 없지 말입니다. 키랏~☆)


말꼬리 -----------------

1. 원래 하려던 분량이 너무 적어 양을 늘렸더니 모자이크의 양이 확 줄었네요. 아아.. 모자이크가 부족해. 어서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라는 계시인듯.


2. 왜 신라 이야기에 부카니스탄 이야기가 나오나 하면 신라와 가장 가까운 국가구조를 갖춘 곳이 저 위의 왕국이라 그렇습니다. 저 부카니스탄은 고대왕국의 완벽한 재현이거든요. 장성택 사형 시에 이 문제 대해 쓰려다 안썼는데 이유는 우리나라도 현재 유신독재 체험학습 중인데 남의 나라 디스하기엔 낯짝이 뚜겁지 않아서 였거든요.(그런데 우린 환령지말로 올라갔다! ㅆㅂ, 십상시라니!! 우리가 이겼어! 남한체제의 승리다!)


3. 마지막 회 제목을 먼저 정하고 나니 입이 근질근질, 금수저 이야기를 하니 오늘은 은수저 만화책이라도 다시 펴야지..(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4. 본문 중에서  두 사람은..하고 문장을 이어나가다 두 사람은 프리큐어를 떠올렸네요. 아놔!! (제군, 짐순이는 호노카가 좋다.. 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