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낙랑군 호구부로 본 한군현의 위치 본문

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낙랑군 호구부로 본 한군현의 위치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6. 6. 30. 21:32

요즘 이런저런 일로 "낙랑군 호구부"를 보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선 낙랑군의 비중이 크지 않았는데 마치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걸려버려 발목잡혔지요. 그래서 졸음과 싸우며 보고 있는데 재미난 것을 발견했습니다.


낙랑군이 최대 25개현이 있었지만(진번과 임둔군을 폐지하며 그 소속 현들이 낙랑군으로 이관되었지요) 그 정확한 위치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나마 남은 조각의 사료와 지명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긴 했습니다만 현의 중심에 존재해야할 현성이 9개인가 밖에 안남은 것도 딱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없지요. 그동안 우리가 낙랑군의 현의 위치를 생각하는 것은 두계대마왕 이병도의 지명비정, 그리고 중국 역사지도였습니다. 마침 이병도의 책은 다른 곳에 있어서 일단 평소에 많이 이용한 담기양의 중국역사지도를 인용해보지요.


평소에는 이 부분의 아랫쪽만 캡쳐하지만 말꼬리를 위해 평소보다 넓게 올려봅니다..


지금의 평안남도와 황해도, 그리고 함흥에서 강릉에 걸치는 해안가에 두 글자(딱 하나만 세글자)의 한자들이 산포되어 있는데 그게 낙랑군의 소속현입니다.


당대 기록인 "한원"에 한서지리지를 인용한 한군현 목록이 있는데(한서 지리지를 인용해야하지만 번역문을 가진 건 이것이라..) 그를 인용해봅니다. 해석이 개판인 건 좀 넘어가시라. 짐순이 틀리는 거 어디 원데이 투데이 봐여?


"한서" 지리지에 이르기를 낙랑군은 무제 원봉 3년(B.C. 108)에 설치되었다. (왕)망이 낙선군으로 고치고 유주에 속하게 하였다. (응)소의 주에 따르면, 조선국은 (주의)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던 일로 부터 비롯된)다. (조선 외에도) 남한・패수・함자・점제・수성・증지・대방・사망・해명・열구・장잠・둔유・소명・누방・제해・혼미・탄열・동이・불이・잠태・화려・사두매・전막・부조 등 25현이었으며 치소는 조선현에 두었다.

- 한원 번이부 고려조


어떤 분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낙랑군의 치소, 즉 군청소재지는 평양의 조선현입니다. 조선현을 중심으로 하는 영역은 위만조선 이래로 고조선의 핵심지일 것입니다. 그리고 같이 세워졌다고 하는 진번과 임둔은 그 부용집단(늦게 잡아도 위만 이후에 복속된) 집단을 지배하기 위해 세워졌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특히 진번의 위치에 대해서는 낙랑의 남쪽, 그러니까 현재는 황해도지역이며 나중에 대방군이 세워지는 곳이라고 보는 것이 대세입니다. 그런데 일설에는 낙랑보다 북쪽, 그러니까 청천강 유역 이북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뭐, 임둔군이야 별다른 이설은 없습니다. 동쪽으로 치우친 산맥으로 인해 영동지역에 가거지가 별로 없어서.


국립중앙박물관, 낙랑전 도록(소) 2001, 8쪽의 지도..


이쪽에 대해서 지식이 짧은 짐순이가 봐도 저 지도는 이상했거든요. 낙랑군 남쪽에도 군현은 설치되어있었고, 진번군이 폐지된 후에도 낙랑군 남부도위부(출장소라고 해두죠. 이 개념을 설명하자니 그것도 글 하나라)가 설치됩이다. 임둔군이 폐지된 후 동부도위부가 세워지는 것을 보면 진번군의 위치는 남부도위부 영역이어야 맞거든요. 아마 청천강 북부는 요동군, 혹은 현도군의 영역이었을 것으로 보이.. 쓰다보니 위조선 영역에 대해 지금도 활활타오르는 지뢰를 건드릴 것 같아서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 얘기는 이쯤에서..(사실 위만조선의 북계는 읽어도 이해가 안됩니다.)


1990년에 평양의 정백동에서 발굴된 364호 목곽묘에서 여러종의 문서가 출토됩니다. 중국애서는 전국시대부터 한대에 이르는 시기의 무덤에서 문서들이 많이 출토됩니다. 무덤의 피장자가 관리인 경우 그가 만지던 문서, 또는 잘읽던 책이 출토됩니다. 공문서의 경우 문헌기록에 나온 제국 운영의 실태를 잘 보여주고 책의 경우도 현존하는 판본이 얼마나 원본에 가까운가를 밝혀주는 자룝니다. 얼핏 들으니 중국 각지에서 발견되는 문서는 몇몇의 연구자가 감당할 수 없는 양을 자랑합니다.(물량의 미국? 풉. 원조는 우리다!!..라고 말한다면 인정합니다) 하여간 그런 것이 평양에서도 발견됩니다.


낙랑군 초원 4년 현별호구부(윤용구, 「‘낙랑군 호구부’의 발견 - 100년 낙랑고고학의 최대 수확」, "내일을 여는 역사" 63, 2016, 151쪽)


초원사년 낙랑군 현별호구부라는 이름인데(-당신들이 아는-호구와는 다르다! -그-호구와는!!) 당시 한제국은 1년에 한번씩 제국 내의 각 군현의 인구증감에 대해 조사를 했습니다. 그래야 세금을 걷고 병역부담을 지우거든요. 인구 30만도 안되는 춘천시민에게 서울시와 동일한 금액을 부과할 수 없지 않습니까? 초원 4년이면 기원전 45년이고 왕소군으로 알려진 원제의 시대입니다. 여기에 25현의 각각의 인구(호-가족와 구-머리수)와 그 증감이 표시되었는데 그 자세한 내용이야 넘어가고 재미난 건 25개현을 크게 4범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위만조선의 중심지인 낙랑군 중심부, 옛 진번의 영역에 자리한 구역, 임둔에서도 동해안구역과 산맥 서쪽으로 나뉘어집니다. 이를 통해 앞의 담기양 지도를 동시에 비교하자면 황해도에 있어야할 군이 평안도에 위치합니다. 


뭐, 담기양이 낙랑담당도 아니라 왜 틀렸느냐고 깔 건 아니고(무려 30년 전에 나온 책입니다) 그 때보다 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됩니다. 몇몇 작업을 하는 동안 낙랑군 내의 햔 위치비정에 대한 자료가 절실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그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는군요.



말꼬리 --------------------------

1. 

이래서 삼국통일기 이전으로 올라가기 싫은 것이다!!!

2.

일부러 지도를 크게 캡쳐한 이유는 위대하시고 뛰어나신 역사학계의 영도자 이@일 선생께서 거한 삽질을 하셨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현도군이라고 세로로 크게 띄워놓은 자리 옆에 고구려를 약간 사선으로 서놓았는데 그 분께서는 잘못 접/붙/임을 하셔서 고구려군이 있었다고 하셨다나 뭐라나.. (그러니 임나일본부 없다는 책보며 저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뻥치고 있지) 이러다 정들어 나중에 이@일 모에화 하는 건 아닌가 몰러.

3. 

저 호구부 사진의 원문은 부카니스탄의 학술지 "조선고고연구" 149호(2008)에 실린 게 원문이나 시절이 시절이라 눈치를.. 그런데 저 책의 복사본을 가지고 있는데 안읽은 게 생각.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