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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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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이야기/자료로 보는 고대사

책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7. 10. 22. 23:48

춘천으로 돌아오기 전, 지인과 놀다가 오늘 마감한 원고 하나 이야기를 했다. 당나라 사람이 펴낸 책이 어떻게 일본에서 발견되었는가, 필사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닭다리를 뜯으며 그런 이야기를 했다. 가지고 있는 필사본의 사진과 그걸 어떤 작업을 하는가 블라블라. 지인은 중국 책이 일본에 필사본 하나만 전해진다는게 신기하다고 했다.


과거에 소위 애국지사들께서(퉷!) 김부식을 욕하던 논리 중에 하나가 삼국사기로 악의적 왜곡을 한 다음 진실 규명이 두려워 분서했다는 거다. 물론 삼국사기에 바탕이 된 고기들은 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게 분서로 인한 망실이었다면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사실 라노베고 일연의 삼국유사도 웹소설이다.(귀, 귀여니, 일여니.. 응? 모에한 스님이닷!) 왜냐고 동명왕편과 삼국유사는 삼국사기 이후에 나온 책이거든. 둘이 액자식 소설이라도 썼단 말이냐.


조선왕조실록만 놓고 봐도 설명이 가능하다. 한 질도 아니고 여러 질을 만들어 분산배치를 했는데도 임난 이전 실록으로 살아남은 건 전주사고 뿐이다. 고려 때도 초기 실록은 거란의 2차 침공 때 사라진 거지. 또 다시 찍어서 분산보관에 더욱 신중을 기한 건 또 어떻게 되었나. 일본으로 간 건 관동대지진에 아작나고, 한 질은 부카니스탄으로 넘어갔다.(부카니스탄이 그거 잘 보관해주면 그나마 다행이고. 뭐 원문읽기를 강조하던 남한과 달리 부카니스탄은 일찍부터 번역에 매달렸지. 다만 존호를 그대로 풀어쓴 건.. 악!)

현종실록 활자로 찍은 삼국사기


그나마 실록은 국가 사업이다. 돈은 졸라 깨지지, 짐순이가 주로 보는 삼국사기(주자본)도 현종실록 만들 때 제작한 활자로 찍었거든. 그거 공개도 안하고 짱박을 거 몇 질 찍자고 활자도 새로 만들었다고. 그런데 그런 물량이 안나오는 개인의 저작물은 얼마나 살아남까. 아무리 엿같이 책이 안팔리는 시대라도 21세기의 연구서조차 5백부는 찍는다. 소설이나 대중서는 암만 안찍어도 2천부 내외다. 그렇다면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과거의 책은 어지간하면 한 부짜리다. 금속활자는 예산이 물량인 거대사업감이고, 목판은 몇 부 찍기엔 가성비가 안나온다. 방각본이 나오는 거도 원료생산지인 전주와 대량소비지인 한양이 만난 결과다. 나름 대량생산 대량소비라고.그게 안되는 책은 전부 손으로 쓰고, 재판을 찍더라도 손이다. 그와중에 오탈자가 날아다닌다.


손으로 써서 만든 책은 많이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불이라도 나거나 홍수라도 나거나(1960년대인가 사라호라는 태풍이 울진을 날린 이야기를 들으니 거 무섭더라. 눈 앞에서 사람이 사라지는데 종이쪼가리야..) 책을 빌려갔는데 구덩이에 빠지기라도 하면 책이 사라진다. 전쟁이 아니라도 그렇다. 개인의 문집은 다시 손복사하기 좀 나은데 거질의 역사서를 쓰면 그게 살아남아 후세인이 볼 확률은 얼마나 되나.


범염의 후한서 동이전을 읽을 때마다, 삼국지 짝퉁이라고, 특히 서문을 읽을 때마다 네놈 땜시 동이개념이 개판되었잖아..라고 욕을 해도(그런데 그만의 잘못은 아니다) 그전까지 몇 가지 나온 후한서가 사라진 건 범염 짓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럴 권력도 없던 사람이고, 그저 범염의 책이 선택을 받으니 자연 도태된 거고, 수도 많지 않아 그야말로 멸종한 거다. 멸종위기종이라는 개념 있잖아. 개체수는 어느 정도 되지만 자연 그대로의 접붙이기로는 더이상 수가 늘어날 희망이 없는 상태. 과거의 책이 그렇다. 


특히나 자국역사 알기를 개판으로 본 상황에 고기류들이 오래오래 살아남을 리도 없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조차 조선초에 억지로 안찍었다면 전질이 아니라 일부만 남아 전해지겠지. 아마 고구려와 백제 연구는 지금의 100분의 1도 못했을거다. 그나마 듕궉책은 일본에서라도 찾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의 역사서는 볼 기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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