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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 16. 13:46

오늘 아침에 고구려사 관련 두 건의 신문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광개토왕릉비의 신묘년조를 재해석한 기사, 그리고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 대한 기사입니다. 두 건 다 학술대회에 발표되었거나 예정인 내용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개토왕릉비 문제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젖먹이일적부터 다짐한 것이 광개토왕릉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관심을 끊자였습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수정과의 잣 정도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함부러 압에 담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뭐 공부하면 되지 않겠나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어린 마음에도 광개토왕릉비는 베트남의 정글과도 같습니다. 발을 들이밀면 다시는 못나갈 것 같은 예감. 다만 빨리 교통정리가 되어 맘편하게 과실만 쪽쪽 빨고 싶을 뿐입니다.(교통정리가 될리가 있냐!) 여튼 이번 비문의 신해석은 잠잠하던 논의를 다시 타오르게 할 정도로 매력있다 정도만.. 아 너무 길었네 

오늘의 관심은 멀리 우즈베키스탄의 한 궁전에서 발견된 벽화입니다. 본디 설명을 써야하나 신문기사 속 내용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신문기사..


이 벽화는 새로운 발견이 아닙니다. 일찍부터 알려져 이 그림의 주인공에 대한 여러 주장이 나왔습니다. 지난 세기까지는 이들이 고구려인이냐 통일 이후의 신라인이냐를 두고 논쟁했다면 금세기에 들어서는 고구려인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공통인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 벽화의 소유주였던 강국/강거국의 불후만은 650년대 활동하던 사람이라 고구려인일 확률이 더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즈베키스탄은 멉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기에 고구려인이 나타날 수 있느냐에 대해선 그닥 문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초원의 이동은 남쪽의 농경국가보다는 거리의 폭이 다릅니다. 또 한참 당의 압박이 끝을 향해 달려가던 사절이라 거리를 가릴 여유도 없었고, 실재로 645년의 당태종 침입 때도 연개소문은 고연수와 고혜진에게 병력 15만을 주어 먹게 하는 동시에 북방의 설연타의 후계문제에 끼어들어 그들을 당군 후방 차단에 활용한 전례도 있지요.(15만은 주필산에서 녹았고, 설연타의 차단은 성공적이었지만 빡친 당태종은 설연타를 지워버렸지요)

21세기 들어서 7세기 고구려의 외교를 보여주는 증거로 남나 했는데 이번에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흐름이 보입니다. 이것이 맞고 틀리고를 떠나 새롭게 음미하고 재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지요.

개인적으로는 외교론에 손을 들지만, 기사에 언급된 이야기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고구려는 멸망 이전은 물론하고 이후에도 당대 당나라 사람들에게 중요한 상징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실제 고구려 사람을 그린 것이 아니라 세계관의 중요한 상징으로 들어갔을 수 있다는 가설은 나름 타당성을 가집니다. 아마 그 시대 사람들이 라노베나 만화를 그렸다면 고구려는 매우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졌을 것입니다. 내 여동생이 이렇게 고구려스러울리 없어 라던가, 두번째 인생은 고구려에서, 전생했더니 평양성민이었던 건에 대하여..라던가..(야!)

반대의 입장이지만 새로운 관점의 제시는 늘 즐겨운 것입니다. 7세기 중반 고구려의 대외관계야 늘 중요시하던 부분이니까 굳이 바람을 불어넣지 않아도 늘 흥하지만 이 상징문제는 좀 더 더루어져야 할 문제입니다. 노태돈 선생님의 얇은 책 하나 뿐이라 더 나왔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 내년 상반기쯤 선보일 것에 저 부분이 들어가는데 그 전에 정리된 이야기가 나오면.. .(야!) 

이참에 광개토왕릉비의 신묘년조와 함께 학계의 관심을 팍팍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말꼬리 -------------------------

위의 그림은 고구려연구 14집(고구려의 국제관계, 2002)에 실린 정수일 선생님의 '고구려와 서역관계 시고'에 실린 벽화의 고구려인과 벽화 옆에 실린 명문의 번역입니다. 이것이 고구려설을 굳혀주는 요소가 되었지요. 

당시 이 발표에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그 사건' 이후 은거중이던 발표자에게 쏠렸고, 당시 두툼한 속기록을 붙이던 것과 달리 이 특집만 속기록이 없는 이유는,, 읍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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