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한국고대사이야기/사건과 진실 (39)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오늘도 노가다를 합니다.티스토리 에디터로 글을 직접 올리기도 하고,메모장이나 아래아 한글로 쓰고 옮기기도 하는데눼, 또 깨집니다.그래도 두어번 당하니 꾀가 솟아(나름 사피엔스 사피엔스한 모빌슈츠라능)오늘은 글 안날리고 올릴 수 있을 겁니다.정말 어제까진 화가 많이 났는데오늘이 되니 실실 웃기 시작했습니다.너무 과한 분노가 솟으니 이러다 몸상하겠다 싶어방어 프로그램이 작동하나봐여.덕분에 오늘은 주위 사람에게 몸이 싸늘해지면교과서 분석자료를 읽어보라고 권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아니면 같이 분노로 죽자????)좀 비아냥이 많습니다.사실 이것도 많이 억누르는 겁니다.정말 회의실 큰의자 던지고 책상을 발로 차 넘기던사춘기 시절 버릇 나올까봐 참는 것이고정말 이따위 쓴 인간이 대갈빡에 솜털나고 처음 듣는 욕을 ..
오늘 글도 자꾸 날아가는군요.걍 티스토리나 다음에서 짐순이를 감시하고 있다!!라는 망상을 하기엔19살도 나름 현실적이라그냥 제공된 한글화일의 코드문제겠거니하고 한번 함 해보자는 각오로 또 노가다를 합니다.미소녀의 열정을 이런데 소모케 하지 말라구!!!왕자 찾아다니기도 빡센데~!!!!!!!!!!!!!!!!!!!!!!!!!!!!!!!!!!!!!!!!!!!!!!!!!!!!!!!!!!!!!!!!!!!!!!!!!!!!!!!!!!!! 1 [GM] 이 부분을 읽으며 솔직히 짐순이가 고구려 초기사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는가를 의심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졸본이 너무 좁아 국내성으로 이전하고, 계속 이웃나라를 쳐서 평야지대를 노렸다는 기본 서술은 크게 문제가 없습니다. 더욱이 졸본보다 국내성이 더 좁다는 말은 좀 머리가 아파..
앞 글에서 욕을 했었지만고대사부분은 의도적인 정치적 서술이라기 보다는정말 함량미달의 역사지식으로 쓴 게 대부분입니다.그래서 이 부분을 서술할 때는 마지막 결론 부분을 쓰기 전에는과한 욕은 없을 겁니다.다만 이 단원을 쓰신 모 교사분의 역사 공부에 대한 기본 소양만 언급하지요.(사실 이게 더 극한 디스!!)오늘은 삼국 이전 선사시대부터 고조선, 부여까지만 다루겠습니요.미리 말을 해야겠지만 이 시대에 대한 짐순이의 이해도는 접시에 담긴 물도다 얕음을 밝힙니다.분석자들의 언급은 손표시, 짐순이의 언급은 GM이란 말머리를 답니다. 12쪽, 14쪽 [구석기시대 유적 분포 지도] [신석기 유적 분포 지도]☞ 최근 교과서의 추세는 선사시대의 공간 범위를 만주 일대, 특히 요동 지역 유적을 포함시킴. 교학사는 누락. ..
사실 최근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뭔가 판단하기엔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는지라이쪽의 이야기에 맞추어 몸과 정신이 움직이다 보면정 반대의 사실을 마주할 때도 종종 있지요.그리고 워낙 과거의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니만큼첨단의 시사도 좀 과거의 이야기가 된 후 보자는 직업병일런지도 모릅니다.(마치 잡은 먹이 물에서 썩혀서 먹는 악어의 식성이랄까)교과서 문제가 대두할 때도 조금은 멀리 있었습니다.교과서를 본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디스도 잘하는 짐순이지만의외로 교과서에는 약합니다.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이 있고 교과서가 가지는 특성도 있어서매의 눈으론 보지 않았습니다만(어느 정도는 신뢰한다는 겁니다)울진에 내려가 있던 요 며칠 동안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
신분의 벽 뛰어넘지 못하고 비극으로 끝난 印 청년의 사랑 수고스러우시겠지만 먼저 저 위의 신문기사를 보아주세요. 그리고 나서 이 질문을 던져봅니다.암행어사로 돌아온 이몽룡을 만난 춘향이는 백년해로 하고 잘 살았을까요?100분이라면 100분, 모두 한결같은 대답을 하실 껍니다.해피엔딩.가끔 사극에서도 신분을 넘나드는 사랑이야기가 나오고오늘도 소녀들은 백마 탄 왕자님을 꿈꿉니다.(그러지도 않는 짐순이는 마음이 사막과도 같아요.. 쩝)현재로 돌아오면 현 제1야당의 대표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계기도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야깁니다.이름만 대면 알만한 쁘띠회장님의 첫째 딸의 결혼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죠.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그와는 다릅니다.지금에야 계급사회에 살아가고 있지만그보다 더 갑갑한 신분제 사회의 틀에서는 ..
며칠 전에 창해군을 가지고 아주 길고도 재미 없는 글을 연달아 뽑아냈었지요.한사군의 프로토타입, 창해군은 왜 만들어졌나..거기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彭吳穿穢貊ㆍ朝鮮, 置滄海郡, 則燕齊之間靡然發動.팽오가 예백과 조선(의 길을) 뚫어 창해군을 설치하니, 즉 연과 제의 사람들이 크게 동요하였다..(밑줄 친 부분은 이성규 선생님의 사기 편역에 의존했습니다.)이게 무슨 뜻인지 분명치 않아서 다른 기록이 없나 찾아보니그보다 앞서 나온 사기 평준서에서는 彭吳賈滅朝鮮, 置滄海之郡, 則燕齊之間靡然發動팽오가 조선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창해군을 설치하니,연과 제나라 사이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다..라고 되어 있습니다.(앞에서는 이성규 선생님의 사기를 인용하여 보니 뜻이 맞춰지는데정작 평준서의 이 대목은 김원중 선생님 번..
주의 : 한 군현은 식민사학이 지어낸 현상이라거나고구마 백개 심자가 한반도에 없었다고 믿는 분은 얼른 브라우저를 꺼주세요.몸과 마음의 건강에 무척 해로운 아주 @같은 포스팅입니다.짐순이는 병원비 대드릴 돈이 없어요.또, 글을 쉽게 쓰겠다고 맘먹어놓고한자가 난무하는 글이 튀어나옵니다.한자와 초마이너 부분에 멀미가 있으신 분,그것은 정말 알기 싫은 분들도 알아서 피해가세요.(아! 이 짐순이는 얼마나 상냥한 아이인가~~!!!) 사실 고조선을 연구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사기 조선열전만을 쳐다보다보면그냥 한 무제의 지랄 맞은 성격이 빚어낸 일방적 고조선 때리기로 이해됩니다.네, 물론 앞으로의 요지와 상관없이 한 무제는 딱, 지랄 맞은 비글견이 베르단디로 보일 정도의 인간입니다.그의 치세에 4명의 승상 중 3명이..
아주 오래전에 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찾아보다가좀 생뚱맞은 대목을 발견했는데박망파에서 진시황을 향해 천근짜리 철추를 던진 창해역사가 강원도 강릉 출신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55555)그리고 다른 항목에서는 동부여의 수도 가섭원이 강릉이라는 설도 있지요.(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0234)최근에 동천왕글을 쓰는 관계로 한군현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중에갑자기 그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한 번 짚고 넘어가야할 것 같아서이렇게 적어봅니다. 한국의 지명 중 일부, 또는 각 지명의 별칭이 중국에서 온 것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연합뉴스 기사 문화재청 보도자료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서 농경지를 포함한 통일신라시대 생활유적이 확인되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신문기사와 보도자료를 읽어주세요. 특히 문화재청 보도자료에서는 유적에 대한 사진도 제공합니다. 이 유적 발견의 의의는 아마 통일신라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삼국사기 정도만 해도 아주 정보가 적은 것은 아니고 또 동시대 여러 나라들만봐도 중국이나 일본 정도를 제외하면 이 정도도 많은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세세한 생활정보를 담는다는 인식은 존재하지 않아 그에 대한 부분은 많은 부분이 공란으로 남아있어요. 정창원에 소장된 촌락문서도 한 단면만을 보여주지요. 그런 점에서 일개 변방 마을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번 발굴의 의의가 클 것..
사람들은 고조선이라는 단어를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관련된 것으로 봅니다.이씨가 세운 조선이 생기고 나서 예전에 있던 조선과 이름이 겹치니까과거의 왕조 이름을 옛조선, 즉 고조선으로 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이건 기본적인 전제가 틀렸습니다.오히려 1392년 세워진 왕조를 후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조선시대야 당연히 자기 나라를 조선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아조我朝라던거 금조今朝가 맞겠지요.요즘 사람들이 굳이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로 부르지않고 우리나라라고 부르듯)둘을 분리해서 이야기 해야한다면 이성계의 조선이 후조선이 됩니다.앞서 단군이 세운(그렇다고 넘어가지요) 조선은 전조선이라거나 조선이라고 불리는 겁니다.좀 이해가 안되실 분들을 위해 다시 풀자면 먼저 존재한 조선은 그 이름의..
생각해보니 지난 주에 두가지 새로운 소식이 나왔는데19세 청순가련 병약미소녀의 취향에 따라 한 가지만 주목하고다른 하나는 내일 써먹어야지 해놓고 까맣게 잊어버린 것을 이제야 생각해 내었습니다.(그 하나는 고구려 비석의 발견이지요)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략 아는 얘기고여기를 통해 저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신 분들도 슬슬 눈치 채신 것이 하나 있을 겁니다.얘는 삼국유사 얘기 정말 안하는구나...뭐, 다들 창덕궁을 좋아한다고들 말하는데 혼자서만 경복궁이 법궁이니까 좋다고 말하는 아입니다.역사서도 정사를 더 중요시하다 못해 거의 그것만 보는심각한 편식가입니다.그래도 이 사실만큼은 다루었어야 하는 것입니다.국보급 삼국유사 왕력편 조선초기 판본 공개 - 연합뉴스 1월 15일자 현재 완본으로 존재하는 삼국사기,..
고구려사를 처음 공부를 시작하면서 했던 맹세가 있는데절대 광개토왕릉비에 대한 것은 건드리지 않는다..였습니다.100년의 광개토왕릉비에 대한 연구사만 추려도 책 몇 권이 나올 것이고세세하게 따지는 거 잘 못하고 큰 그림만 그리기 좋아하는19세 여아에게는 그야말로 베트남 정글로 M16 한 자루 들고 들어가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딱 한 번 비문을 통독해보고 다시는 안들쳐 봅니다.그냥 누가 지나가다 언급하면 그런갑다... 이러는 정도.그래서 이 글을 쓰는 걸 좀 주저했습니다.자세한 기사는 아래 링크를 참조해 주세요. 제2의 광개토대왕비'에 무슨 내용 새겨져 있나(연합뉴스 1월 16일 기사)처음 공개한 중국의 국가문물보의 기사는 여기 링크를 참조해주세요.듕궉 국가문물보 기사(1월 6일자 기사)단 듕궉 간체라 그냥..
어제(26일)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문암리에서 중요한 현장설명회가 있었습니다.(현장설명회는 발굴조사 후 학계 관련자와 언론에 발굴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중요한 행사입니다)사적 제426호 고성 문암리 유적에서 발굴조사 중에 신석기 시대의 밭 유적이 나온 것입니다.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어제 방송, 오늘자 일간신문에 상세히 보도되었으므로 자/세/한/설/명/은/생/략/합니다.첨부화일로 문화재청 보도자료를 올리니 이걸로 읽으시길 바랍니다.물론 현장에서 기자들이 조사원의 설명을 듣겠지만어제 오늘, 언론기사의 기본은 이것입니다.오늘자 중앙일보 기사도 링크 겁니다.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8582149&cloc=joongang|..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131715&cp=du 한 10년전인가 고구려에 대한 세미나가 있어서 모 학회 행사에 간적이 있습니다.갔더니 학생급은 하나도 없이 전부 원로급들만 있어서 짬에 따라 맨 앞에서 모든 발표를 들어야 했죠.졸지도 못하고, 토론시간 되니 제일 만만하다고 녹음기주며 녹음하라 그러고(여담이지만 그 학회 행사는 단행본으로 항상 묵직하게 나오는데 그날 세미나 분량만 토론녹취가 생략되었습니다. 녹음기를 잘못 만졌나봐요...) 그날의 모든 발표중에 제일 인상적인 것이 부여의 위치에 대한 발표였습니다.고고학하곤 담을 쌓은 인간이 제일 인상적인 게 뭐였냐면고구려의 뿌리인 부여가 길림성에 있나, 흑룡강성에..
1980년대였나 일본의 학자들이 백두산의 분화가 발해멸망의 배경이라는 설을 발표했습니다.그에 대해 우리 학계에서는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그 당시의 과학상식으로야 황당무개한 이야기로 들렸을 것입니다.그 이후로도 발해의 멸망원인으로 거란의 대두와 위협,그리고 발해 내부의 정치적 내분을 드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이 글을 쓰는 저도 국가 멸망의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내부 분열이라고 보는 편입니다.실제로도 내부가 안정적인데 순수한 외부 충격으로 쇠망하는 국가의 예는 없습니다.압도적인 서양 무기에 굴복한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정치체로 반론할 수 있겠지만자세히 들여다보면 복잡한 내정 문제가 얽혀있습니다.하다못해 피사로의 2백명에게 8만 석기시대 병사가 패한 잉카제국도내분상태에 처해있었고, 많은 이들이 피..
학교에 가면 회사인간이라고 구박받고(저번엔 대체로 국가와 연관된 일을 하는 80년대 선배들 앞에서'나 홀로 사기업종사자로소이다..라고 개겨보기도 했습니다 -_-;;;)회사에선 아직도 학교 사람같다고 놀림을 받습니다.그래서 기획서를 쓰더라도 학교에선 너무 사회틱해,회사에선 뭐 연구프로젝트 기획서냐 합니다. 마침 율령제와 관련된 정치제도를 건드리고 있고지금 회사도 율령제 도입 전후의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수년째 일하고 있는 회사는 들어갈 즈음에도 아주 작진 않았지만어느 정도 부족국가(80년대 들어 맥이 끊긴 용어입니다. 알면 연식인증;;;) 분위기였습니다.자유도가 매우 높고 각각 알아서 움직일 수 있었달까,그러다 요즘은 사무실 인원이 늘어나고,임기응변이 가능하던 조직이 뭔가 체계란 게 생겨난달까처음부터 여기..
1. 7세기 후반 고구려사의 아이콘 연개소문 연개소문은 7세기 후반 고구려사를 연구하는 데 절대 빠질 수 없는 일이다. 관심을 쏟고 있는 6세기에 비해 사료도 많고(문헌기록과 묘지명..) 사건도 별별 것이 다 일어나고 있으나 그를 이야기 하지 않고 7세기 후반-멸망기를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근 100년 가량 활활 타올랐던 전시상태의 결말을 함께 한다는 점에서 아예 연개소문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있기나 하나 만약 그런 연구자가 있다면 용자거나 바보거나.. .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일부에서는 그를 매우 남자답고 애국심으로 똘똘 뭉친 영웅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학계에서는 좀 신중하게 접근하는 쪽이다. 그의 집권이 고구려 귀족사회의 원심분리적 이탈을 가속시켰다고 보기도 하고 신라를 친당외교로 ..
문제의 사리봉안기, 하얀 밑줄이 문제의 대목, 百濟王后佐平沙宅積德女, 백제 왕후는 좌평인 사택적덕의 딸이다. 출처 : 09년 1월 19일자 문화재청 보도자료 미륵사지 서탑에서 나온 사리기의 발견으로 좀 뒤숭숭하더니 급기야 이런 신문기사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http://newslink.media.daum.net/news/20090121162214723 http://media.daum.net/society/nation/jeolla/view.html?cateid=100009&newsid=20090121162214723&p=yonhap 사리기의 출토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나니 당황스럽기보다는 통설과 다른 논지들이 떠오르더군요. 많은 학자들이 무왕설에 지지를 보냈지만 뭔가 다른 생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http://media.daum.net/culture/view.html?cateid=1026&newsid=20100413070210444&p=yonhap 오늘 아침에 매우 흥미로운 뉴스가 히나 나왔습니다. 백제시대의 마약조달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제목의 뉴스죠. 매일 왕과 귀족들의 정쟁,(사실 이것도 당시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겠다는 방향의 논쟁입니다) 쉬지 않고 치고박는 전쟁 얘기나 들어야 하는 사람들에겐 솔깃한 얘기일 수 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1년을, 평생을 살아갔는지에 대한 자료는 희소한 상황이니 말이죠. 과연 백제에도 마약이 있었는가.. 마약이 결코 좋은 물건은 아니겠으나 그 시대에도 있었는가는 흥미로운 것입니다. 그럼 한식산/오석산이란 무엇인가, 왜 그것을 먹었는가에 대해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