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연의 오독, 그러나 고의는 아님
지금 보는 사료가 정확하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작성자의 악의적 의도에 의해 오염될 수도 있고, 또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어휘나 관념, 제도의 차이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자기 시대의 것을 기준으로 하여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이를테면 100여년 전에는 아가씨는 매우 귀한 신분의 여아에 대한 존칭이었으나 50년 전에는 결혼을 안한 묘령의 여성을 부르는 호칭이다가, 지금은 하대하는 느낌의 비칭으로 씁니다. 현재의 용례를 가지고 과거에도 아랫것이 상전의 여식을 함부로 불렀다고 오해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범하는 실수가 사료를 오염시키기도 합니다. 원 작성자는 주석으로 남겼는데(보통 필사본이던 활자본이던 작은 글씨로 두 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세주細注라고도 합니다) 필사를 한다거나 필사된 원고를 활자로 식자한다거나 또는 인용하는 과정에서 세주를 본문으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매우 드문 일이지만 소장자가 책의 내용에 오탈자를 수정을 가한다거나 감상을 남긴다거나 또는 다른 별도의 논설을 가하였는데 그 판본을 구해서 다시 재인쇄를 하는 와중에 그걸 넣는 경우도 있습니다.
듕궉의 경우 송원대를 거치며 많은 판본이 사라지고, 또 그걸 복구하여 재인쇄를 하는 도중에 많은 오류가 생겨서 도저히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지어는 남경국자감의 강의에서 잘못된 주역 판본으로 강의하는 것을 (좀 더 제대로 된 판본을 본) 학생이 바로잡는 일이 일러나기도 했지요. 흔히 청대의 학문탄압이 심하여 고증학으로 도망갈 수 밖에 없었다고들 이야기하는데(그런데 학문탄압은 명대에도 심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판본의 오염이 극도로 심하여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듕궉의 학문계는 수렁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는 사정이 더 강합니다.
늘 그렇듯 서문은 이리 길어지니 끊고서 본론으로 넘어가면 삼국유사에서는 삼국사기를 중심으로 여러 서적을 인용하는데 종종 잘못 인용하여 문제를 일으키는 부분이 종종 있습니다. 어떤 대목은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문제를 던져준 오독도 있습니다. 그 부분은 별도의 긴 글을 준비하는 중이라 오늘은 매우 간단한 부분만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기이편 후백제 견훤조의 한 대목입니다. 사진의 왼편은 삼국사기 주자본이고, 오른쪽은 삼국유사(규장각소장)입니다. 한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936년, 건국자가 적국으로 건너가 ‘내가 세운 나라를 끝장내주세요!’를 시전한 직후의 일인데, 왕건은 태자 무와 장군 박술희를 선발대로 파견합니다. 삼국사기 권50 견훤전에는 ‘先遣太子武 將軍述希’라고 적어놓았습니다. 그걸 인용하던 일연은 ‘先遣太子及武將軍述希’라고 하여 ‘먼저 태자 무와 장군 술희를 보냈다’는 문장을 ‘먼저 태자와 무장군 술희를 보냈다’라고 쉽게 말해 띄어쓰기를 잘못하고 거기에 문장부호를 덧붙이기까지 합니다.
이는 일연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의도도 없는 순수한 인용 실수입니다. 또 武將軍이라는 호칭이 존재하진 않습니다. 듕궉의 경우 건무장군이라던가, 진무장군이라는 호칭는 존재합니다만, 훨씬 후대의 승려인 일연이 문장을 읽다가 무장군이란 호칭도 있겠거니한 것이 진상이겠지요.
이게 오늘의 우리는 삼국사기도 있고 또 고려사도 있으니 고혀 2대 혜종의 이름이 무라는 것을 알지만 혹여 두 사서가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삼국유사의 이 부분만 남았다면 우리는 모두 박술희를 무장군이라고 부르고 왕건에게 성명미상의 태자가 있었다고 보고 연구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과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참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나 게시판의 인터넷 글을 ‘퍼가기’랄 적에 본문에 취소선이라거나 뭔가 구분하기 위해 글자 색을 다르게 한다던가 하는 것을 ‘Ctrl+C’, ‘Ctrl+V’했을 때 서로의 웹프로그래밍 언어가 달라 취소선이 사라진다거나 색이 다른 문장이 동일한 검은색 글씨로 바뀌어 엉뚱하게 퍼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지금도 읽고 있는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에서도 이규보가 구삼국사의 동명왕편을 인용하면서 본문의 세주가 구분되지 않고 본문처럼 인용된 것을 봅니다. 이는 이규보의 실수인지, 혹은 후일 동국이상국집을 편집한 이들의 실수인지는 좀 더 뒤져봐야할 것 같습니다.(아직 원문을 본 단계는 아니라 표시만 해두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찾아서 규명하는 것도 역사서를 다루는 사람들이 하는 일 중 일부입니다. 전문용어로 교감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누군가 하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가 가방에 들어가는 문장을 보고 공부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말꼬리 -------------------
1. 일연의 오독 중 가장 심각한 것을 걸고 넘어지는 글을 쓰자면 온동네 싸움닭이 될 판인데, 그건 많이 귀찮은 일입니다...라고 하면서 원기옥을 모으고 있긴 하지만.
2. 삼국유사의 武자가 이상한데, 고려시대 글이니까 왕의 이름을 제대로 쓰지 않습니다. 조선 초중기 판각본은 이걸 존중합니다. 뜻이 비슷한 虎를 쓰거나 武의 획을 하나 뺴서 올린다거나하죠. 옆의 주자본은 조선 후기니 그딴 거 없다는 생각으로 武자를 그대로 씁니다. 비슷한 게 지금 부카니스탄에서도 술탄의 이름은 조심스럽게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