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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이따금 경주의 복원 CG라며 돌아다니는 그림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황룡사를 검색하면 빠짐 없이 나오는 것이었는데 그 출처를 얼마전에야 알았습니다. 2016년에 경주시에서 제작해 공개한 영상의 그림이었습니다. 어느 커뮤 게시판에 올라왔던 걸 추적하다 보니(거기도 출처는 없었거든요) 발견한 것인데 거기에 실린 댓글들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대개는 이렇게 거대할 리 없다. 조선시대 한양도 이거보다 작고, 거긴 초가집도 많았는데 이 화면에선 전부 기와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과정이 너무 심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사실 그 반응이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실제 한양도 그리 대도시가 아닌데 천년 전의 도시가 더 크고 반짝반짝 할리 없다 생각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방식입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남겼다는 "고려도경..
오늘 춘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몽돌님 글을 읽다가 복원 이야기가 나와 잠시 페북에서 댓글을 주고 받았지요. 워낙 이쪽 업계가 복원이란 단어에 데인 것이 많아, 덩달아 짐순이도 좀 까칠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암튼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졸립고 더워서 출력이 안납니다. 한랭지 사양의 모빌슈츠는 여름에 괴로운 겁니다. 걍 08소대 찍는 기분. 여태껏 중국에 가본 건 딱 두 번입니다. 처음으로 물 밖 나가본게 2009년 듕궉의 만주지방(얼마전부터 동북지방이란 용어 안씁니다). 두번째가 2010년 서안-북경인데 여기 처음 방문지부터 좀 깼습니다. 이름이 다르지만(약간 위치도 다르다지만) 크게 봐서 주나라의 호경, 진나라의 함양, 한당의 장안이 같은 지역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진의 아방궁 복원지라는 곳을..
경주에서 노서동인가 노동동인가 고분들이 모여있는 동네가 있습니다.황남대총이나 천마총이 있는 곳은 공원화가 일찍부터 이루어져나름 고분 내부의 전시도 하는데그 길 건너편에는 그냥 개방된 곳이라관광버스를 타고 오는 관광객들은 그냥 지나치는 곳이 있지요.거기엔 초창기 고대사 서술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뭐, 이것밖에 없었거든요. 그 시대에는..)금관총이나 서봉총 등의 고분들이 있습니다.해방 이후에 건드린 천마총이나 황남대총의 경우발굴조사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지만일제시대에 발견된 이 고분들은 삭토가 되었지요.일제의 문화재 파괴라기 보다는발굴을 했는데 그 이후를 어떻게 복구해야할까에 대해계산이 전혀 서지 않던 초창기 고고학 자체의 한계였습니다. 1960~7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고대사, 고고학 개설에..
2년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이근직 선생님의 책 두 권이 새로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은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천년의 왕도 천년의 기억: 신라 왕경의 변천과정 (이근직, 학연문화사, 2013) Ⅰ. 머리말 Ⅱ. 신라문화의 성립 1. 자연지리적 조건 2. 왕성의 축조와 이동 3. 시조묘와 신궁 4. 고분군 5. 율령국가의 성립과 불교의 전래 6. 통일신라 7. 하대의 사원창건 8. 남산의 불적 Ⅲ. 도시의 변화와 쇠락 - 고려시대 1. 경주읍성의 축조와 중심지의 이동 2. 북천의 범람과 남고루의 축조 3. 왕경 및 사찰의 몰락 Ⅳ. 불교문화재의 수난 - 조선시대 1. 불교유적 - 불상과 불탑 2. 비와 귀부 3. 목조건축 4. 서원과 유허비(금석학) 5. 왕릉 6. 서원 Ⅴ. 맺음말 다른 ..
황룡사지에서 분황사의 반대편으로 좀 더 올라가면 논 한가운데홀로 서있는 석탑 하나가 보입니다.(불국사, 석굴암에서 버스 타고 올 때 무슨 여고 나오기 전 왼쪽으로 스쳐가며 볼 수도 있어요)삼국유사에 최치원의 옛집이 있었다는 말로 잠깐 언급되는 절터입니다.올 2월에 경주에 갔을 적에 마지막 코스로 분황사-황룡사지를 거쳐 들린 곳입니다.탑반 보면 파블호프의 개처럼 헐떡대는 짐순이는돌아갈 기차시간 따윈 개나주라지..라며 탑을 보러 갔습니다.그러곤 필카로 치면 36방 필름 두어통 분량을 비워댑니다.정말 합법적으로 로우 앵글을 찍을 수 있어요.(이 뵨태뇬이!!!)겨울이라 바닥이 단단하지 다른 계절에는 추천하진 않아요.그저 거기 탑이 있을 뿐입니다.누가 기억해주던, 주지 않던바로 옆 탑도 없는 절터엔 수도 없이 관..
http://gyeongju.museum.go.kr/html/kr/exhibitions/exhibitions_020201.html?idx=130&mod=view&GotoPage=1 일시 : 2012-04-17 ~ 2012-06-17장소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경주박물관과 섬서박물관 교류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시가 열립니다.서안에 가면 반드시 가봐야할 곳 중 하나가 섬서역사박물관이라는데서주시대부터 오랜 기간 중국의 중심이었던 서안을 대표하는 유물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합니다.,(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서안 갔을 때 여기를 못봤기 때문입니다.아주 엉망으로 만든 아방궁 유적 본다꼬, 아방궁 본다꼬~~~) 159점의 유물이 전시되는데당대 유물에 초점이 맞추어져있습니다.당시대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
2박 3일의 일정으로 경주에 왔습니다. 일정은 크게 정해진 건 없고, 개인적으로 안압지와 경주박물관만은 보고야 만다..만 확정입니다. 원래 여행이란 건 시간단위 일정을 짜는 것조차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정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스타일입니다. 우선 오늘은 오릉, 나정, 포석정, 감은사와 감포를 오갔습니다. 전철 하나를 놓친 끝에 서울역에서 열차를 1분차이로 놓치고 다음 차로 점심 때쯤 신경주역에 도착했습니다.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고 나가서 버스를 기다리다 택시를 타고 찾아간 오릉. 이건 동행인의 강력한 요청탓인데 사실, 신라의 상고기에 대해서는 관심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답사때도 여길 온 게 10년 전 한 번뿐이지 싶군요. 오릉은 신라의 시조 혁거세 거서간(박혁거세)의..
과연 김부식이 신라왕족의식을 갖고 삼국사기를 일부러 신라 편향적으로 썼느냐에 대해선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학계에서도 종종 그런 시각을 확인하게 되어 놀랍긴 한데 (그만큼 김부식이나 고려사회의 지적 풍토라던가 특히 귀족사회의 특질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단 겁니다) 슬슬 여기에 대해 이곳에서든 논문으로든 뭘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인데 마침 올해부터 사용되는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보다가 재미있는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위의 글처럼 김부식은 대대로 귀족의 자리에 오른 신라왕족 출신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출세한 것도, 신라왕족 출신이라는 점도 절대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과연 신라왕족 출신이기 떄문에 아주 잘먹고 잘 살았던 귀족통뼈였을까요? 김부식의 가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