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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누군가 현기증이 난다며 다음 글을 재촉하는 댓글을 달 적에 짐순이는 늦은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졸음에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며 말이죠.(재촉하는 자에겐 양심의 가책을!!! 낄낄낄) 할 것은 많은데 정말 하기 싫은.. 그런 봄날 밤, 갑자기 떨어진 온도에 살짝 덜덜 떨며 '아직 잠들지 않았으므로 아직 오늘이야'라는 어느 락커의 라디오 멘트를 되뇌이며 글을 써볼까나여? 귀찮아서 번역은 한중연본 삼국사기의 것을 따다씁니다. 졸립고 귀차나여. 뿌우~~~. 원문高句麗人位 神文王六年 以高句麗人授京官 量本國官品授之 一吉飡本主簿 沙飡本大相 級飡本位頭大兄ㆍ從大相 奈麻本小相ㆍ狄相 大舍本小兄 舍知本諸兄 吉次本先人 烏知本自位 번역고구려인의 관등[高句麗人位] 신문왕 6년(686)에 고구려인에게 경관(京官)을 주었는데, 본국에서..
관등이라는 건 쉽게 말해 9급 공무원이냐 장차관급이냐, 총리급이냐 하는 식으로 해당 공무원의 지위를 나타냅니다. 지금도 공무원의 등급은 그 권한의 차이를 보여주죠.(물론 봉급도 차이납니다) 지금도 공무원의 위계는 중요하지만 고대에는 더욱 중요합니다. 바로 그 시대가 신분제 사회기 때문입니다. 돌쇠라는 사람을 가정해보죠. 거기에 그가 6급 공무원이라고 해둡시다. 그가 평민이나 천민같으면 절대 오를 수 없는 위치입니다. 단순히 공무원 위계로 치면 1~5급보단 낮고 7~9급보단 높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하나가 더 붙죠. 만약 그가 신라 식으로 진골이라면 그냥 처음 임용된 직후에 받는 급수라고 해두죠. 아마 그는 꽤 젊은 나이일 겁니다. 만약 그가 6두품 정도의 신분이라면 평생 경력의 중간입니다. 앞으로 ..
공주랑 결혼한 온달을 어떻게 볼거냐를 가지고 약간이기는 하지만여러 의견들이 있었습니다.하급귀족일 것이라는 설부터, 신진세력의 성장을 보여준다는 설 등이 있지요.온달이 6세기 후반 고구려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는 생각은 각기 의견이 다른 분들 사이에서도 공통점입니다.(사실, 6세기에 이 정도의 소스가 나오는 고구려인 자체가 없습니다;;) 공주와 결혼하기 전이야 꽤나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는 것은 사실 같은데정작 그가 어떤 신분인지는 명확한 게 없습니다.그래서 그가 왕에게 인정을 받은 후에 나오는 관등이 대형에 주목해봅니다. 가장 마지막의 모습을 담고 있는 신당서 고려전이나 한원 고려조에 따르면대형관등은 7등입니다.한원기록을 따르면 14관등 중 7등이니 딱 중간입니다.(이건 당의 침공 직전 고구려를 방문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