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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돌아가자! 전원이 장차 황폐해지려 하거늘 어찌 돌아가 않으리요?이제껏 내 마음 몸뚱이에 부림 받아 왔거늘, 어찌 낙담하여 홀로 슬퍼하는가?지난 일은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달았고, 다가 올 일은 올바로 할 수 있음을 알았으니,실로 길 잘못 들어 더 멀어지기 전에 지금이 옳고 어제가 글렀음을 깨달았네.배는 흔들흔들 가벼이 출렁이고, 바람은 표표히 옷자락을 날리네길가는 사람에게 갈 길 물으며 새벽 빛 흐림을 한하네.이내, 멀리 내 집을 바라보고는 기쁨에 달려가니,하인들이 반겨 맞아주고, 어린 자식들 문앞에서 기다리네.뜨락은 잡풀로 우거졌으나, 소나무와 국화는 여전하네.아이들 데리고 방에 들어가니 술통엔 술이 가득하네.술병과 술잔 가져다가 자작하면서 뜨락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기쁜 얼굴 짓고남창에 기대어 거리낌 없..
그저께 올린 글에 달린 어설프군 YB님 댓글에 대한 답변같은 글을 올려봅니다.원래는 어제 올라왔어야 할 글인데예전에 투탄가멘과 혜공왕을 비교한 글이 있어서 약간 중복이라 좀 주저하다 올려봅니다.이 소스는 한국사 강의를 위해 만든 교재의 일부분입니다.(결국 자기복제~!!!!!)단문형식의 원 글을 약간 부드럽게 고치고 몇 부분은 추가했습니다.하나의 제도가, 생각이 자리잡는데 걸리는 시간이랄까요.그러한 것들이 정착되는데는 의외로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경우는 대개 매우 위급한 상황이라 똥과 된장을 가릴 여유가 없을 때입니다.삼국통일전쟁기에 참으로 많은 사회적 변화가 생겨나는데 매우 급박한 상황이라 별 반대 없이 받아들여진 적이 많습니다. 1. 경덕왕의 왕권강화경덕왕은 왕권강화를 위해 귀족..
원문論曰 取妻不取同姓 以厚別也 是故 魯公之取於吳 晋侯之有四姬 陳司敗 鄭子産深譏之 若新羅 則不止取同姓而已 兄弟子 姑姨從姊妹 皆聘爲妻 雖外國各異俗 責之以中國之禮 則大悖矣 若匈奴之烝母報子 則又甚於此矣 번역논하여 가로되, 처를 취함에 있어 동성은 취하지 않음은 구별이 두터운 것이다. 이에 고로 노나라 공이 오에서 (아내를) 취하고, 진후가 4명의 희(씨성)를 취한 것은 진의 사패와 정의 자산이 그것을 깊이 비판한 것이다. 신라의 경우에는 동성(의 아내)를 취함에 그치지 않고 조카와 고종, 이종자매까지도 모두 찾아가 아내로 삼았다. 비록 외국의 풍속이 각각 다르다 하다고 중국의 예로써 이를 책하는 것은 매우 어긋난 것이다. 흉노의 경우에 어미와 사통하고 자식과 사통하는데 이보다 심한 것은 다시 없다. 아주 오래간..
과연 김부식이 신라왕족의식을 갖고 삼국사기를 일부러 신라 편향적으로 썼느냐에 대해선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학계에서도 종종 그런 시각을 확인하게 되어 놀랍긴 한데 (그만큼 김부식이나 고려사회의 지적 풍토라던가 특히 귀족사회의 특질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단 겁니다) 슬슬 여기에 대해 이곳에서든 논문으로든 뭘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인데 마침 올해부터 사용되는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보다가 재미있는 대목을 발견했습니다. 위의 글처럼 김부식은 대대로 귀족의 자리에 오른 신라왕족 출신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출세한 것도, 신라왕족 출신이라는 점도 절대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과연 신라왕족 출신이기 떄문에 아주 잘먹고 잘 살았던 귀족통뼈였을까요? 김부식의 가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