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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이 글은 어설프군 YB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 글입니다. 우선 전제할 것은 당시의 인구밀도와 개활지와 원시림의 비중입니다.간혹 고구려의 인구가 1천만이 넘는다는 분들도 계시지만(만약 오프라인에서 그런 말을 들었다면“鳥島, 분유값도 없는 色姬, 무작정 싸지르면 되냐”는 말과 함께 조인트 날라갑니다)당시의 농업생산력은 고려치 않고 땅넓이랑 요즘 인구분포보고 하는 헛소리는만류원류고란 책에 실린 말, 폭군 걸왕의 개가 짖는 소립니다.하다못해 100년전에 1800만동포 2000만 동포라며 만세운동 했어요.지금요? 남한 인구만 5000만입니다.하물며 삼국시대에는 그 수확량이 높다는 쌀도 논이 아닌 밭농사로 지어먹던 시절인데요.무조건 만리장성만 쌓으면 된답디까?태어나자마자 다 굶어죽는거지.그래서 인구는 셀려고만 했다면..
원문六年 春二月 王親定國內州郡縣 置悉直州 以異斯夫爲軍主 軍主之名 始於此 해석6년 봄 2월 왕은 친히 국내의 주군현을 정하였다. 실직주를 설치하고 이사부로 하여금 군주로 삼았다. 군주라는 명칭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매번 하는 소린데 이 문장 한 줄로도 은하영웅전설의 외전 한 권 분량이 나옵니다.(그만큼 대단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가 아니라 외전 한권 분량의 내용이 나온다는 겁니다. 오해 없으시길) 신라의 국가제도의 한 획기가 되기도 하려니와 한국고대의 제도사연구에서 이 제도가 갖는 것의 의미가 크거든요. 고구려나 백제는 너무도 단촐하여 이게 어느 시점의 것인가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가에 대해서 그리 나오지 않습니다. 고구려로 가면 아예 관부가 있었는지 조차도 알 수 없을 정돕니다. 신라 지증왕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