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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슬슬 끝내야할 때가 왔군요. 진작에 나왔어야 할 이 글이 늦게 나온 이유는 아마 끝맺는 걸 귀찮아 하는 성격 탓도 있지만 어떻게 폼나게 끝내볼까 궁리하다 보니 늦어진 것이겠지요. 하지만 언제까지 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인상 쓸 수도 없는 법. 이제 결말을 향해 달려가 봅시다. [원문] 謁保臯 飮之極歡 飮未卒 聞王弑國亂無主 保臯分兵五千人與年 持年手泣曰 “非子不能平禍難” 年入國 誅叛者立王 王召保臯爲相 以年代守淸海 此與新羅傳記頗異 以杜牧立傳 故兩存之 [번역문] (정년이) 보고를 만나니 마시는 것이 지극히 환대하는 걱이었다. 그 자리가 끝나기 전에 왕이 시해당하는 국난이 일어나 주인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보고가 병사를 나누어 5청명을 정년에게 주고, 그의 손을 잡고 눈물 흘리며 말하기를 "그 대가 아니면 이 난..
그러면 정년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장보고와 때로는 경쟁하듯, 때로는 사선을 같이 넘은 정년은 어디에 서있었던 것일까요? 바다를 주무르던 장보고의 곁에 정년이 서있지 못할까요? 무언가 사연이란 것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원문 保臯旣貴 年去職饑寒 在泗之漣水縣 一日言於戍將馮元規曰 “我欲東歸 乞食於張保臯” 元規曰 “若與保臯所負如何 奈何去取死其手” 年曰 “饑寒死 不如兵死快 況死故鄕耶” 遂去. - 번역문 (장)보고가 귀해진 동안에 (정)년은 관직에서 물러나 춥고 굶주린 상태였다. 사주 연수현에 머물던 어느 날, 수장인 풍원규에게 일러 말하기를 ‘나는 동으로 돌아가 장보고에게 의탁할 생각입니다’라고 하니 원규가 말하기를 ‘보고와 더불어 같이 하지 못한다면(같이 살 수 없다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