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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부도 - 관료, 국가시스템의 시작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신라이야기

부도 - 관료, 국가시스템의 시작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0. 9. 22. 13:41

정말 오래간만에 삼국사기를 다시 읽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온달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장보고가 앞으로 튀어 나왔고, 
또 살다보니 다시 잡는데 좀 시간이 걸렸습니다.

뭐, 인기블로그 되겠다고 시작한 게 아니니만큼, 
이따금 찾아와주시는들도 
그냥 이 블로그는 한 달에 한 편 이상 올리는 곳이라 생각해주시길..

- 원문
五年 春正月 .. 漢祇部人夫道者 家貧無諂 工書算 著名於時 王徵之爲阿湌 委以物藏庫事務

- 번역문
5년 봄 정월에 .. 한기부 사람 부도가 집은 비록 가난하나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글과 셈을 잘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왕은 그를 불러 아찬으로 삼고 창고의 일을 맡겼다.

그냥 사료를 읽으면 왕이 착하고 능력있는 자를 얻어 창고일을 시켰다.. 정도로 
지나칠만한 기사입니다. 이게 뭐 대단한 기사겠어..라는 반응을 보이실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사료라는 것이 개가 사람을 문 것보다는 사람이 개를 물거나, 평소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빈번히 일어난다던가, 그 때는 큰 의미가 없었겠지만 나중에 지나고나면 꽤 큰 일이었다는 것만 올라가지요. 그냥 이웃집 철수가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았다, 앞집 영이가 학원에 갔다는 정도로는 실리거나, 혹은 실려도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어느시대도 그랬다고들 하지만 삼국시대의 왕들은 초월적인 권력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신화를 앞세워 우월한 혈통을 과시하거나 전쟁에서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후기로 가며 왕권이 강화되긴 하지만 초기로 올라갈 수록 삼국시대의 왕은 절대왕정 이전 프랑스의 왕같다고나 할까요. 각 지방에 웅거하던 세력들을 완전히 제어하지 못하고, 국가의 중추 내에도 여러 세력이 존재해 왕의 권력을 제한합니다. 

왕은 여러 지역이 합쳐진 왕국의 조합장이랄까요. 지분은 가장 센데 모두를 위압하지 못하고, 그저 그보다 힘이 센 자가 없다는 정도? 그런 상황에서 왕권은 제한적입니다. 동맹과 영고와 같은 제천행사를 통해 왕의 대표성을 인정하며 단합의 희맹을 갖고, 공통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행사를 매년 치뤄야했지요. 여기서 맘에 들지 않으면 지역 통째로 이탈하고, 더 나아가서는 고구려처럼 소노부에서 비류부로 바뀌듯 왕실이 교체되기도 합니다. 

물론 현실정치에서는 10:0이나 0:10 같은 극단적인 비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케잌을 가장 효과적으로 나누는 기술이란 별명답게 5:5거나 6:4, 좀 심해야 7:3이랄까요. 왕은 10을 가지지 못하는 대신 종주권을 인정받고 여타 세력은 10의 지배를 받지 않는 대신에 최소한의 권력을 보장받지요. 어떤 분은 이것을 분권국가라고 보았는데 정말 사전적 의미의 절대왕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시 부도라는 사람으로 돌아가면 이 사람과 창고일, 그리고 분권국가적인 상황이 무슨 관계냐인데.
앞서 말한 왕의 권한이 낮아도 결국 왕은 왕입니다.
압도하지 않아도 가장 빼어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죠.
그냥 보기엔 100미터 경주에서 고작 5미터 앞선 상황같아 보입니다만
그게 수십번, 수백번, 수천번 계속 누적되다 보면 5미터분의 운동량 절약도 큰 차이를 만들죠.
안그래도 가장 우월합니다. 왕의 힘은,
권력을 향한 장기 레이스에서 서서히 격차가 드러나게 되지요.
전쟁에 이겨도 처음엔 작전지휘권만 갖고 전리품을 배분하는데 그치지만
점차 전반적인 지휘권까지 획득하고 전쟁에 참여할 기회조차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원래 왕을 비롯한 제 세력은 자기만의 관리조직을 갖춥니다.
그러던 것이 점차 왕이 각 세력 휘하의 인재들 명단을 확보하고
중앙으로 끌어올려 자기의 세력에 포함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왕의 관리와 여러 세력의 관리의 차별이 생깁니다.
같은 등급이라도 왕에게 속한 자의 끝발이 더 좋은 거지요.
(이를테면 각 경찰서의 과정은 무궁화 셋의 경정입니다. 
그런데 지방청의 과장은 경찰서에서는 서장인 무궁화 넷의 총경입니다.
같은 과장이라도 계급이 다르고 권한도 차이나죠)
이 와중에 동등하게 분리되던 전리품도 왕의 명령에 좌우됩니다.
마치 먼 훗날 태양이 더 거대해지면 수성이나 금성, 지구와 같은 내행성들이 빨려 들어가듯
왕국을 구성하던 여러 세력들도 왕경에 모여사는 귀족으로 바뀌지요.

그런 의미에서 부도의 임용은 먼 훗날 큰 변화를 가져올 나비의 펄럭임 입니다.
한기부는 왕의 직속이 아니었는데도 왕에게 불려지고
왕의 창고를 관장하는 중요한 관리가 됩니다.
이 창고지기는 그냥 수위아저씨가 아닌 경제부서의 총 책임자와 같은 의미지요.
왕의 재산을 관리하고 전리품을 분배하는 일이 곧 경제의 큰 부분이었던 시절이니까요.
부도야 나중일이야 몰랐겠지만 그의 일은 조부와 창부로 나뉘고 
그의 정치적 중요도는 집사부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단 한 줄의 기록이지만 
신라를 비롯한 고대국가의 발전사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그의 기록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에 말이죠.
아직도 신라왕국이라 집사부에서 집사부 1500년사같은 책을 쓴다면
맨 첫 장에 부도가 나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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