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삼국사기학 개론 (32)
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지금 보는 사료가 정확하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합니다. 작성자의 악의적 의도에 의해 오염될 수도 있고, 또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어휘나 관념, 제도의 차이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자기 시대의 것을 기준으로 하여 착오를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이를테면 100여년 전에는 아가씨는 매우 귀한 신분의 여아에 대한 존칭이었으나 50년 전에는 결혼을 안한 묘령의 여성을 부르는 호칭이다가, 지금은 하대하는 느낌의 비칭으로 씁니다. 현재의 용례를 가지고 과거에도 아랫것이 상전의 여식을 함부로 불렀다고 오해를 할 수 있지요) 그러나 무의식적으로 범하는 실수가 사료를 오염시키기도 합니다. 원 작성자는 주석으로 남겼는데(보통 필사본이던 활자본이던 작은 글씨로 두 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세주細注라고도 합니다) 필사를 한다거나 필..

삼국사기 자체를 궁구하는 이는 매우 적은 게 현실이다만, 그 소수조차도 간과하는 게 있다. 지금 삼국사기가 완질로 남아있음이 매우 신기한 상황이란 거다. 그니까 20년대를 기준으로 조선 초, 경상도에서 판각한 3차 판각본의 일부만 남아있는 게 정상이다. 북송 이전 중국정사의 사례들처럼 여러 종의 사서가 최종 본 하나 나오면 다 사라지는 게 보통이다. 후한서도 20여종 가까이 남았지만 현재 범엽의 기전체, 원굉의 편년체 후한기 둘만 남아있다. 진서도 두자리수 넘게 있었지만 당태종 시절에 나온 것 하나만 남았다. 위서도 현존하는 건 위수와 위담(위수의 조카인데 당초에 개정판을 냈다)의 것을 스/깠/다. 구오대사인가 하나는 나중에 여러 책을 뒤져서 인용된 것을 추려 복원한 거다.누가 태운 것도 아니다. 안팔리..

삼국사기는 완성 직후부터 여러 차례 인쇄되었습니다. 과거의 책이라는 게, 요즘처럼 한방에 수백 부, 수천 부를 찍어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귀하게 보관되다가 없으면 또 찍거나, 그냥 필사해서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몇 번 말했지만 과거의 책은 특정 전쟁으로 불타는 것보다 일상적인 화재, 수해, 관리소홀 등으로 없어지는 게 훨씬 더 많습니다. 그저 전쟁 한 번에 타오르는 장면이 워낙 압도적이라 그렇게 뇌리에 남을 뿐이죠.삼국사기는 현재까지 알려진 것이 네 번 목판본으로 찍고, 한 번 금속활자본으로 찍었습니다. 딱 이렇게만 찍었다가 아니라 현재 남아있는 삼국사기 판본을 검토해 보니 이렇습니다. 현재 통용되는 각 판본의 연대는 아래와 같습니다.구분판본연대목판1차1146(인종 사후)~1174(명종 4년) 사이2차(..

아까 정구복 으르신 책을 읽다가 뭔가 찾아봐야해서 "시민의 한국사"를 폈다. 그런데 후고려(이 왕조의 패악질은 4~5세기 이후 고구마가 국호를 고려로 글자를 줄였음을 감추고, 그 이름을 오롯이 자기 이름으로 한 것에 있다. 그래서 돌라 안둏아해)의 문화 부분에서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부식옵하도 아직 먹도 안마른 따끈따근한 "자치통감"을 구해다 썼고, 일본 궁내성 도서관에 숙종(그래도 후대 왕조의 세조와 달리 조카를 담그진 않았다!)의 장서인이 찍힌 "통전"이 있긴하다. 소동파가 책수출금지같은 소릴 지끼긴 했는데 실제론 고려에서 사라진 책을 구하는 중이었다.(사실 소동파가 혐한한 건 "글안"을 물리치고 이 후고려 사신놈들이 대패한 송나라 놈들 약올려서란 얘기도 있다) 한서, 진서, 당서(아마 구..
고려시대의 문서관리 자료를 보다보니, 고대의 문서관리가 몇몇 선생님들 생각처럼 마구 소급해서 ~~이럴 것이다~~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고려 중기에도 중국과 통하는 공문서를 쓰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고, 공민왕 때도 홍건적이 쳐들어오니까 자료들을 땅에 묻어 보관했는데, 물러나고 다시 찾으려니 귀찮다고 폐기해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그나마 한 명이 난리쳐서 수습 안했으면 상당수의 자료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라 하니, 그 전에는 그 기록에 대한 관념이 얼마나 투철했겠냐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유지기가 "사통"을 쓰던 시절, 빡쳐버린 현실이 한반도에서는 고려 중후기에 나타난달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국가가 처음 사관이라는 관청을 두어, 에전처럼 외주 주지 않고 직접 전생산공정을 관리하기 시작하며 여러 가지 불협..
동접반 통봉대부 상서예부시랑 상호군 사자금어대 김부식[同接伴 通奉大夫 尙書禮部侍郞 上護軍 賜紫金魚袋 金富軾]김씨는 대대로 고려의 문벌가문[大族]으로 전대의 역사[前史]에 이미 실려 있었다. 박씨朴氏와 더불어 가문의 명망[族望]이 서로 대등하였다. 그러므로 그 자손들 가운데 글을 잘 하고 학문에 정진[文學] 함으로써 등용된 사람이 많다. 김부식은 얼굴이 크고 장대한 체구에 얼굴은 검고 눈이 튀어 나왔다. 그런데 두루 통달하고 기억력도 탁월하여 글을 잘 짓고 역사를 잘 알아 학사學士들에게 신망을 얻는 데에는 그보다 앞선 사람이 없었다. 그의 아우 김부철[富轍] 또한 시詩를 잘한다는 명성이 있다. 일찍이 그들 형제의 이름지은 뜻을 넌지시 물어 보았는데, 대개 〈소식蘇軾과 소철蘇轍을〉 사모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페친 분의 글을 보다 한백겸韓百謙의 구암유고久庵遺槁이 학위논문으로 역주되었다는 것을 알고 냉큼 받아서 보았습니다. 한백겸의 책은 구암유고나 동국지리지가 영인된 것이 전부라 글이 짧은 여아는 글을 읽기 어려웠거든요.사실 이쪽 전공이라면 동국지리지도 중요했지만 평양성의 도시구획과 기자의 정전제의 관련도 중요해서 구암유고도 꼭 봐야하는 것이었습니다,그런데 말입니다. 첫장부터 이상한 대목을 발견하고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역주자 해설에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정전제를 최초로 언급했다는 대목입니다.이 17번 각주에 인용된 원문은 삼국사기 어느 부분에 있는지 적혀있자 않았습니다. 그렇게 사대주의자라고 욕을 처묵다 못해 목까지 차올라 뚱뚱 불은 부식옵하라면 안적었을 리 없는데 삼국 이전 고조선과 관련된 ..
강경구, "삼국사기 원전연구", 학연문화사, 1997.강종훈, "삼국사기 사료비판론", 여유당, 2011.______, "한국고대사사료비판론", 교육과학사, 2017.김철준, "한국사학사연구", 서울대출판부, 1990.길진숙, "삼국사기, 역사를 배반하는 역사", 북드라망, 2017.문성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역사인식과 역사의식", 소명출판, 2015.신형식, "삼국사기연구", 일조각, 1981.______, "삼국사기의 종합적 연구", 경인문화사, 2011.이강래, "삼국사기 전거론", 민족사, 1997.______, "삼국사기 형성론", 신서원, 2007.______, "삼국사기 인식론", 일지사, 2011.______, "삼국사기 읽기", 세창미디어, 2017.이기백, "한국사학의 방향..

1. 삼국사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국의 역사서. 고대사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연대기인 본기 28권(신라 : 12, 고구려 : 10, 백제 : 6), 연표 3권, 제사, 의복과 주거, 중앙과 지방 행정제도를 설명한 지 9권, 삼국초부터 후삼국까지의 인물의 일대기를 서술한 열전 10권 등 총 50권의 기전체 역사서. 2. 김부식(1075~1151) 신라 왕실의 후예로 다른 집안과는 달리 그의 아버지 대에서야 중앙 정계로 진출. 김부식의 형제 4인이 모두 과거에 합격하며 이름을 알림. 문장에 능해 여러 차례 송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으며, 금의 압박이 거세지자 이자겸과 현실적인 외교관을 주장했으나 왕권을 위협하는 그의 전횡에는 반대함. 이자겸 제거 후 수상의 자..
지난 주에 내물왕 즉위년 조의 결혼을 이야기하고다음엔 거기에 대한 김부식의 논평을 이야기 해보자고 예고를 했습니다만이미 한참 전에 이 사론에 대해 쓴 것이 있군요, 사론 02 - 나물왕즉위년조의 사론 엄훠낫, 지가 돈이 얼마인지 자식이 몇인지 몰랐다는 분도 아닌 뇬이글을 써놓고 안썼다고 생각하다닛!!!뭐, 약간의 생각이 바뀐 것도 있지만 그래도 사론에 대한 것은 위의 글을 봐주셨으면 합니다.단 원문과 해석글 빼고 5번째 문단까지는 지난 주와 겹치니그 다음부터 읽어주시길..일단은 설명에 앞서 사론을 다시 인용해 봅니다. 논하여 말한다. 아내를 맞이함에 있어 같은 성씨를 취하지 않는 것은 분별을 두터이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노공(魯公)이 오(吳)나라에 장가들고 진후(晉侯)가 사희(四姬)를 취한 것을..
요 며칠 일이 많았습니다.지금도 기차에서 쓰고 있어요.기력은 소진되고, 몸은 피곤하고, 아니 이 구간은 왜 이리 흔들려.. 오늘 소개할 책은 자주 보는 것은 아닙니다.가끔 주자본이 옆에 없을 때나 보는 데문제는 PDF화일은 어디나 따라다닙니다.그러므로 제목은 적절치 않은데그래도 이따금 목판본을 이용하기도 했고또 지금 그나마 쉽게 삼국사기 원문을 구할 수 있는 겁니다.이제 국편에서도 교감된 원문, 번역, 그리고 목판본 이미지를 제공하지요.앞서 소개했듯 서울대 규장각에서는 주자본을 제공합니다.그러나 화면을 보면 눈물이 흐르고눈에 잘 들어가지 않을 분들도 많죠.그런 분들을 위한 소개의 의미도 있습니다. 원문이라고 해도 이것이 김부식과 그 일당들이 쓴 원고 그대로라면지금의 삼국사기를 읽는 수고는 반으로 줄었을 ..
엄밀히 말하자면 이번 글은 자주 보는..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과거완료에 가까운 책이긴 합니다.그러나 사용 회수만 놓고 본다면 압도적이었던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제는 말해봐야지, 해봐야지 해도 선듯 말하기 어려운 이름두계 이병도..이 시대에 그의 저작물을 읽는 이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물론 서점에서 구하기도 어렵고, 또 너무 지난 학술논문이라...연구사, 학설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정말 고문일 정도)툭 던지듯 말하기는 쉽지만 중심잡고 이야기하기란 참 어렵습니다.(그러니까 식민사학 프레임만으로 보면 참 쉽죠. 하지만 여기가 그런뎁니까..)그런데 개인적으로 짐순이가 꼽는 최고의 업적은 삼국사기입니다.해방전후부터 시작된 원문 교감과 번역, 주석작업이한 사람에 의해 수십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점도 대단하지만(사실 ..
요즘 너무 글이 뜸한데다, 또 국내 유일 삼국사기 & 김부식 빠수니 블로그라는 본연의 자세와는 거리가 먼 상태이므로 모처럼 삼국사기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해보았습니다.(99% 즉흥적으로.. 귀엽지만 망할 女ㄴ같으니 -_-;;)뭐, 삼국사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라 해서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다만 이러저러한 책을 보고 있고또, 이러저러한 책을 구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이야깁니다. 나중에 이야기할 이병도 판의 삼국사기 교감본을 보다가우연히 일본 학습원대학에서 펴낸 삼국사기 영인본을 구하면서짐순이의 원문으로 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판형, 그러니까 신국판인가 4.6배판인가 보통 단행본 사이즈에양면 도합 8쪽을 우겨 넣으니 글자가 매우 작아서좀 희미하다던가 획수가 많은 글자는 카드형 돋보기로 봐야하는 일도 생..
삼국사기를 읽는 이들의 불만 중 하나가 글의 세밀함이 적다는 것에 있습니다.중국 정사나 자치통감, 또는 일본 6국사와 비교해도기록의 세밀함이 떨어지고 내용 서술이 빈약한 곳이 많습니다.그 이유를 들자면 삼국사기가 12세기에 편찬되었다는 것,신라의 기록만 압도적으로 살아남았고이러저런 전란과 혼란기를 거치며 살아남은 기록이 적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겠지요.(또, 누구는 신라위주의 기록이란 욕을 하겠지..)거란의 침입 덕분에 고려 초기의 기록조차 많지는 않습니다.하물며 그 이전 시기야 더 말할 게 있겠습니까.또 하나는 김부식이 고문파였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고문파라고 전보에 적는 글을 선호한 건 아니지만잡다한 수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원고지 매수는 많이 줄었지 싶습니다. 그런데 이따금 삼국사기의 문..
원문朔州 賈耽古今郡國志云 "句麗之東南 濊之西 古貊地" 盖今新羅北朔州 善德王六年 唐貞觀十一年 爲牛首州 置軍主 번역삭주는 가탐의 고금군국지에 따르면 (고)구려의 동남 예의 서쪽, 옛 맥의 땅이라 하였다. 아마 신라의 북쪽 삭주를 말하는 것 같다. 선덕왕 6년, 당 (태종) 정관 11년에 우수주로 삼고 군주를 두었다. 오늘 예정을 바꾸어 삼국사기 번외 글 하나 올려봅니다.(눼, 이른바 땜빵선발이죠) 사실 별 역사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삼국사기의 오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침에 문득 삼국사기 지리지 삭주(그러니까 지금의 춘천입니다) 부분을 펴놓고 읽다가 순간 짐순이의 해석이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바로 옆 화면의 中자를 두고 끊어읽기가 잘못되고 있던 거예요. 당의 정관 11년 중..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적었던 앞 글과 달리(그냥 욱하고 써버렸네요. 질문을 던진 노예맛땅쇠님은 반성하라!)이 문제는 몇 달전부터 머리 속에서 오물거리건 건데이참에 덜어내고 머리를 비워보기로 하죠. 저쪽 애니 블로그를 들여다 보신분은 아시겠지만(하다못해 이 블로그 소개글만 봐도...)짐순이는 기동전사 건담(오로지 우주세기!), 은하영웅전설,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를 좋아합니다.(그쪽 일을 하시는 분과 대화를 나누가 좋아하는 작품 얘기가 나왔을 때 저 목록을 듣더니 황당해하시더군요)기동전사 건담의 갖가지 설정놀이와 작품 내의 연대기 문제가 이 글에 어울릴 것 같지만그건 그야말로 광개토왕릉비 읽기 글쓰는 것만큼 어렵구요.(누구 죽는 꼴 봅니다. ;;)마리미테 팬들 사이에서 잠시 불거졌던 문제 하나를 잠깐 이야기해..
간혹가다 진영논리같은 정치적 입장이나 개인적 문제를 떠나서사람이 어떻게 하다보니 왜곡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류시화씨가 번역하여 많이들 알려진 워싱턴 추장의 편지가 있지요.백인들의 서부 개척을 통해 인디언들의 생활이 무너지고(이미 저항은 끝난 상탭니다)자연을 파괴하는 상황을 보고서 위싱턴의 대추장에게 보낸 편지로 알려져 있지요.환경문제를 다루는 어린이 책에도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글입니다.그러나 이 글은 1970년대 말인가 어떤 방송작가가 환경문제 방송을 만들며 지어낸 글이었지요.처음에는 매우 좋은 의도로 지은 글입니다.그러나 이 글이 사료로서의 가치까지 가지고 사람들이 숭배하게 되자원작자가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지만환경운동가들은 좋은 일에 쓰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천조국에도 ..
양병우 선생님께서 쓰신 역사의 방법이란 오래된 역사학 개론서를 보면로마제국의 금석문 중에 투리아의 비문이라는 게 나옵니다.투리아라는 아내가 죽자 남편은 그녀의 묘비에 뻥이란 뻥은 다 써넣었지요.그 비문 그대로를 믿으면 요즘말로 골룸이 됩니다. -_-;;우리나라에도 그만은 못하지만 구구절절한 비문도 있지요.본인이 효자로 이름났던 최루백이란 사람의 아내 염경애의 묘지명입니다.(그 당시로도 여자에게 이름을 붙이는 건 매우 의례적입니다..)효자이긴 한데 그 잘나가는 수주(수원) 최씨의 일원이면서도그다지 잘나가지 못한 가계 출신이라(잘나갔으면 아버지가 산에서 호랑이 밥이 되고 아들내미는 또 그걸 찾아서 죽여 배갈라 시신 수습하는 고생 안하죠)딸부자집 개경 귀족 염덕방의 과년한 장녀를 맞아 살림이 폅니다.나름 전략..
진주 (22종)- 죽竹. 칠漆, 닥나무楮, 감柹, 차茶, 잣海松子, 석류榴, 송이버섯松蕈, 석이버섯石蕈, 오미자五味子, 생강薑, 꿀蜂蜜, 매실梅實, 웅담熊膽, 녹용鹿茸, 백토白土, 청각채靑角, 미역藿, 김海衣, 전복鰒, 해삼海蔘, 문어文魚 강릉 (41종) - 산뽕나무(활대)弓幹桑, 죽화살대箭竹, 잣海松子, 오미자五味子, 자단나무紫檀, 황양나무黃楊, 인삼人蔘, 복령茯苓, 지치紫草, 송이버섯松蕈, 석이버섯石蕈, 꿀蜂蜜, 지실枳實, 석종유石鍾乳, 새박뿌리何首烏, 백화사白花蛇, 해달海獺, 소금鹽, 미역藿, 세모細毛, 김海衣 해삼海蔘, 전복鰒, 홍합紅蛤, 문어文魚, 삼치麻魚, 방어魴魚, 광어廣魚, 적어赤魚, 고등어古刀魚, 대구大口魚, 황어黃魚, 연어鰱魚, 송어松魚, 은어銀口魚, 누치訥魚, 열목어餘項魚, 회세조개回..
http://mirror.enha.kr/wiki/%EC%82%BC%EA%B5%AD%EC%82%AC%EA%B8%B0- 원래 이거지만http://rigvedawiki.net/r1/wiki.php/%EC%82%BC%EA%B5%AD%EC%82%AC%EA%B8%B0 - 외부링크는 이걸로 해달라니... 한동안 베스트 아니메에 의존하던 애니정보를 사이트 맛가는 바람에위키로 갔다가 요전에 엔하위키로 바꾼 다음혹시나 싶어서 삼국사기를 쳐봤다가 매우 재미난 결과가 나왔습니다.여기야 원래 김부식 빠수니 블로그니까 그러려니 하지만보통 웹 상에선 김부식과 삼국사기의 인기는 그리 높지 않습니다.좀 등판이 잦은 경우 까기 한 게 많죠.아님 간략히 자료인용에 그치는 경우지요.그래서 여기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 봤더니 오히려 어지간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