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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왕조(조선이라 해도 둏다) 시절의 미담을 그 자체로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단 이 글의 시작은 페친님의 글에 댓글을 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조선시대의 국왕의 행차는 대사건이다. 왕궁이 왕경의 상당수를 차지할 정도로 넓은 이유가 그 안에 갇혀 딴생각하지 말고 일하란 이야기다. 그리고 경복궁의 실제 면적은 자금성과 큰 차이가 없다. 진짜 유생들이 25평 아파트만 주고 여기서 나가지 말라고 했으면 조선시대 모든 왕들은 걸주가 되어버렸을 것이다.(명나라는 자금성을 주었는데도 그리 막장황제 투성이다. 연산군을 가져다 놨으면 성군이라 불렸을게다) 여담이지만 조선의 역대 왕은 정궁인 경복궁을 둏아하지 않았는데, 아주 효율적으로 일만 하고 잠깐 쉬라고 설계되어 왕들에겐 숨 막히는 곳이었다고 ..

1. 모스크바의 네오나찌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보다 더 많은 전사자를 보고 있다. 이른바 구쏘오련의 몰락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한 수저 정도는 관련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만으로도 최대 10배 정도 되는 상황이다.(최소한으로 봐도 5배) 일단 쏘오련과 지금의 네오나찌들은 희생에 매우 둔감하다. 병사는 밭에서 캔다는 말은 그만큼 병력이 많다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사실 가치가 없다는 말에 더 가깝다. 어쩌면 총통 푸틴은 우크라이나에게서 좀 많은 양보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로씨아인들은 궁핍하고 고단한 건 늘 있던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설령 이겼다고 해도 네오나찌국이 감당해야할 댓가는 아프간 때보다 더 크다. 아무리 소수민족 위주로 뽑았다지만 그렇게 많은 병사들은 죽음은 그렇게..

지금 서예에 쓰는 붓의 모양은 자루는 가늘고 붓모는 풍성한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초창기, 그러니까 문사사용의 이른 시기의 붓은 지금 서예용 붓보다는 이 붓펜에 더 가깝다. 붓 자루에 비해 붓모가 매우 가늘고 얇다. 자루를 뛰어넘은 현대의 것과는 다르다. 그리고 선진과 진,한대의 붓 끝은 끝이 뭉툭하나 끝으로 갈 수록 좁은 모양을 하는데, 현재처럼 붓 뚜껑도 없고, 달리 필통같은 것이 없을 때, 머리에 비녀처럼 꽃고 돌아다니는 용도로 디자인된 것이다.(종종, 펜을 저렇게 꽃아쓰고 다녔는데... 아~! 짐순이의 1회차는 선진과 진,한 어드메에 위치하는 것이란 말이냐!) 붓의 길이는 보통 23cm 내외 당시 한대의 1척을 기준으로 규격화되었다. 창원 다호리나 김해에서 출토된 붓도 이 길이 규격에서 크게 벗어..
글쎄요. 그런 점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우선 우리나라 근대사학이라면 일제시대에 일본을 통해서 받아들여져서 대체적으로 말한다면 이른바 실증사학이라는 학풍이 사학연구의 기조를 이루어 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또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사학의 성립이랄가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과정이고 필연의 추세였다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엄밀한 사료의 비판을 통해서 정확한 고증을 거쳐 ‘과거의 사실을 사실대로 밝힌다’는 그러한 견지에 서는 것이 역사학자의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것은 역사해석이 신화적이거나 종교적인 테두리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그리고 또 권선징악적인 견지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가 있었던 것입 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이미 ‘크로체’이후로..

페북에는 마침, 강감찬이나 이순신을 꽤나 오랜기간 다루는 페친들이 있다. 그 분들 정도는 아시겠지만 (당시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장군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요즘으로 치면 군단장에게 ~~소령이라 부르는 식. 강감찬은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까지 지낸 사람이고, 애초에 문과급제자다. 고려사회의 지배세력인 문벌귀족과 조선의 양반이 뭐가 다르냐 다같은 귀족이 아니냐고 하는데, 이는 한국사람보고 중국인이라고 하거나 일본인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기술관료적 성격도 강하게 가지는 조선 문관(동반)과 달리 고려 시대 귀족은, 그것도 초기쪽으록 가면 전란기 호족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애초에 강감찬은 한강 이남 최대 호족) 한 지역의 왕초고, 또 국가의 거물이니 당연히 힘쓸 줄도 알아야 했..
그제, 한성백제박물관에서 '고대'의 개념에 대한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사실 시대구분론을 매우 둏아하는 입장에서 환영할만한 거였는데, 거기에 아예 세계사라는 더 거대한 틀에서 어떻게 보아야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라 더 둏을 수 밖에 없었지요. 정말 이런 거 취향저격입니다. 이런 방법론은 한림대에서 열었던 시대구분론 세미나 이후 다시 시도된 것인데, 그때는 한국사 위주의 발표에 듕궉사, 서양사 전공자들을 불러 토론을 붙였다면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발표를 맡긴 것이라 더 의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한국사의 시대구분론 자체는 경제사학회 이후 정문연과 국편, 단국대 한국학연구소에서 다룬 적이 있고, 고대사학회에서 한국고대의 시대구분론을 가지고 크게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유행처럼 사그라들었는데 역..

전쟁 중 약탈과 학살이 일어나는 일은 선사시대부터 일어난 일입니다. 수렵과 채집, 어로를 통한 자연의 식량거리를 수확하는 단계를 지나 직접 먹을 것을 키우는 시대가 되었을 때, 다수에 의한 폭력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언덕 위에 마을이 새워지고, 그 주위를 도랑과 울타리가 둘러싸는 모습이 보이고, 깊은 생채기를 가진 유골이 발견됩니다. 동유럽에서는 마을 사람 30여 명을 한데 모아 학살한 사례가 발견되었습니다. 약탈의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물욕이죠. 농경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현재와 같은 생산량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완전히 원시림인 곳을 다 밀어버려야 하는데, 농지를 새로 만드는 것은 그냥 농사를 짓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노력에 비해 생산량이 넘치지는 않죠. 이럴 땐 부족한 식량..

이 박물관이 개장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지만 그곳을 갈 수단이 마땅치 않았고 이런저런 일들이 있어 오늘에야 다녀왔습니다. 삭주에서 40km 정도 떨어진 곳이라 그리 가볍게 갈 곳은 아닙니다. 광활하게 펼쳐진 6~8차선 고속도로가 있는 곳도 아니고 구불구불한 산길에 반절은 왕복 2차선을 달려야 했으니까요. 화천박물관의 전경을 찍지는 못했습니다. 앞에서는 주차장을 찾아야 했고, 나오며 찍자고 마음 먹었지만 또 나오느라 한참 지나니 아차 싶더군요. 제법 큰 3층 건물의 공간인데 코로나 덕분인지 다른 관람객도 없었군요. 심지어는 직원들도 못본듯. 1층에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조선시대 양반들의 방을 복원한 것이 반깁니다. 이런 걸 어디서 봤더라? 왕경의 종로에 이런 전시공간이 있지요. 유리바닥 아래 실제 유적(그..

한번 상상해보자. 1970년대 효창공원, 혹은 1980년대에 독립기념관 앞에서 일본 총리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과거에 대해 사죄하는 장면을. 천황은 직접 오지 못하더라도 통석의 념같은 두루뭉실한 단어 대신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는 장면을. 누가 총리였던 간에 그 장면은 브란트의 사과 만큼이나 울림이 컸을 것이다. 적어도 몇몇 빌어먹을, 얼어죽을 이들이 말하는 과거를 딛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는 표현은 지금보다 더 설득력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에 대해선 진지하게 사과를 한 일본이 동남아시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않고,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한다. 결국 21세기에 들어서 참의원과 중의원에서 약간이나마 언급되는 것이 전부이다. 이것을 가..
일시 : 2021년 12월 17일(금) 13~17시 장소: 한성백제박물관 유튜브 채널 https://youtu.be/Vlk4YunTsHU 12:00~12:40 식전 준비 참석자입장 사 회 : 이장웅(한성백제박물관) 12:40~13:00 개회 개회사: 한국고대사탐구학회 회장 축 사: 한성백제박물관장 13:00~13:30 제 1주제 고구려 도교 수용의 배경과 실상 발표자: 강진원(서원대학교) · 토론자: 조경철(연세대학교) 13:30~14:00 제 2주제 백제의 사서 편찬과 대왜교류 발표자: 박재용(충남역사문화연구원) · 토론자: 홍성화(건국대학교) 14:00~14:30 제 3주제 신라의 한자 전래와 신라인의 표기 양상 발표자: 김희만(서강대학교) · 토론자: 이정빈(충북대학교) 14:30~14:50 중간 ..

예전에 어느 디자이너 였나, 그 많은 공순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란 글을 쓴 것을 읽었다. 그 글에서 매우 인상 깊었던 부분은 패션 디자인 산업의 완성을 숙련공에게서 찾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영감을 가진 디자이너가 있어도 그의 생각을 미세한 부분까지 구현해내줄 이가 없으면 그 생각은 스케치에 머물고 만다. 마치 마치 다 빈치의 구상을 당대 기술이 구현해내지 못한 것처럼. 그래도 저 바닥에도 시스템이라는 것이 어떤 건가를 생각하는 분은 계시는구나하고 절로 고개를 숙였다. 적어도 그 민망한 연구보고서같은 소리는 아니지 않나. 전태일이 사라지고도 한동안은, 아니 80년대말까지도 평화시장의 아이들은 주택가 지하실에 작은 재단용 책상, 미싱 두어개(삼봉, 본봉, 오바르꼬)만 있어도 적당히 먹고 살 수 있었다..

오늘 두 건의 학술대회가 있었다 하나는 서울, 하나는 김해. 좀 더 관심 가는 주제인 김해로 골랐다. 주말이라 하더라도 변방인이 움직이는 것은 참 어렵다. 변방인두 주말이라고 한가하지 않아. 늘 농번기여, 농번기. 더욱이 주중에 움직이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눈치가 보이거나, 지나며 베어야 할 관문의 장수들이 많거나. 여튼 어렵다. 아는 이가 요지문을 배달해주거나 카톡을 통해 pdf를 '사여'하기만 하여도 황은이 망극할 지경이다. 요즘 코로나 시대의 학회는 줌이나 유튜브 생중계다. 심지어 현장 설명회도 유튜브 중계다. 지구연방군의 교통 편의 제공이 여의치 않으므로 엄두도 못 내던 일인데 말이다. 오후는 손으로는 일을 하며 눈과 귀는 김해로 정찰을 보냈다. 이젠 한랭지형 산악 포격 사양이 아니라 강행정찰형..

일본 'G7 확대해 한국 참가시키는 것에 반대' 표명 이게 일본과 일본에 경도된 미국 조야의 시각이다. 얼마 전에 에드워드 루트왁(종종 그의 책-전략-을 추천하기도 했는데)도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에 기울 수밖에 없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지들 딴에는 종놈이었던 놈이 겸상하자고 들이미는 꼴이라 기분이 열라 둏진 않을 것이고, 실무적으로 봐도 저렇게 갈 경우 위화단 사건 이후 미국과 가져온 아시아 문제의 대리인으로서의 지위가 위협받는다. 예전에야 그렇담 우리는 군비확장으로 타개한다는 옵션이 있었으나 평화헌법은 그걸 막는다. 그렇다면 결국 가장 유효한 수단은 뒷담화였으나 이젠 그거 약발이 떨어지니 당당히 앞에서 하는 것.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한국전으로 일본이 발전한 게 아니라 회생의 기회를 잡은 ..
전근대 시대에 대한 오해 중에 정말 이가 갈리도록 고쳐지지 않는 것을 들라면 단연 외교에 대한 개념이다. 학계조차 아직도 대외관계의 여러 모습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만 대중의 오해는 그야말로 곰이 성형외과에 갔더니 미녀가 되어 나왔다는 수준의 믿음이다. 전근대 왕조, 특히 조선은 민족주체에 대한 어떠한 개념도 없이 외세에 납작 엎드린 것으로 인식하게 일쑤다. 그냥 사대와 모화의 개념도 없이 그냥 배꼽을 보여주는 시골 강아지 보듯 한다. 한 번 물어보자. 중국에 가장 많은 사신을 보낸 왕은 누굴까? 정답은 고구려의 장수왕이다. 1년에 두 번, 세번 가는 것도 아니라 무려 1년에 네 번씩이나 한 두해도 아니고 그 "긴 치세"(오죽하면 아들이 기다리다 먼저 죽고 손자가 즉위할 정도)내내 그..
※ 일단 이 이야기는 예전에 쓴 글 "역사적 맥락, 사회적 경제"의 후속글이다. 그리고 벼멸구같은 놈들을 위해 쓰는 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읽겠지. 쩝.. 요즘 한일관계의 악화로 인해 징용공이나 종군위안부(일본군 성노예)라는 단어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전자는 이번 관계악회의 도화선이 되었고, 후자는 한국의 일부 학자들(라고 자칭하는 …… .)이 그 존재를 부정해서다. 그 논지의 역겹냐 아니냐를 떠나서 한 번 화끈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때가 되었다. 그 부분이야 현대사를 다루는 분들이 더 잘할 문제니 그 사실과 관련한 역사적 맥락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20세기 중반의 사건을 왜 21세기에 이야기하는가어떤 이들은 왜 이제와서 위안부 문제를 이야기하느냐고 말하며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
이렇게 이미지가 있으니 시간과 장소를 따로 적지 읺아도 되는군요. 대외교섭이야 늘 관심있는 주제니 작년보다도 더 기대가 되긴 합니다. 아주 간단히 포스팅을 마칠 수 있다니.. .
군사용어 중에 ROC(Required Operational Capability)라는 것이 있다. 우리 말로 하면 작전요구성능인데 무기를 산다거나 새로 개발한다고 할 때, '아빠아빠 저거 사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군은 이케조케 싸워야하니 난 이런 무기가 필요하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화력전을 하겠다면 화력전에 걸맞는 것을 주로 지를 것이고, 기동전을 하겠다면 거기에 맞는 것을 구한다. 또 앞으로의 전쟁은 요걸 것이다란 전망이 서면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이고.또 우리가 정찰전력이 부족하다면 그에 걸맞는 것을 사고, 우리는 프랑스 무기류가 적합하다 하면 그 나라 것으로 도배를 하고, 가진 돈이나 관리 역량에 따라 고르기도 하고. 암튼 복마전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디 후방지원업무를 도..
일시 : 2019년 4월 5일 ~ 6월 2일장소 : 한성백제박물관 특별전시관링크 : 여기를 눌러보세요 마지막으로 했던 전시안내가 17년 연말이었으니까 무척 오래간만에 하는 것입니다. 뭐 어린이의 사정이랄까. 좀 전에 한성백제박물관에 가서 돌아보고 왔습니다. 맨 처음 들어서자마자 최근에 언론을 탄 신라의 방패 추정 유물과 배모양의 모형이 기다립니다. 현재 복원작업 도중이라 보존액에 담긴 상태로 전시되는데 오늘(4월 7일)까지 원본 전시고, 그 다음부터는 복제품의 전시라고 합니다. 방패는 생각보다는 얇은데, 방패인지 아닌지도 후일 더 많은 자료의 발굴을 기다려야할 것입니다. 배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는 고대 배의 형태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그쪽에 무지한터라 말로/글로 설명하..
오늘은 고대사대신 근현대사, 또는 세계사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뭐, 맨날 부식옵하 이야기만 지겹지 않습니까?) 일단, 짐순이가 살고 있는 춘천을 무대로 한정해봅니다. 요즘은 만나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사회적경제라는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인연이 있는데 이 분들과의 대화에서 떠오른 생각을 늘어놓을 것입니다. 욕하는 것이 아니니 초장부터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춘천에서 사회적경제라는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아직 춘천에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강원도 영서에서 춘천과 묘한 경쟁관계를 구축중인 원주는 한국 사회적경제의 성지같은 곳이고, 또 새롭게(아니 이제 고인물인가?) 충남 홍성같은 곳이 대두하는 것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을 가집니다. 협동조합 교육으로 원..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 무슨 성과가 나오면 4대강에 들인 돈으로 저걸 했으면..하는 이야기는 박멸되지 않고 지겹게 반복이 된다. 솔직히 4대강에 찬동한 것들 이상으로 해로운 것이 그런 글을 되풀이하는 작자들이다.(솔직히 말하자면 물을 보면 기분이 나쁘지 않잖아요라던 조뭐시기 보는 것 만큼이나 구역질 난다) 일본 애들이 성공적으로 소행성 샘플 가져오고, 얼마전에 또 하나 소행성에 접근하고 그게 조만간 샘플 회수를 한다지. 그거 20조만 들어서 한다면 국민 성금이라도 했지. 걔들이 80년대부터 얼마나 많은 폭발을 겪은 것은 생각도 안하지. 90년대에 얼마나 조롱이었나를 알기나하나. 일본은 그렇다 치고 미국은? 개들은 사람 죽은 것만 두자리수다. 로씨야? 거긴 죽은 사람도 극비고, 우연히 무선통신사들 채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