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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글쎄요. 그런 점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가 있겠습니다. 우선 우리나라 근대사학이라면 일제시대에 일본을 통해서 받아들여져서 대체적으로 말한다면 이른바 실증사학이라는 학풍이 사학연구의 기조를 이루어 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은 또 어떤 의미에서는 근대사학의 성립이랄가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과정이고 필연의 추세였다고 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엄밀한 사료의 비판을 통해서 정확한 고증을 거쳐 ‘과거의 사실을 사실대로 밝힌다’는 그러한 견지에 서는 것이 역사학자의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것은 역사해석이 신화적이거나 종교적인 테두리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그리고 또 권선징악적인 견지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가 있었던 것입 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이미 ‘크로체’이후로..
혹시나 싶어 말하는 거지만 역사가의 가는 ~가를 뜻하는 조사가 아닙니다.무언가를 하는 사람의 의미입니다.풀어쓰자면 역사를 쓰거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죠. 어릴 적 읽은 역사가의 이야기는, 엄밀히 말하자면 사관이군요,머리에 각인으로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춘추 전국시대 제齊나라에 정변이 일어납니다.신하가 난을 일으켜 군주를 기둥에 못박아 죽였습니다.그 때 사관이 신하 모某가 군주를 죽였다고 적었습니다.그러자 그 신하는 사관을 죽입니다.죽은 사관의 동생이 쪼르륵 달려나와주군을 죽인 자가 사관도 죽였다고 씁니다.그러자 그도 죽임을 당합니다.또 동생이 달려나와 또 사관을 죽였다고 씁니다.그러자 그 신하도 '내가 졌소I'm a milk cow'라며 두 손을 듭니다.물론 그 신하가 죽은 군주와 사관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