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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 이야기.. 본문

GR맞은 짐순姬

블로그를 다시 시작한 이야기..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6. 6. 01:15

어느 흔한 반도의 직딩은 소싯적에 저런 소꼽친구가 없음에 한이 맺혔다고 절대 이야기 할수는 없을지도 모를까나, 까나, 까나리액젖... -_-;;;


1. 반도의 흔한 놀고 먹는 어느 직딩의 핑크빛 책상.

돈이 많았으면 핑크빛 소니 노트북도 샀겠지만(전직 소빠라)

그저 모니터는 회사꺼(살때 이거 사자고 우김!), 내 돈내고 산 키보드와 마우스.

요 두개는 물품구입으로 하고 영수증 청구도 할 순 있지만 그럼 회사 물건이 되므로!


사실 종로의 모든 직딩 중에 수입은 좀 적어도 지조때로 할 수 있는 게 많은 유일한 사람일게다.

출근시간도 30분 늦고, 퇴근은 그럭저럭

책상 우측으로 책장이 있는데 대다수는 역사책, 교과서, 화사에서 쓰는 교재들과 약간의 서류뭉치.

하지만 열권이 넘는 만화책도 있다.

한 때는 기동전사 오리진과 일년쟁사, 일본에서 만든 RGM-79 무크지도 있었고, 

3월의 라이온, 센티넬, 약간의 라노베도 있었다.

지금도 하야마 라센진의 육해공대작전과 세인트 영멘이 상주. 아, 탁고도 있었지.. .


회사는 체험학습을 중심으로 잡다한 교육을 하는 곳이고, 

여기서 주로 하는 일은 연구개발을 빙자한 공부.

요즘은 세계사 수업이 있어서 그 교재를 만든답시고 세계사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읽는 중.

집에 있던 통사류의 80%는 가져오고 일부는 새로 사기도 했다.

홈페이지 관리자랑 평생교육원 강의를 기획하고 제안서 쓰고 제출하는 일도 하긴 하는데

적어도 근면한 직딩이 아닌  건 확실.

원래 애들 상대로 수업도 하고 강사들을 교육시키는 일도 하는데 그건 잠시 쉬는 중 

뭔가 성과가 제대로 나온 건 한국사교재.

무려 4년에 걸쳐 달랑 A4지 100매짜리가 나왔다.

그냥 베끼고 대충편집하면 1주 안에 나오지만 정말 책을 쓰는 각오를 했기에 그 정도 걸렸다.

회사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것이니 

단 한 줄에 책 한권이 들어가는 미친 교재를 만든 놈도 참..이고

또 그걸 봐주는 회사도 참...이고.


원래 강의 폐강되면 기뻐하는 인종이긴 하지만 

하기로 한 대학강의부터 강사양성과정강의들과 회사 강사교육강의 줄줄이 폐강되는 바람에

사실 요즘 짤릴까 불안했는데 2년전에 만든 기획안이 사무실에 돌다가

누군가 발견하고 '이 바닥에 이정도 기획안 쓰는 사람 없다' 이 얘기가 나오길래

그거 내가 만든 건데 당신들이 빠구시켰잖수라고 역습을 가해

간만에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켜줌.(이런 것도 못하면 손가락 빨아야 한다)


그래도 양심상 전공공부는 점심도시락 까먹는 시간,

블로그 글은 어지간하면 답글만 달아주는 것으로 타협.

이게 이 블로그를 만드는 사람의 일상.


2. 블로그 활동을 하는 이유

홈페이지야 지난세기부터 만들었고, 아직도 계정사서 돌리는 개인블로그도 있는데

09년에 역사얘기를 전적으로 하는 곳이 필요했고

마냥 학교에서 살 것같았던 인생설계가 바뀌긴 했다. 

처음 만들 때 아예 책을 쓰는 것을 생각하고 만들었다.

아는 놈들과 팀블로그도 만들고 그랬는데 먹고 사는 게 바쁘고

중간에 중환자실 방문도 해주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청순가련 병약미소녀 놀이도 하다보니

글을 쓴다는 게 어렵긴 하더라.


게다가 원래 글을 머릿속에 모았다가 한번에 쓰는 인간이라

짧은 글도 제목 잡고 2달쯤 후에 갑자기 생각나면 써버렸다.

학부 졸업논문도 3학년 때부터 목차잡고 자료정리하다가

제출마감일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그냥 한번에 써버리는 식이다.

(물론 그 글의 비문들에 비하면 한때 욕먹던 공지영의 소설은 명문장이고)

수업발표할 때도 전날 밤부터 각잡고 쓰는데 그 기운이 끝까지 미쳐 오전 9시에 마치면 잘된 발표,

기운 딸리면 그날 날벼락이 떨어지니 이혜천의 제구도 이에 비하면 양반이더라..

학부시절부터 지도교수님이 제발 차근차근해라 하던 것이 쉬이 고쳐지진 않더라.


그런데 갈수록 연식은 쌓이고 몸이 한 번 약해지니

그 순발력은 기대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이 차근차근 쌓아야 하는데

앞에서 말한 한국사 교재가 그 첫시도긴 했다.

물론 체계를 잡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한 정리이기도 하다.

나중에 뭐가 어떻게 나올지 아는 이는 현재 달랑 한 사람뿐.

(넌 너무 많이 알고 있어..라며 제거하기도 참 편하다. 적발하기도 쉽고.

물론 킬러를 고용하려면 로또라도 되어야 하는데 10년째 같은번호로 하는데도 안걸린다.. ㅆㅂ!!)

원래 근면 성실하게 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부류지만 

아무래도 사회물을 먹다보니 변할 수 밖에 없긴하다.

과거의 그 지랄맞던 시절 생각해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마냥 나쁜 건 아니더라.


위에서 직장얘기도 하긴 했지만 대다수의 동료들, 혹은 선후배들은 학교에 남아있는데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놈이 초딩들과 뒹굴고 아줌마들과 샬랄라 하면서 놀고 있다.

이 바닥에서 좀 미친 놈이 되는데(아니, 듣보잡이라 요즘은 신경도 안쓰지)

뭔가 다른 길을 좋아하는 데다. 닥치고 돌격이 아니라 닥치고 우회하는 스탈이라

반드시 책상에 앉아서 논문을 쓰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라

저 책상에서, 블로그를 돌리며 하는 모든 것도 공부다.

그런 맘으로 산다.


3. 지음知音

알고지내던 골수야구팬이 있었다.

다른사람의 글을 읽으며 그렇게 재미난 적이 없었다.

전혀 역사랑은 관계없는 공부를 하고 일을 하는데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건 역사가보다 더 역사적이었다.

분명 야구얘기를 하는데도 전공얘기 하는 것만큼이나 재미있었다.

처음에 이 블로그를 만들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초대권을 받았다.

네이트온으로 한 그 날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며칠있다가 뉴스에도 나오고, 어느 민방위 교육에선 영상도 나온 사건이 벌어졌다.

(다행히 그걸 못봤다. 그거 봤으면 뛰쳐나갔겠지)

단순한 친구를 잃은 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독자를 잃은 것이기도 했다.

우리가 다같이 좋아하던 달감독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는데

그 사건 이후로 글을 포기했다.

읽어줄 사람이 더는 없으니까.. 그리고 그도 다른 팀의 감독이 되었다.

그냥 폐쇄해버릴까도 고민한 여길 없애지 못하겠더라.

나름 유산이라면 유산이다.


4. 블로그, 욕심, 그보다 더 중요한 공존

다음뷰의 추천제도같은 건 질색이다.

그런 걸로 구걸하는 사람들도 싫고

요즘 추천을 나도 하고 있지만 그건 몇명 아는 분들에만 한정되어 있다.

그 분들도 글이 맘에 들어서, 생각이 맘에 들거나, 죽이 맞으니 하는 거고.

아니면 우연히 좋은 글을 보거나.

츤데레는 아닌데(하지만 금발의 트윈테일이고는 싶었어!!)

그냥 너무 여기저기 남발하지 말자는 주의다.

(최근에 MY view에서 다른 분 추천하다 두번인가 내 글을 누른 적이 있다. 매우 찝찝했다)


그저 댓글 많이 달리고 악플만 아니면 약간 삐딱한 비판도 좋다.

하루 50명 넘기기만 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활동을 재개한 4월부터 50명 미달인 날이 별로 없다.

어떤 날은 140명이나 와서 벙찐 적도 있다.

개인블로그 한때 천명 넘어도 신경도 안썼는데!!

받아봐야 빵도 안나오는 추천보다는 뭔가 공존한다는 느낌이 좋다.

아직은 몇 분이지만 정기적으로 와서 답글 달아주시고

글 올릴 때마다 댓글 안달린 글이 적은 정도에 이르렀다.

감사하고, 이건 개인 기준으로 1차 성공이다.

뭐 총 댓글수가 올린 글보다 적었던 시절 생각하면 진짜 좋아진거지..


그래도 하다보니 욕심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속물인지라

순간순간 다음뷰 랭킹도 보는데(츤데레도 아니지만 부처도 아니라)

그래도 베스트 먹는 거보다 답글 10개 달리는 게 더 좋은 거라 생각한다.

공존한다는 거, 그것만큼 좋은 건 없다.


꼭 역사전공해야 댓글다는 곳아니다.

모르면 모르는데로 이해가 안된다고 물어볼 수 있지.

그냥 궁금한 거 있거나, 잘못된 거 나오면 걍 말걸어주시라.

안잡아먹는다.


처음 여길 만들 때 개인얘기는 안하기로 했는데

무슨 변덕인지 주절거려 본다.

그냥 오늘 기분이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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