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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눈물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본문

역사이야기/역사잡설

눈물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2. 7. 13. 23:40

한 때 마음의 갈피를 못잡던 시절에 가장 많이 읽은 이야기는

삼국유사의 조신의 꿈과 김현이 호랑이를 감복시키다.. 요 두 편이었죠.

그리고 청나라 사람 심복의 부생육기를 좋아했지요.

나중에 그런 감정들이 약간 정리되어갈 무렵 

조선 후기 문인 심노숭의 눈물이란 무엇인가를 구해 읽어보았습니다.

앞의 이야기는 자신의 감정에 복받쳤던 것이라면

이 이야기는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공감이랄까요.


이 책의 백미는 아래 소개된 글과 '그대 얼굴 위로 쑥은 다시 돋아나고'란 글인데

간략히 말하자면 이렇습니다.

요즘말로 노량진 공시생의 생활을 하던 심노숭이

고향으로 돌아갈 작정을 하고 집단장과 아내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습니다.

드디어 귀향할 무렵 아내는 병에 걸려 죽고

손잡고 들어가야할 고향집 대문을 관과 함께 걸어갑니다.

아내는 없어도 나는 계속 나무를 심는다는 내용입미다.

그대 얼굴 위로..는 아내가 죽기 전의 회고담인데 마지막 문장이 이렇습니다.

오늘 우연히 제수씨가 차려 준 상 위에 부드러운 쑥이 놓여 있기에 문득 목이 메이네. 그때 나를 위해 쑥 캐주던 이 그 얼굴 위로 흙이 도톰히 덮이고 거기서 쑥이 돋아났다네.

이 대목은 이걸 인용하는 지금도 눈물이 나네요.


지면 관계상 산에 나무를 심는 이유를 옮깁니다.

그리고 어디엔가 실었던 10년 전 서평을 올립니다. 언제, 어디였는지 기억도 안나네요.


산에 나무를 심는 이유 - 심노숭


내 남원 집은 예로부터 꽃과 나무가 많았는데 날로 황폐해졌으니, 내 게으른 성격 때문에 가꾸지 않은 것이지만 집이 낡아서 그 꽃과 나무까지 아울러 가꾸기 싫은 데 말미암은 것이기도 하다. 아내가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집들을 보면 남편이 꽃과 나무에 대한 벽이 심하여 어떤 이는 방에 들어와 비녀와 팔찌를 찾아 팔기까지 한다는데 당신은 이와 반대로 집이 낡았다고 꽃과 나무까지 팽개쳐 두고 계십니다. 집은 비록 낡았어도 꽃과 나무를 잘 가꾼다면 또한 집의 볼거리가 되지 않겠어요?” 라고 하였다. 나는, “그 꽃과 나무를 가꾸려 한다면 집 또한 손볼 수 있을 것이오. 다만 나는 여기 오래 살 생각이 없으니 어찌 남의 볼거리를 위해 마음 쓸 필요가 있겠소? 늙기 전에 당신과 고향으로 돌아가 집을 짓고 꽃·나무를 심어 그 열매는 따서 제삿상에 올리거나 부모님께 바치고, 꽃은 구경하면서 당신과 머리가 다 세도록 서로 즐기려는 게 내 생각이라오” 라고 말하니 아내가 희희낙락하였다. 지난해 고향 파주에 조그만 집을 새로 지었다. 아내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제 당신 뜻을 이룬 건가요?”라 하였다. 정원과 담장을 배열하고 창문의 위치를 잡는 것을 아내와 상의하여 하였다. 공정이 끝나기를 기다려 꽃과 나무를 심으려고 했는데, 일이 끝나기 전에 아내는 병들고 말았다. 나는 아내의 병이 조금 차도가 있으면 바로 파주로 와서 일을 도왔다. 일이 끝날 무렵 아내는 병이 위독해져 거의 죽게 되었다. 내게 말하기를, “파주 집 곁에 저를 묻어 주세요”라고 하니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눈물을 흘렸다. 집이 파주로 이사오던 날 아내는 관에 실린 채 왔다. 아내의 무덤 자리를 정하였는데 집에서 백 보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기거하고 음식을 먹을 때 아내의 넋이 통하는 듯했다. 우리 산에는 아름드리나무가 많아 그 울창함을 서도 여러 산들이 바라보고 있다. 아내 무덤 자리는 조부 묘 아래에 썼는데 나무를 더 심지 않아도 될 만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고 무덤 주변의 나무를 쳐 덩굴이 뻗치고 그늘이 드리우는 것을 막고, 또 가시나무들을 베고 소나무·잣나무·삼나무 등만을 남기고 나니 조금 성기게 되었다. 이에 나무를 좀 더 심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이듬해 한식날 삼나무 치목 30그루를 심었다. 지금부터 내가 죽는 날까지 봄·가을로 나무 심기를 의식으로 삼을 것이다. 아! 이것은 참으로 오래 된 계획이었다. 남원을 버리고 파주로 가겠다던 그 계획을 이제야 이루었는데 아내와 하루도 함께 거하지 못하였으니 뒤에 죽는 것이 다만 슬픔만을 더한즉 사람이 구구히 삶을 도모하여 스스로 오랜 계획을 세우는 것이 또한 미혹된 짓이 아닌가! 돌아보면 나는 심기가 약해 홀홀히 스스로를 믿고 의지하지 못했으니 남은 생애를 생각해 보니 불과 수삼십 년이요, 한 번 죽고 나면 천백 년 무궁할 것이다. 이에 내가 택할 바를 알겠으니 남원 집이 파주 집에 대한 것일 뿐이 아니다. 살아서는 파주의 집을 얻지 못했지만 죽어서는 영원히 서로 파주의 산을 얻을지니 즐거움이 그지없다. 이것이 내가 신산에 나무를 심고, 집에다 심어 본 것의 품 등을 헤아려 하나같이 산에다 옮기는 까닭이니, 나의 뜻을 갚고 나의 슬픔을 부치는 것이요, 또 나의 자손·후인들로 하여금 내 마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니 훼상치 말지어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그대는 장차 살 것은 도모하지 않고 사후의 계책만 세우고 있는가? 죽으면 아무 것도 알 수 없으니 무슨 계획을 한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나는 말한다. “죽으면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는 말은 내가 진정 참을 수 없는 말이다.”



눈물이란 무엇인가

심노승 저 / 김영진 역 / 태학사 / 2001


조선시대의 시조를 읽을 때, 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해석하면 곤란해집니다. 

정말 지금에 이르러서도 절절히 느낄 감정 복받치는 시구도 

사실은 임금에 대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내 가슴을 헤쳐 그 피로 님을 그리겠다 거나, 천만가닥의 버드나무가지로도 바람을 못 잡고, 

벌과 나비가 몸으로 울어도 꽃의 시듦을 막을 수 없듯 

떠나는 님 어찌 잡을 수 있겠냐는 시구에 속아서,

이 분들도 소싯적에 가슴저린 사랑을 하였구나라고 하시면 그 분들이 당황해 하십니다. 

적어도 이 시의 님은 점 하나를 찍어 남이라 하기엔 너무 무거운 그대였습니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사설시조가 유행하고 다양한 예술의 형태가 선보이게 될 때, 

님도 사랑하는 대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요즘에야 다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함이 미덕이라 믿으며 

어느 시인의 ‘망부가’가 한때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지만, 

이 시대는 아내를 묻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요즘말로 왕따가 되어버린 시절입니다. 

추사 김정희도 아내가 죽자 처절한 애도의 시를 남기지만 

이 책, 눈물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심노숭(1762-1837)도 

일찍 죽어버린 아내에 대해 애도의 글을 남깁니다. 

서울에 살 때, 선산이 있는 파주로 돌아가면 거기에 화초도 심고 나무를 심으며 살자고 약속했건만, 

아내는 이사하던 날 관에 실려 따라옵니다. 

그 남편은 지금은 약속을 못 지켰지만 죽어 같이 묻히면 

영원히 약속대로 함께 하리라 다짐하며 나무를 심습니다.

밥상에 쑥이 올라오자 내가 죽으면 이듬해에도 쑥은 돋아날 거란 말이 생각나서 

목이 메인다는 시를 짓습니다. 

마치 돌아누우면 텅빈 자리에 울컥하고 터질 듯한 심정이 저절로 느껴집니다.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아내와의 사랑 외에도 심노숭의 세상을 보는 눈이 느껴집니다. 

그는 명문가의 후손이나 당쟁에 휘말려 귀양까지 갑니다. 

현실의 벽이 가로막자 천상에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에게도 보입니다. 

왕과 양반, 충성과 효로만 가득한 세상에서 인간의 모습이 하나 둘씩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죠. 

창고지기, 기생, 유배객, 어수룩한 지방관 등이 그의 글에 등장합니다. 

충과 효, 선인과 악인의 이분법적인 세상에서 

각기 다른 개인의 발견은 이 시대의 성과가 아닌가 합니다. 

문학사에서 굵은 글씨로 다루는 인물은 아니지만, 

심노숭에게서 이른바 진경시대에 대한 또 하나의 생생한 증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절절한 아픔과 함께 시대를 직시하려는 한 인간의 몸부림과 

인간에 대한 긍정이 짙게 배어 있는 이 책, 눈물이란 무엇인가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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