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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번외-05. 소와 말, 누가 인간문명에 큰 기여를 했는가? 본문

역사이야기/세계사 뒷담화

번외-05. 소와 말, 누가 인간문명에 큰 기여를 했는가?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3. 2. 14. 13:06

어젠가 어느 사이트에 하루에 걸려 무려 천 개의 리플이 걸린 

참으로 병맛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물론 원글은 인류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동물이 뭐냐고 물어본 단순한 질문글이었어요.

(그러니까 글쓴 사람은 병맛이 아니었다는 말이죠)

소다, 말이다.. 이렇게 오가다 어느 한 명이 말을 강하게 밀면서

그 글은 베르덩, 다부동, 디엔디에푸, 백마고지가 됩니다.

(보통 장판파의 용사가 나타나면 글이 길어지게 되지요)


잠시 세계지도를 보죠.

출처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언제나 저작권자가 불쾌해 한다면 그 의견을 존중할 겁니다.


먼저 고립되어 발전한 남북아베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제외해야할겁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아주 초창기에 고립되어 독특한 생태계를 조성해버렸고,

서구인의 등장까지 구석기시대, 혹은 그 이전단계에 머물렀습니다.

남북아메리카는 매우 다양한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었지만

베링해를 건너 도달한 아시아계 인류의 그야말로 전격전에 가까운 이동에 의해

거대동물류가 싸그리 전멸당했습니다.

(물론 1천년의 전격전이 아니라 아주 오랜 기간 이동했다는 반론이 있지만요............)

그래서 북아메리카는 버팔로같이 사육이 불가능한 동물만 남았고

남아메리카는 안데스 산지에서 겨우 라마 1종을 사육했습니다.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3개의 구대륙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거대포유류를 이야기할 때 인간이 사육한 대다수의 품종이

3개 대륙에 몰려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거든요.


이 두 동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 부분은 죄송하지만 알아서 찾아주세요.


말과 소, 어느 것이 더 기여를 했는가를 이야기하자면

짐순이는 소의 쪽에 설 겁니다.

소는 꽤 초기부터 사육이 시작된 편입니다.

농경이전에는 단순히 식재료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야생의 소는 꽤나 거친 종이긴 하지만 나름 적응을 시켰습니다.

(거대포유류중 인간이 가축화할 수 있었던 종이 매우 적다는 게 그를 증명하지요.

소는 그나마 온순한 편입니다)

이동수단하면 말을 생각하지만 의외로 초기부터 이동수단의 동력원으로 이용된 것은

소였습니다.

전차하면 말이 끄는 것을 상상하지만 아주 초창기의 군사용 수레는 소가 끌었습니다.

이는 아직 말을 길들이기 전이기도 하고 

또 당시의 수레 제작기술이 말의 속도를 감당할 수준도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예 사람이 말의 속도감을 감당해내는 건 좀 시간이 지난 후입니다.

여기서 소에 1점.


그리고 소와 말이 자기 유전자를 증식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죠.

여기서 소가 약간 더 우세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욱 중요한 점은 소가 새끼를 낳아 죽지만 않으면

다 충분히 제 역할을 하지만

말은 모든 성체의 말이 다 같은 역할을 하는 건 아닙니다.

소는 어느 정도 자기 환경을 인식하고 거기에 적응하는 성향이 강한 반면

말은 좀 더 예민합니다.

말을 최고라고 꼽는 이유 중 하나인 전장에서 사용하는 것을 들더라도

미세한 장애물에도 크게 동요하는 말의 습성상

군마가 될 수 있는 말의 수가 많지 않습니다.

여러 마리를 끌고 다니는 기병의 경우라도

짐운반용, 전장까지의 이동, 전투에서 탑승할 용도 등 여러 용도로 나뉠 정도입니다.

한마디로 제품 수율이 고르지 않다는 겁니다.

말의 기동력과 돌파력을 소가 감당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의 성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아이템들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서력기원 이후의 일입니다.

(안장의 경우 기원전으로 올라가지만 등자는 서력기원 이후에야 퍼져나갑니다)

이 점 역시 말의 우위를 말하는 데 장애가 됩니다.

제품의 범용성, 생산의 효율을 따져봐도 여기서 소는 1점을 더 땁니다.


물론, 전쟁에서 말이 기여한 부분은 매우 큽니다.

그러나 말의 기동력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요건 마구의 문제입니다)

상당기간 전차와 같은 보조수단에 이존해야 했고,

어느 영미학자의 중국이 말을 이용하는 것에 대한 번역논문을 읽는데

중국도 말위에 올라타는데 1천년이 걸리더군요.

그나마 말에 익숙한 유목민들도 상당기간은 말의 뒷다리뼈에 걸터앉는

불안전한 상태로 기승을 합니다.

(안장개발 이전에는 말의 척추가 사람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상상하는 강한 충격력을 가진 기병은

등자가 유행한 (동아시아로 치면 3~5세기) 이후에나 나옵니다.

정말 기동력과 충격력을 가진 기병의 전성기는 고작 1천년 남짓입니다.

그것으로 말의 우위를 말하기는 어려워요.

우경의 역사가 아주 오래된 것만은 아니래도 말보다는 더 이르고

더 보편적으로 퍼진 기술입니다.

아무리 짐순이가 전쟁의 비중을 크게 잡긴 하지만

생업경제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감히 나댈급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엔하위키의 말(동물)항목에서 슬쩍.. 마침 말사진이 없군요.


실데로 중세 알프스 이북의 유럽에서는 말이 쟁기를 끌기도 했고

지금도 그를 이용한 농업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당시 인류사에서 이게 가장 보편적이고 주도적인 방식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유럽중심사관도 적당히 써먹어야 욕도 덜 먹죠.

당시 가축을 이용한 농업이 주도적이었던 곳이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와

개체수가 압도적이진 않지만 아프리카 북부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는 지금이나 그때나 인구과밀지역이고

농업생산력이나 농업인구가 유럽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과연 요즘 말하는 유저의 생태계라는 점으로 봐도 어느 것이 우위에 있을까요?


장홍수張鴻修의『중국당벽화집中國唐壁畵集』(영남미술출판사, 1994) 26쪽. 직접 스캔..


그 장판파의 용사에 대해선 노코멘트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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