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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04 14:32

원문

七年 … 秋九月 突厥來圍新城 不克 移攻白巖城 王遣將軍高紇 領兵一萬 拒克之 殺獲一千餘級


해석

7년 가을 9월에 돌궐이 쳐들어와 신성을 포위했지만 이기지 못하였다. (군세를) 옮겨 백암성을 공격하니 왕은 장군 고흘을 보내어 1만 명을 이끌게 하였다. 막아 무찌르니 죽여 얻은 적의 수급이 1천여 개였다.


547년에 신성과 백암성의 방어시설을 재정비한 이야기는 한참 전에 했습니다. 과연 그로부터 4년 후인 551년에 북방의 돌궐이 쳐들어와 신성과 백암성을 각각 공격하고 있었지요. 짐순이는 고구려의 6세기를 매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전반기의 치열한 정치적 혼란, 그리고 후반기의 급변하는 국제정세, 그리고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할 온달까지.. 앞시대와 뒷 시대만큼은 아니어도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551년의 이 돌궐의 공격은 그해에 있었던 백제와 신라의 북진과 맞물려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요. 어쩌면 백제와 신라의 북진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것은 돌궐의 침공, 그리고 북제의 압박이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논리적 수순이었습니다.


특히나 고구려의 후반부의 역사를 볼 때 치열한 전쟁의 역사를 대개는 598년의 수문제의 공격, 또는 612년의 수양제의 1차공격으로부터 봅니다. 하지만 고구려에겐 이때부터가 이미 극도의 전시상황에 돌입합니다. 


북위의 멸망이래 요서와 몽골고원에 가까운 지역은 일시적으로 힘의 공백지대가 됩니다. 초원은 유연이 장악하지만 이 일대에 강력한 영향력을 투사하진 못합니다. 그때 이 지역은 중국의 북방을 차지한 국가와 초원국가, 그리고 고구려가 미묘하게 마주하고 으르렁거리는 화약고가 되지요. 실제로 수가 이 지역을 확고히 장악하기까지 서로 교묘한 외교전과, 그 일대 소수부족들의 회유와 압박, 그리고 소규모의 군사행동으 치열하게 벌어지는 공간입니다. 고구려는 유연과 어느 정도 가까운 관계를 가졌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돌궐이 유연을 무너뜨리고 초원의 패자가 되면서 상황은 달라집니다. 어느 정도 방치도 하던 유연과 달리 돌궐은 직접 자기의 이권을 찾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서지요. 그리고 화북지역을 장악한 북제 역시 뒤질새라 뛰어듭니다. 때로는 상인을 가장한 기습공격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또는 그 지역의 토착세력을 누가 포섭하느냐, 그리고 대규모 친정에 의한 주도권 서점시도 등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지요.


대다수는 한강유역을 두고 벌어지는 각축전에 관심을 보이지만 결코 이 부분도 떼어놓아서는 곤란한 부분입니다.(다행히 이 부분에 대한 연구성과들이 꾸준히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록 자체의 신뢰성 문제입니다. 

돌궐은 아직 이 일대에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유연을 무너뜨려 초원의 패권을 장악하는 게 

이 다음해인 552년입니다. 

물론 돌궐의 원주지가 요서와 가까운 곳이면 

그럴 수도 있는 일입니다만 

애석하게도 돌궐의 발상지는 서쪽입니다. 

유연도 물리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요하인근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유목민족의 군사행동은 농경국가와 달리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경우도 있지만 

중앙아시아의 위치한 종족이 

갑자기 동북아시아에 나타나는 것은 무리에 가깝습니다. 

유연도 거의 죽어가는 상황도 아니었구요.


첫째는 시간기록이 틀렸을 가능성, 

둘째는 그 기록 자체가 아예 틀렸을 가능성, 

즉 다른 집단의 공격이 돌궐로 잘못 적혀있을 가능성. 

이렇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자, 그대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어보신다면, 

짐순이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은 현재로서는 이 기록의 진위를 파악할 근거자료가 무척 적습니다. 

비빌 그릇이 있어야 비빔면을 먹지요. 


다만 일단 551년에 돌궐이 왔을 가능성은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유목민족의 영토관념에 비추어보면 

일정정도 되는 다른 군사집단을 무사히 통과시켜주지도 않고,

(문제는 돌궐과 유연의 관계가 악화되는 시점이므로) 

또 보급에 대해선 농경국가들보다 부담이 덜하다 하더라도 

굳이 여기까지 와서 군사행동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지요. 

물론 고구려가 유연과 가까웠다하나 

유연의 본진도 안 건드린 시점에 굳이 먼 곳으로 돌아가서 

군사행동을 벌일 이유가 없지요.

일시적 양탈행위나 무력시위라며 모를까

유목민족의 대규모의 군세로 요새를 공격한다는 것은

전면전 하겠다는 이야기인데요. 


기록이 틀렸다고 하기엔 너무 구체적이지요. 

이 당시에 요서지역이 화약고가 되어가고 있음을 생각할 때, 

평화로웠을리도 만무합니다. 

또 고구려가 한강유역은 물론이고 

가장 오래 보유하던 영토인 함경도 동해안까지 빼앗기고도 

반세기나 잠잠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고구려가 신라에 대해 본격적으로 반격을 가하는 시점은 

려 600년 초반의 일입니다. 

뭔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혹시나 있었을 소수 부족과의 국지전을 돌궐로 옮겨적어 

무대응과 영토상실의 핑계로 삼았을 가능성도 어려운 것이 

실제로 나중에 돌궐과 북제-수와 갈등이 일어나기에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은 좀 더 지켜봐야겠다..

이렇게 임시변통의 해답을 내놓아봅니다.


동북아역사재단, 고구려의 정치와 사회, 293쪽 지도




신고
Favicon of http://oldhotelier.tistory.com BlogIcon 늙은 호텔리어 몽돌 | 2014.04.04 22:16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흠.... 몽돌로 그 문제에 대해선 잘 모르겠군요...ㅋㅋ
시간기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들은 바를 기록할때 오기할 수도 있고, 들은 내용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4.04.04 22:32 신고 | PERMALINK | EDIT/DEL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짐순이가 그동안의 연구논의를 다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
아! 이게 제일 문제겠군요.
Favicon of http://topsy.tistory.com BlogIcon 즈라더 | 2014.04.04 23:51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돌궐이 그쪽 소수 민족과 동맹을 맺고 그들을 이용해 고구려를 압박했을 가능성은 없나요?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4.04.05 12:53 신고 | PERMALINK | EDIT/DEL
551년에는 유연을 멸망시키기 전이라
멀리있는 고구려를 공격하느니
그런 외교술로 유연을 공격하는 게 더 중요했죠.
고구려는 초원에서 남쪽으로 팽창을 할 때나 생각해야지
초원의 패권을 쥐는데 그리 영향을 주진 못하였습니다.
BlogIcon 나도사랑을햤으면 | 2014.04.05 11:44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독자 입니다. 근데 수서 <돌궐전> 에는 어느 시기인지는 나오지 않지만 돌궐의 이추대계가 고구려를 공격 했다는 기록은 있다고 하네요.( 근데 대략 580년대초로 보는것 같아서 문제) 원문을 직접 올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4.04.05 16:00 신고 | PERMALINK | EDIT/DEL
네, 수서 돌궐전에 실린 수문제의 조서에 그 사실이 나오지요.
문장 중에 "지난 해에 이계찰이 고려와 말갈에게 크게 패했고.."라는 대목이 있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대로 수 건국 이후이므로 551년과는 거리가 멉니다.
Favicon of http://youlaw.tistory.com BlogIcon 바람다당 | 2014.04.06 00:54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무식한 질문이 하나 있는데.. 사실 돌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일반 민간인(?) 으로써 가장 궁금한 부분이.
과연 지금의 터키를 돌궐이라고 보아도 무방한가? 우리와 터키가 역사적으로 형제라는데 과연 정말 역사적 근거는 있는가 하는 것들이네요. 인터넷에 설왕설래하는 수 많은 설들과 나름대로의 근거를 보면 그럴듯 한데, 반대의 근거도 그럴듯 하고.. 고구려와 충돌이 있었다는데 그 유민들이 터키까지 이어지는 건 역시 괴담인가 싶기도 하네요.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4.04.06 10:55 신고 | PERMALINK | EDIT/DEL
돌궐과 투르크의 관계를 보면 중앙아시아라는 공간이 광대하지만
열린 통로라 그들의 이동은 여러 면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당에게 동쪽을 차지한 동궐궐은 흡수당하지만
서돌궐은 밀려나거든요.

그리고 터키는 자기들과 원한관계 없으면 세상 모두가 형제입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당한테 같이 몸빵하던 사이라는 애매한 관계가 성립되죠.
그리고 고문간같은 이들이 고구려 멸망 후 돌궐로 건너가
돌궐 가한의 시위가 되는 등 약간의 관계는 있어요.
또 돌궐 비문에 고구려가 종종 언급되기도 하지요.
초반에 요서를 두고 다투지만 수가 요서를 먹은 후로는 다툴 일이 없어서..
나중에 가면 공동의 적을 둔 동지?
그 정도로 먼 역사 속에 정리되고 기억에 남는 정도였습니다.
Favicon of http://youlaw.tistory.com BlogIcon 바람다당 | 2014.04.07 23:00 신고 | PERMALINK | EDIT/DEL
지금도 터키까지는 머나먼 길인데.
그 시절 터키까지 건너간 사람들의 사연은 참 아득하네요.

그러고 보면 터키와 우리의 관계가 막연한 낭설은 아닌가 보네요^^
자세한 설명 감사드려요~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4.04.08 11:34 신고 | PERMALINK | EDIT/DEL
사실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는 만주일대부터 헝가리까지 이어지는
일종의 고속도로라서요...
Favicon of http://arteros.tistory.com BlogIcon HarryPhoto | 2014.04.07 15:20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레알뻘짓님의 훈족에 대한 글을 보면(http://blog.naver.com/alsn76/40205992923)
아시아의 유목민족들은 잘 나가는 부족의 이름을 사칭했다고 하면서 돌궐 사칭 사례도 예로 들었는데요..
그렇담 즈라더님의 말과 절충해서 그 당시 고구려 근처의 소수민족이 돌궐을 사칭한 것은 아닐까요? ^^;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4.04.07 16:01 신고 | PERMALINK | EDIT/DEL
유목사회의 혈연의식은 농경사회의 그것과는 상당히 달라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는 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훈족의 정체에 대해선 많은 이견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고려하지 않은 것과 태생적으로 그걸 정확히 밝힐 수 없다는 것이 섞일 겁니다.
하다못해 북위를 세운 탁발부의 태동을 보면
이건 또 전통적 의미로의 선비족과는 거리가 먼 "입자"들이 모이거든요.

유목사회의 거리관념은 농경정주민과는 다르기에
훈족이 흉노족일 수도 아닐 수도 있고요.
(거기에 유연이 아바르족이 되었다는 지뢰밭도 존재하지요)
그 돌궐이 돌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현재로선 고구려와 충돌한 이들이 사칭일 가능성은 적어요.
문제는 고구려와 비교적 우호적인 유연이 건재하기 때문이죠.
투르크 | 2014.05.03 13:31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해리포토//레알뻘짓님 경우 그 편향적인(?) 글로 인해 지탄을 받는 분이니 좀 예시는 잘못됐다고 봅니다.
짐순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탁발부의 경우 제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본디 수렵-초기농경에서 남하하는 과정에서 유목,기마화에 흉노계 민족들을 받아들이면서 튀르크화를 한 것 같습니다. 바스밀의 예시를 들면 뭐 돌궐제국, 몽골제국 도래전까진 몽골-튀르크를 나누는 것에 대해 좀 반대입장입니다. 유목민의 경우 사칭이라기 보다 합병을 통해 ex) (주)돌궐 바스밀계열사(?)정도로 봐야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4.05.03 19:58 신고 | PERMALINK | EDIT/DEL
이 설명이 제 설명보다 더 적절해 보이네요. -_-;;
아무리 그쪽 입장을 생각하더라도 역시 남쪽 농경사회의 MS라 아무래도 어렵죠.
투르크 | 2014.05.03 13:45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실례가 안되신다면 이글을 퍼가고 싶은데 괜찮으신지요?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4.05.03 19:59 신고 | PERMALINK | EDIT/DEL
링크를 걸어주시면 더 고맙겠습니다.
진구 | 2014.06.28 21:49 신고 | PERMALINK | EDIT/DEL | REPLY
잘 봤습니다. 요즘 졸업논문을 고구려랑 북방 종족들 관련해서 해볼까 생각중인데 말갈이 잘 이해가 안되서 머리가 아파요 >_<...

제 생각같은건 별 가치는 없겠지만 저는 의외로 실제 돌궐의 공격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는게...돌궐이 유연과 전면전에 돌입한것은 552년이라 해도 545년 서위와의 독자적인 혼인동맹이나 546년 유연에 대한 일방적인 국혼요구를 보면 돌궐이 유연에 대해 그 이전부터 '간을 보면서' 독립적이고 오만한 행보로 도발해 힘의 우열을 가늠하는것같단 생각이 들더라구요. 거기에 유연의 친고구려정책과 달리 초기 돌궐은 반고구려적 행보를 보였으니, 내년의 전면전 이전 최종적인 도발로서 유연 외교기조에 대한 이탈을 시도해본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4.06.28 22:24 신고 | PERMALINK | EDIT/DEL
돌궐에 대해서는 그들의 중심지가 고구려와 너무 멀다.
그리고 먼 고구려를 어찌하느니
자기네쪽 기반 다지는 게 더 중요하죠.
또 우리는 동쪽 끝이라 서쪽, 그러니까 헝가리 평원까지 이어지느 쪽을 등한히 하는데
그렇게 멀리 다니다 뒷문 털리죠.
그쪽도 그쪽 나름대로 복잡한 곳이라..
게다가 유연이 아주 약체가 된 상태에서 망한 것은 아니라서요.
(요것도 참 유목사회의 특징입니다)

유목민족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 농경민의 시각으로 보는 바람에
그냥 접근하면 잘 이해가 안되죠.
아예 집단 구성원리도 좀 달라서요.
이를테면 선비 탁발부가 생겨나는 과정 보면 농경민의 시각으론 말도 안되거든요.
스기야마 마사아키나 고전이지만 르네 그루세의 책같은 걸 먼저 읽고
접근하면 어떨까요?
특히 스기야마의 책이 개념 잡는데 좋을 것 같군요.
말갈에 대해서는 최근 김낙기 선생님의 박사논문이 단행본으로 나왔는데 도움이 될리나요?
진구 | 2014.06.28 22:35 신고 | PERMALINK | EDIT/DEL
감사합니다. 그루세는 읽었고 스기야마는 읽어야지 하고 생각은 했는데 아직(...)

김낙기 선생님 책은 완전 보고싶은 분야를 다루고 있던데 하필 저희동네 도서관에도 학교 도서관에도 없더군요 ㅠㅜ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4.06.28 22:46 신고 | PERMALINK | EDIT/DEL
라츠네프스키나 룩 콴텐의 책을 읽으며 유목민족사를 공부해선지
스기야마의 책은 사막의 우물이더군요.
물론 징기스칸에 한정한다면 라츠네프스키의 책이 최고라고 생각하고요..

논문을 쓰신다니 하는 말이지만
(두께도 좀 얇지만) 최근 나온 박사학위 단행본 중에선 제일 저렴합니다. -_-;;
진구 | 2014.06.28 22:57 신고 | PERMALINK | EDIT/DEL
구, 구하기 쉬운 자료들로 날로 쓰고 졸업하려는 학부생에 대한 뭔가 따끔한 일침이십니다(...) 살까 생각중이긴 해요.
Favicon of http://rgm-79.tistory.com BlogIcon 제203 마도MS대대 짐순 폰 데그레챠프, RGM-79 | 2014.06.28 23:09 신고 | PERMALINK | EDIT/DEL
작년 연말에 나왔으니 학교 도서관들에 깔리고도 남을 시간이긴 한데...
생각나서 학위논문 PDF 폴더를 뒤져보니 없군요.
생각난 김에 인하대 도서관까지 갔더니 막ㅎ....

만약 시대가 겹친다면 도서관을 조르거나
(어쩌면 도서 정리부서에 계류중일 수 있습니다.
보통 직원이 각 도서를 분류, 정리하는 게 고작 하루 50권 내외라...)
구입하는 방법밖에 없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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