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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GM-79의 삼국사기 이야기

양원왕 3년의 가을,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 본문

삼국사기를 읽어보자!/고구려이야기

양원왕 3년의 가을,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전략

짐순 폰 데그레챠프 2014. 2. 12. 19:30

 

원문

三年秋七月 攺築白巖城 葺新城

 

해석

3년(547) 가을 7월, 백암성을 개축하고 신성을 수리하였다.

 

모자이크가 없는 삼국사기란 천사가 없는 12월 같아라.. 이번엔 목판본인 정덕본으로 대체합니다.

양원왕은 고구려사에서 그렇게 많이 불려지는 이름은 아닙니다. 앞 시대는 광개토, 장수왕(덩달아 그의 손자 문자명왕)이 있고, 그의 다음대에는 온달과 평강공주로 알려진 평원왕, 그리고 국제전과 멸망기의 3왕, 영양왕, 영류왕, 보장왕이 한국사 능력시험을 보는 이들의 머리를 아프게 하지요. 6세기 전반부의 왕들은 그야말로 공기 정도의 존재감을 자랑합니다. 더욱이 고구려사의 연구논문도 이 시대를 다루는 것은 매우 적습니다. 이 시대를 다루는 논문을 쓰려던 사람이 매우 중요한 논문을 쓰신 다른 선생님에게 '그 시대를 전공하려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뭐, 그런 대접을 받는 시대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4~5세기의 활발한 정복전, 그리고 7세기 다시 없을 국제전에 비하면야 정말 그렇게 별볼 일 없는 시대로 보입니다만 사실 6세기야 말로 앞 시대의 성과를 정리하고 다가올 암울한 전쟁의 시대를 준비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짐순이가 극단적으로 시스템이라는 것에 집착하게 된 계기 중 하나로 어렸을 때 본 내셔널 지오그라피의 다큐가 있었습니다. 잉카의 어느 왕자가 왕권다툼에서 진 후 밀림으로 도망쳐서 거기서 힘을 기른 후 제국을 건설하는 얘깁니다. 그런데 그 제국은 만들어지자마자 망해버렸지요. 왜냐하면 급속히 정복전쟁을 편 것은 좋았는데 그 제국은 영역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구조를 갖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때 본 인상이 지금의 고구려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던져주었습니다.

 

4~5세기의 정복전은 소수림왕의 국가 개조가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또 6세기라는 시간이 갑자기 넓어진 영역과 인적구성원을 정리하는 재조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7세기의 그 가혹한 국제전의 파고를 견디지 못하고 초반에 무너졌다. 이것이 짐순이가 고구려사를 바라보는 개인적인 관점입니다.

 

현재로는 6기 전반에 대한 극소수의 연구성과도 왕과 귀족들간의 관계, 치열한 왕위 계승전이라는 구도에서만 바라봅니다. 또, 7세기의 국제전은 589년의 수의 재통일에서 싹이 터서 612년의 수의 1차 침입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그 싹은 이미 6세기 전반부터 본재했습니다.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던 북제와는 요하 이서의 주도권을 두고 처음부터 무력시위와 협박외교를 통해 긴장관계가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수와 당 초기에 고구려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격파해야한다고 주장한 매파들의 뿌리는 북제 출신들로 올라갑니다. 또 북방의 돌궐과도 매끄럽지 않은 관계가 이어집니다. 돌궐 이전의 맹주였던 유연과는 매우 가까웠지만 초원의 새 주인과는 거친 몸싸움이 빈번한 상태가 됩니다. 사실 고구려인들의 위기상태는 이미 반세기 전부터 비상등을 켜놓게 했지요.

 

정복의 과실을 정리하는 도중에 그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의 문제로 정변은 매우 치열하게 벌어지고 급변하는 국제정세는 항상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합니다. 맥 없이 한강유역을 내주고, 또 본격적인 반격이 반세기나 늦었던 이유는 바로 대륙으로부터의 위기가 발을 묶은 탓이지요.

 

오늘의 기사는 그러한 상황을 보여줍니다. 547년의 가을, 북방의 중요 요충지인 백암성과 신성을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공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수년 후 돌궐의 침입이 이 두 요새로 향하게 되지요. 정말 신묘한 계책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 짤막한 기사에서 그들의 전략적 고뇌는 잘 읽혀지지 않습니다. 짐순이는 그 시대도 그 나름대로의 논리와 노력과 치밀함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이 없어 보이는 실패도 실은 계산 착오라던가 노력부족이었다던가 실력이 모자란 결과였다는 것이지요.

 

말꼬리 ---------------------------

이러저러한 역사적 이유로 듕궉이란 나라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몇 군데를 제외하곤 그리 보고 싶은 생각도 없지요.

다만 오늘의 주 무대 백암성은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기회가 닿질 않네요.

 

 

출처 : 동북아역사재단, "하늘에서 본 고구려와 발해", 2008,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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